임명룡 서울지사장

 

한문이나 한국학을 배우는 사람들에게는 선망의 책이 있는데, 2005년에 작고하신 서여(西餘) 민영규(閔泳珪) 선생의 저서 『강화학 최후의 광경』도 그 중에 하나이다.

한국학의 대가(大家)였지만 책으로 남기기를 꺼려하여 문집이 귀하기도 하지만, 소량으로 발행되어 절판이 된 지가 오래여서 책을 구하기가 매우 어렵다. 다행히 내 책꽂이에도 한 권이 꽂혀있어서 아끼는 서적인데 내게 그 책이 더 특별한 것은 오탈자를 수정한 스티커가 여러 곳에 붙어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옛글을 출판하려면 같은 한자(漢子)가 없거나 중세 우리말 쓰임이 달라 일반 문서작성 프로그램으로는 불가능한 경우가 많은데, 1993년 그 책이 발행 될 때는 사진 식자기(植字機)의 자판만 가지고는 턱도 없었다. 더구나 우리말의 옛 느낌을 그대로 살려서 쓴 서여(西餘) 선생의 원고를 그대로 살린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그래서 책이 나오고도 수차례에 걸쳐 스티커로 글자를 수정하여 붙였다. 나중에는 책이 배포된 도서관을 찾아다니며, 서여 선생이 직접 풀로 붙이기까지 하였다고 한다.

그맘때 쯤 나도 작은 출판사에서 편집실 책임자가 되었다. 어떤 책을 의뢰받고 밤을 새워가며 편집을 마치고, 용인에 있는 인쇄공장을 오가며 최종 인쇄본까지 확인을 했는 데 사고가 터졌다. 제본이 끝난 상태에서 양장표지 바로 다음 장에 틀린 한자(誤字)가 발견된 것이다. 전부 폐기될 상황이었다. 회사 대표는 화가 나서 전화로 나에게 책임을 지라고 했다. 주말이 끝나면 사표를 제출할 생각에 술을 인사불성까지 마시고 잠에 떨어졌다.

다음날 일요일 새벽 세 시에 대표로부터 또 전화가 왔다. 의뢰처로부터 스티커를 붙여 교정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는 것이다. 공장에 스티커 인쇄를 부탁해두었으니 당장 직원들을 소집해서 작업할 준비를 하라고 했다. 곧이어 운전할 직원 한 사람이 차를 몰고 나를 태우러 왔다. 세수도 못한 채 차에 실려 작업장으로 가서 오후 늦게까지 교정지에 풀칠을 했다. 그러자니 몰골이 말이 아니게 되었는데, 작업을 마친 직원들은 용인까지 왔으니 ‘에버랜드’에서 좀 놀다가 가자고 했다. 나더러 그 정도는 책임을 지라는 거였다. 차가 없으니 그들을 따라갈 수밖에 없기에 화장실에서 대충 얼굴만 문지르고 놀이공원에 갔다.

요즘 같으면 말도 안 되는 장난이지만 당시 그 안에는 ‘요술거울’이라는 비대칭 유리거울이 있었다. 착시현상을 이용한 온갖 장치들이 길게 나열되었는데 그 거울은 비치는 사람의 얼굴이 심하게 왜곡되어 보이는 장치였다. 사람들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과장된 모습을 보고 신기해서 이런저런 표정을 지으며 즐거워했다. 요술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기괴했다. 동료들이 우겨서 표정을 몇 번 바꾸기도 했다.

그러고 나서 줄을 따라 거울이 설치된 벽을 돌아 반대편으로 이동했을 때, 한 무더기 여자들이 나를 보고 웃느라 난리였다. 용인 인쇄공장 사무실에 근무하는 아가씨들이었다. 내 모양새가 창피해서 눈인사로 고개만 까딱하고 지나치려는데, 그곳이 요술거울 뒤편이라는 것을 알고는 기겁하고 말았다. 왜곡된 요술거울의 반대쪽은 그냥 투명유리였던 것이다.

저쪽에서 온갖 표정을 짓는 모습이 이쪽에서는 그냥 그대로 보였다. 순간 창피해서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었다. 거래처 여직원들은 내 꼬락서니를 보고 너무 놀랐다고 한다. 유리에 갑자기 거지꼴을 하고 나타난 나를 보고 처음에는 내가 아닌 줄 알았는데, 우리 직원들을 보고 확신했단다. 자초지종을 설명했지만 두고두고 ‘거지 실장님’으로 불렸다.

코로나 때문에 극장에 못가는 대신 인터넷 TV로 예전 영화를 본다. <탐정: 리턴즈>를 보는데 전직 경찰 성동일이 피의자에 대한 신문과정에서 ‘정보 비대칭’을 설명한다. 피의자 입장에서는 상대가 정보를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모른다. 신문하는 사람은 그것을 역이용하여 거짓 정보를 추궁하여 피의자에게 거짓말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요즘 흔히 쓰는 말로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에버랜드 요술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생각나서 쓴 웃음이 지어진다. 스마트 폰이 없었길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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