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명룡 서울지사장


 

미리 알리지 않고 울진 고향을 찾아가면 마을 어르신들로부터 듣는 첫 인사말이, “곽줴 우왜 왔노?”다.

방언(方言), 특히 경상도 사투리는 현대 표준어에서 거의 사라진 성조(聲調)와 장단음(長短音) 그리고 이중모음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외지인이 발음하기가 어려운 것은 물론이고 한글로 정확히 적을 수도 없다.

그렇다보니 사투리의 어원(語原)이 매우 모호한 경우가 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곽줴’라는 말일 것이다. 이 말은 발음도 다양해서 곽줴, 곽좨, 곽재 등으로 말하는데 도대체 이 말이 어디서 어떻게 비롯되었는지 가늠을 할 수가 없었다. 경상도가 고향인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데도 불구하고 출처는 모호하기 짝이 없는 말이다.

한편으로, 곽줴 앞에는 흔히 ‘무신날’이라는 말이 덧붙는다. 무신날 곽줴는 ‘아무 날 갑자기’라는 의미로 전달되는데, 그렇다보니 곽줴라는 말은 ‘갑자기’, ‘느닷없이’와 같이 시간(때)을 의미하는 부사로 쓰이고 있다. 처음부터 그렇게 사용되었는지 알 수는 없다. 모든 것이 궁금한 그 말의 연원이 될 만한 기록을 발견했을 때, 나는 탄성(歎聲)과 함께 허탈감에 어이가 없었다.

내 판단의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곽줴는 곽재우’다. 홍의장군(紅衣將軍) 곽재우(郭再祐)가
곽줴일 수 있다는 생각을 처음 가지게 된 계기는 조선후기 문신이자 학자인 성해응(成海應)의 『연경제집』을 읽고부터였다. 아직 한글로 번역되지 않은 상태여서 일반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이런 내용이 있었다.

‘우는 아이에게 겁을 줄 때 “곽재우 온다”라고 하는데 곽재우는 홍의장군이다.(嚇兒啼曰郭再祐來 郭再祐者紅衣將軍也)’ ‘곽재우 온다’를 짧게 발음하면 ‘곽재온다’가 되기에 어쩌면 곽줴의 어원이 곽재우일 수 있다는 생각에 나는 자료를 좀 더 찾아보았고, 그 후로 내가 추가로 발견한 단서는 두 개였다. 역시 조선 후기의 학자인 조재삼(趙在三)의 『송남잡지』와 성해응의 부친인 성대중(成大中)의 『청성잡기』에서 볼 수 있었다. 특히 성대중의 기록에서 거의 결정적인 단서를 발견했는데 『청성잡기』에 실린 다음 내용이다.

‘곽재우(郭再祐)의 위엄은 영남 지방을 벌벌 떨게 할 정도였다. 그래서 영남의 풍속에 우는 아이를 겁줄 때면 언제나 “곽재우 온다(郭再祐來)”고 하였는데, 나중에 ‘곽재우’가 와전되어 ‘곽쥐’가 되었다(後再祐訛爲走ㅣ)‘

성대중은 ‘곽재우’라는 발음이 후대로 오면서 잘못 전하여(訛) ‘곽쥐(郭走ㅣ)’가 되었다고 했다. 즉 ‘곽재우 온다’라는 말이 시대가 흐름에 따라 ‘곽쥐 온다’로 변했다는 것이다. 성대중은 조선 영·정조 시대에 활동했던 사람이다. 경상도에서 임진왜란 즈음에 생겼던 풍속이 200여 년이 지나면서 곽재우라는 인명(人名)의 의미는 상실되었고, 아이들에게 겁을 주는 관용어로 ‘곽쥐 온다’ 또는 ‘곽줴 온다’가 쓰이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물의 이름이 본래의 의미를 상실하고 관용어로 사용되면서, ‘곽쥐(郭走)’는 모호한 단어가 되었음을 우리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온다’라는 동사가 함께 활용되었기 때문에 주체(주어)가 되지 못한 곽쥐는 ‘온다’와 호응하기 위해 시간 부사(時間副詞)로 변한 것도 자연스럽다. 따라서 조사 ‘-에’가 붙으며 발음은 ‘곽줴’로 정착했을 것이다. 또한 시대가 지나면서 ‘아무 날’을 뜻하는 ‘무신날’이 앞에 붙어 곽줴는 ‘갑자기’라는 의미로 굳어졌을 것이다. 곽줴에 대한 나의 궁금증은 무신날 곽줴 그렇게 해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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