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

 

소나기는 갑자기 구름이 짙어져서 빗방울(지름 5~8㎜)이 1~2시간의 짧은 시간 동안 강하게

 

내리다가 그치는 비다. 아주 국지적 현상으로 보통은 오후 늦게 내리고 뇌전을 동반할 때도 있다. 금년 여름엔 유난히도 소나기성 비가 자주 내린다.

 

마른 하늘에 번개가 치면 하늘은 금세 두 조각으로 갈라지고 폭음을 동반한 소나기가 전시체제의 비상경보처럼 내렸다. 나의 편견인지는 몰라도 소나기가 꿈 많은 청년들의 것이라면, 지루한 장맛비는 허리 굽은 노인들의 것이 아닐까, 그리고 여우비는 깜찍한 소녀들의 것이라면, 안개비는 홀로된 여인의 한숨과도 같은 비가 아닐까.

 

나는 어릴 때부터 농촌에서, 봄부터 가을까지 내리는 여러 가지 유형의 비를 보고 자랐다. 비는 곧 농사와 직결된 자연현상이다. 그것을 잘 이용하면, 복이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화가 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가뭄으로 인한 피해가 얼마나 컸으며 홍수로 인한 피해는 또 얼마나 컸던가. 비는 곧 우리들의 생명 줄이자 재산을 위협하는 재앙의 원천이기도 했다.

 

아마도 그 무렵이었을 것이다. 내가 황순원의 ‘소나기’를 읽은 것은 징검다리가 놓인 개울가에서 이루어졌던 낯선 소녀와 소년의 러브스토리는 아름다움 그 자체로서 한 폭의 수채화로 남아있다. 소나기로 인하여 물이 불어나자 소녀를 등에 업고 건네주는 장면은 영화의 한 장면이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어떤 환경에 노출되어 있는가! 스마트폰과 아이패드, 태블릿 PC의 홍수에 빠져 익사 직전에 놓여 있지는 않은가! 날로 범죄가 지능화, 흉포화 하는 현상을 보면서 과학문명의 발달이 오히려 인성 발달에는 큰 걸림돌이 되는 것 같다.

 

몇 년 전 서울의 모 대학 수석합격자에게 ‘감명 깊게 읽은 책이 몇 권이나 되느냐?’ 고 묻자 ‘한 권도 없다’ 고 하더란다. 이처럼 개탄스러운 현상을 고치고자 당국은 수염에 붙은 불을 끄는 식으로 농촌체험을 장려했다.

 

‘독서하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논술고사를 실시한다.’ 는 등의 방식을 들고 나왔지만, 근본이 고쳐지지 않고서는 될 일이 아니다. 이미 산성화되어 버린 토양을 갑자기 알칼리성 토양으로 바꾸려는 궁여지책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며칠 전 오전 근무를 마치고 우산을 챙겨 지인(知人)을 만나 귀가하는 도중에 갑자기 소나기를 만났다. 하늘의 뇌성소리에 놀란 행인들은 쫓기듯 종종걸음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지인과 함께 서두르지 않았다. 오히려 여유를 잃지 않고 천천히 걸었다.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늙은이가 청승맞게 보일까 평소 내가 즐겨 찾던 곳 맛집 식당에 들렀다. 한 낮이었는데도 식당에는 비를 피하기 위해 몰려든 몇몇 젊은이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식당은 우리 집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 위치해 있다. 무슨 뜻이 있어선지 아니면, 무심코 지은 것인지 이름부터가 뭔가 추억 돋는 식당이다. 나는 단골이 된 지 오래다. 아마도 내가 이곳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은 것이 낭만과 추억의 음식일 게다.

 

육십 갓 넘은 그 집 아주머니의 친절은 갈증 난 고객들의 가슴을 적셔주고도 남는다. 나는 처음 그 아주머니에게 식당이름에 관한 명명한 연유에 대하여 물어보려 했으나 그만 두었다. 그것은 마치 두 사람의 부부에게 “어떻게 만나 부부의 관계를 맺게 되었는가?.” 를 묻는 것처럼 아둔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소나기의 추억이 사라지지 않는 한, 그리고 식당의 낭만이 없어지지 않는 한, 나는 나이 들어도 여전히 결실하는 젊은 피로 살아갈 것 같다.

 

 

울진중앙교회 원로장로 박호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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