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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명룡 칼럼> 민간풍속에 이름이 전해온 사람들
2020년 10월 15일 (목) 17:25:47 [조회수 : 256] 울진신문 webmaster@uljinnews.co.kr

 

   
 

지난번 칼럼에서 ‘무신날 곽줴’라는 말의 유래를 소개했더니, 신문을 본 지인들이 재미있게 읽었다며 전화로 격려를 해왔다. 격려에 힘입어 이번에도 민간풍속에 구전(口傳)해온 역사적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본다. 조선후기 학자 성해응(成海應)의 문집 『난실담총(蘭室譚叢)』에 실린 글이다.

 

나라[朝鮮] 풍속에 무당이 신(神)을 부르는 것을 ‘만수받이’라고 하는데, 만수(曼殊)는 조선 초기 정승이었던 유만수(柳曼殊)를 말한다. 우는 아이에게 겁 줄 때 “곽재우 온다” 라고 하는데, 곽재우(郭再祐)는 홍의장군이다. 또 남에게 욕을 할 때, ‘원전’이나 ‘정명수’ 또는 ‘하천도정’이라고 하는데, 원전(源𤩴)은 왜인(倭人)으로 탐욕스럽고 광포한 자이다. 정명수(鄭命壽)는 은산군 노비[官奴] 출신으로 병자호란·정묘호란 즈음 오랑캐 앞잡이로 와서 우리나라 사람을 학대한 역관이다. 하천도정(夏川都正)은 근래 종실 사람이다. 지혜가 전혀 없는 사람을 두고 “우ː번에서 단청(丹靑) 찾는다”고 하는데, 우(瑀)와 번(璠)은 율곡 이이(李珥)의 두 형 이우(李瑀)와 이번(李璠)을 말한다. 천한 놈이라고 꾸짖을 때 ‘난정이 아들’이라 하는데 난정(蘭貞)은 윤원형(尹元衡)의 첩이다. 악독한 사람을 칭할 때 “자ː기 같다”고 하는데, 자(磁)와 기(芑)는 기묘사화 때 간신 허자(許磁)와 이기(李芑)를 말한다. 남을 저주할 때는 “발ː호나 돼라”고 하는데 이발(李潑)과 이호(李洁)를 말한다. 정여립 옥사[己丑獄死] 때 휘말려 죽었다.

 

곱씹어볼수록 재미있는 글이어서 내용을 좀 더 풀어본다. ‘만수받이[曼殊受]’의 유만수는 1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에게 참살당한 무신(武臣)이다. 흔히 무당들이 남이(南怡)나 임경업(林慶業) 같이 억울하게 죽은 장군들을 신으로 모시는데, 윗글 ‘만수받이’의 유래에서 보듯 유만수가 그 원조였을 가능성이 크다. 또 ‘곽재우’가 와전(訛傳)되어 ‘곽줴’가 되었듯이 ‘만수받이’도 지금은 ‘만세받이’라는 말로 쓰이고 있다.

 

욕의 대명사로 불렸다는 ‘원전(源𤩴)’에 대한 이야기도 재미있다. 조선 후기 한양에서는 『삼랑전(三郞傳)』이라는 일본소설이 크게 유행을 했다. 한글로 번역[諺解] 되어 많은 사람들이 읽었는데 ‘삼총사’ 비슷한 무협지였다. 정절이 빼어난 월약(月藥), 효성이 남다른 비곤(比琨) 그리고 흉포한 원전(源𤩴)이 등장한다. 얼마나 인기가 높았던지 한양사람들이 욕할 때 원전을 들먹일 정도였다는데, 정작 일본사람들은 삼랑전을 모르고 있어 일본에 갔던 조선통신사들이 놀랐다고 한다. 또 역관으로 청나라 앞잡이가 되어 조선을 괴롭혔던 정명수는 원래 은산 관노였다. 광해군 때 강홍립 부대에 들어갔다가 후금의 포로가 되었고, 영리하고 약삭빨라 청태종의 신임을 얻어 후에 청나라 사신이 올 때마다 단골 통사로 따라왔다. 중간에서 이간질로 온갖 잇속을 챙겼고 심지어 그의 어머니에게 나라에서 정부인(貞夫人) 첩지가 내려진다. 그 다음에 언급된 하천도정(夏川都正)은 정확히 어떤 인물인지 알 수 없다. 도정(都正)은 종친부 남성에 대한 호칭으로 대군(大君), 군(君), 도정(都正), 정(正), 부정(副正), 수(守)로 이어진다. 종2품, 정3품에 해당하는 유사당상(有司堂上)으로 종친부 살림을 주로 관장했다. 이로 보아 하천도정(夏川都正)은 궁방절수(宮房折受)에 횡포가 심했던 사람이 아닐까 짐작된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 이율곡의 두 형님이 사람들의 놀림감이 된 것도 흥미롭다. 형제들 이름은 전부 보석인데[瑀, 璠, 珥], 보석이 당연히 지녀야할 빛깔[丹靑; 지혜]을 두 형님한테는 찾을 수 없으니 비웃음거리가 되었던 것이다. ‘난정이 아들’이란 말도 재미있는데 TV드라마 ‘여인천하’로 잘 알려진 정난정 이야기다. 윤원형의 첩이었지만 ‘난정이 아들’ 윤효원, 윤충원은 서자가 아닌 적자로 인정받았으며 벼슬도 했다. 네 명의 딸들도 양반가 본처로 시집을 갔다. 그밖에 허자(許磁)와 이기(李芑) 그리고 이발(李潑), 이호(李洁) 이야기는 역사적 해석에 따라 판단이 다를 수 있고 사연이 길어서 생략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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