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포역사연구회장 정돌만

대게의 궁중요리는 어떤 것이 있었을까?

열구자탕(悅口子湯)과 빵게

1) 빵게도 수라상에 올랐다.
지금은 대게 철이다. 대게를 식재료로 하는 궁중음식을 알아보자. 우리는 대게만 임금님 수라상에 진상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빵게는 ‘진상등록’에는 기록되지 않고 ‘열구자탕’이란 이름으로 수라상에 올랐다. ‘진상등록’에 기록이 없는 진상품이다.

열구자탕이란 어떤 음식재료를 사용했을까? 그리고 어떤 의미를 가진 궁중요리일까? 이것은 글자 그대로 입을 즐겁게 하는 탕이란 뜻이다. 빵게 알을 사용한 이 요리는 지구상에서 생산되는 음식재료가 42가지나 동원되는 궁중요리의 일종이다.

‘열구자탕’은 언제부터 시작되었고 어디에 기록되었나?

서기 1795년 「원행을묘정리의궤」에 기록되어 있고 19세기말 「시의전서」에도 기록되어 있다. 「시의전서」가 나온 19세기말은 구한말의 격변기로서 궁중의 일부 음식이 일반에게 알려졌던 시기로써 「시의전서」의 찬품내용은 궁중의 영향을 받은 반가의 요리로 보아야 한다.

한편 거의 비슷한 시기로 알려져 있는 「동국세시기(1849)」에는 열구자탕을 10월의 시식으로 소개하고 있다.

‘우육, 저육, 갑청, 여러 가지 나물’‘과’‘훈채’‘계란’등으로 장국을 끓였는데, 열구자 혹은 신선로라 하며 「세시잡기」를 보면 10월초 하루에 여러 사람들이 화로에 둘러앉아서 고기를 구우면서 술을 마시고 먹으며 이것을 ‘난로회’라 하였다.

열구자탕은 1900년대 초에는 신선로란 이름으로 불렸었던 것 같다.

2) 대게의 궁중요리는 어떤 것이 있었을까?

빵게 알이 1892년에서 1902까지 궁중음식의 하나인 열구자탕의 재료로 쓰였다.

그리고 생게전(生蟹煎)은 1827년에서 1902년까지, 그밖에 해란전(蟹卵煎)이 1892년에 궁중음식 재료로 사용됐던 기록이 있다.

게구이(蟹脚灸伊)가 「원행을묘정리의궤(1795)」년 최초로 대게가 궁중요리서에 기록됨으로 하여 진상품으로 임금님 수라상에 올랐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시의전서」에도 게구이가 계속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탕류(湯類)가 처음 등장하는 시기는 19세기말「시의전서」에 나타나고, 주방문(酒方文.연대 작자미상)에 소개되고 있다.

해각포(蟹脚脯)는 「시의전서」에 나타나고 있다.

이 해각포는 울진지방의 영등고리에 걸려있는 것으로 보아서 해각포는 그때 당시에 혹시 진상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이상으로 1795년부터 1902년까지 궁중요리에 대게가 음식재료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이제부터 울진대게축제의 마케팅 전략도 대게를 원료로 하는 향토음식 지적소유권을 연구하고 개발하여 고부가가치의 대게 궁중요리를 향토음식화하는 방안 모색에 박차를 가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3)대게와 궁중요리 종류
저작권자 © 울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