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2004년 9월 15일자 기획면
김성훈 중앙대교수 인터뷰

김성훈 중앙대 산업경제학과 교수(65·전 농림부장관)는 14일 “유기농을 단순히 안전한 먹을거리 확보 차원에서 접근해서는 안 된다”며 “유기농 정책은 국민의 건강과 생명 보장은 물론 환경 생태계 보전, 유기농가의 소득향상을 통한 국토의 균형발전 등 다원적 공익기능에 초점을 맞춰 ‘지속가능 운동’으로 추진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유기농산업이 제대로 뿌리내리려면 ‘한국농업의 유일한 대안은 유기농’이란 인식전환이 선행돼야 한다”며 “무엇보다 복잡한 관련 법률의 정비와 이원화된 정부기관 업무의 일원화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학자이자 시민운동가로 김대중 정부에서 최장수 각료(30개월)를 지냈고, ‘한국유기농의 대부’로 불리는 김 교수를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만나 한국 유기농 정책의 현주소와 나아갈 방향 등에 대해 들어봤다.

정부, 선진 유기농업 무관심

-서울대 노희명 교수팀이 유기농산물의 진위를 판단하는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 유통 중인 유기농산물을 검사한 결과 일부가 일반농산물로 밝혀졌다.
▲유기농산물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는 반면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정부 정책과 생산농가의 양식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음을 확인해 주는 것이다.
현재 친환경농산물 인증 생산량은 도입 첫해인 1999년에 비해 13배가량 늘었지만 정부 기관과 인력은 예전 그대로다. 생산 농가들도 규정을 지키지 않는 농가를 감독기관에 고발하는 등 자체 퇴출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동네사람이나 일가 친척이라는 이유로 방관하면 공멸할 뿐이다.
어쨌든 그동안 유기농산물 검증의 사각지대였던 화학비료 사용을 가려낼 수 있는 과학적 방법이 나온 건 획기적인 일이다. 향후 유기농 과일과 축산물, 유기가공식품 검사에 이 기술이 적용될 수 있도록 국가적 차원의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

-유기농 정책과 관련, 인증·유통·사후 관리 등에서 많은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는데.
▲인정한다. 가장 큰 문제는 정부기관과 공무원들의 안일한 태도다. 심지어는 선진유기농업 시찰을 위해 매년 4∼5차례씩 해외에 나가는데 공무원이 따라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한국 유기농이 뿌리를 내리려면 아직 멀었는데 큰일이다. 한국적 특성상 대통령이 의지를 갖고 추진해야 한다.

-1998년 농림부장관으로 재직할 당시 친환경농산물 관련 법안과 제도적 틀을 마련했는데 현재 입장에서 평가한다면.
▲친환경농산물 인증유형을 4종류(유기농, 전환기유기농, 무농약, 저농약)로 나눈 데 대해 비판적인 시각이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당시 유기농가는 전국적으로 2000여호에 불과했다. 갑작스럽게 유기농산물과 일반농산물로 나눌 경우 농민 참여가 극히 저조할 수밖에 없어 단계를 밟아 유기농으로 가는 방안을 택했다. 하지만 이제는 기준을 바꿔야 한다. 친환경농산물은 유기농, 전환기유기농만 두고 나머지는 ‘GA(Good Agriculture)마크제’로 돌려야 한다.

-외국산 유기농산물과 가공식품 수입이 급증하고 있다. 정부의 필요한 대책은.
▲특히 중국산 유기농산물이 많이 수입되고 있는데 중국의 유기인증제도를 잘 봐야 한다. 중국 인증제도는 무공해식품, 녹색식품, 유기식품으로 나뉘는데 무공해식품(Non hazard food)은 인체에 해가 없다는 의미의 일반농산물이고 녹색식품(Green food)도 저농약 농산물이다. 유기식품(Organic)은 아예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정부가 나서서 이 같은 실상을 알려줘야 한다.

코덱스 기준 전혀 준비안돼

-내년부터 코덱스 가이드라인이 시행되는데 유기농가에서는 준비 부족을 이유로 불만이 많은 것 같다.
▲큰일이다. 특히 90% 이상의 사료를 수입하는 유기축산의 경우 타격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유기축산은 자원의 순환차원에서 유기농업의 필수조건이다. 소나 돼지, 닭 등을 길러야 이들의 분비물로 퇴비를 만들어 유기농산물을 재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초지 용도변경을 허용하는 등 역행하고 있다. 유기축산농가에 대해 인센티브를 주고 국유지 일부도 활용토록 하는 등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한국의 유기농산업 발전을 위한 정책 방향이 있다면.
▲유기농업은 피할 수 없는 21세기 사조(思潮) 중 하나다. 대규모 기업농 위주인 미국도 2010년까지 유기농업 비중을 10%까지 높이겠다고 공언하는 등 주요 선진국들이 유기농업의 정착에 사활을 걸고 있다. 눈여겨볼 점은 유기농이 환경생태계 보전과 쾌적한 국토환경 유지, 농가소득 향상으로 국가균형 발전 등을 위한 ‘지속가능 운동’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유기농업 선진국에서 배워야 할 점을 지적해달라.
▲원칙과 원리를 받아들이되 한국식 유기농법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우리에게도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비법이 있다. 농약이나 화학비료 없이도 농사를 잘 짓던 그 기술과 지역자원, 천적 등을 재발굴해 미생물 기술 등 현대과학기술과 접목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10년 만에 ‘유기농업의 메카’로 급부상한 쿠바의 성공사례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특히 미국과 캐나다의 ‘지역사회가 지원하는 유기농업’ 운동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유기농가 지원은 곧 시민의 건강과 해당 지역사회의 환경보전 등으로 연결된다는 발상으로 학교급식이 기본이 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지방자치단체가 우리 농산물을 학교급식으로 공급하려 해도 일부 정부부처의 반대로 무산된다고 하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농가 행정서비스 개선 과제

-국내 유기농업 정책 전반에 대해 한때 농정의 최고책임자로서 조언을 한다면.
▲유기농 육성을 위한 정부의 1차적인 책임은 친환경 기술과 자재 개발을 통한 농가의 소득보장이다. 농촌진흥청은 업계의 이해관계가 첨예한 농약·비료 감독 업무를 제3의 기관에 넘겨주고 유기농법 개발과 확산에 주력해야 한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등 관련기관도 기구와 장비, 인력을 대폭 확충해 급성장한 유기농업에 걸맞은 행정서비스를 전개해야 한다.

인터뷰=특별기획취재팀 민병오기자
사진=이종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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