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으로 부치는 편지-서른두번째

   
어린시절 소 몰고 산 능선을 넘어 어느 골짜기에 동네 아이들과 소들이 모이면, 그곳이 바로 놀이터가 되고 삶의 현장이 되었다. 닭싸움 술래잡기 감자구워먹기 딱지치기 구슬치기 등 온갖 놀이로 산골짜기가 가득했다.

우리들의 놀이소리가 강해질 수록 소들은 더 깊은 골로 사라져 집에 돌아올 시간 온 산을 헤매면서 소를 찾았던 기억이 생생하고, 고무신을 신고 그 험한 산길과 들을 누볐던 친구들과 동네 형들의 그때 그 시절이 그립다.

나는 도시생활을 하면서 늘 산행을 한다. 산행을 하는 이유는 고향의 향수가 그립고 나 자신에 대한 성취감 때문일 것이다. 흔히들 시골촌사람들은 도시생활을 하면서 산행을 잘 안한다. 그 이유는 어린시절 산과의 추억이 너무 아찔했기 때문에 다른 즐길거리가 많은데, 왜 힘들게 산행을 하느냐고 반문한다.

나 역시 시골생활을 떠 올리면 지겹다는 생각이 든다.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을 산넘고 물건너서 다녔다. 울진이라는 곳 자체가 바다지역 외에는 대부분 산골 깊숙히 마을을 형성하고 있으니, 대부분이 나와 같은 생활했을 것이다.

어린시절 울진고향의 추억을 늘 새롭고 진하게 다가온다. 요즘같이 추운 날 개울가 돌다리에 물을 살짝 뿌려 놓으면, 얼음이 얼어 뒤 따라 오던 여학생이 미끄러져 물에 빠지면, 좋아라 낄낄대던 추억이며, 논에 추수를 해서 볏가리(일명:노적)을 쌓아 놓은 곳에서 친구들과 모여 추워를 피하기 위해 불을 피우다 볏가래를 다 태워 두들려 맞았던 추억, 요즘은 금지되어 있지만 야산에 목로(토끼등을 잡는 올무)를 놓아 토끼와 노루를 잡았던 추억, 동네어귀에 서리를 맞아 맛나게 매달려 있는 감을 따먹던 추억등.
나는 이런 고향의 맛을 느끼기 위해 20여년 동안 산행을 해 왔다. 이삼십 대에는 암벽등반 등 전문등반을 했고, 30대 후반부터는 지리산, 설악산, 덕유산을 비롯해 전국의 산야를 산행했으며, 울진지역의 명산인 백암산, 응봉산 등을 1년에 1회이상은 산행하면서 고향의 향수를 간직하려 했다.

온천과 바다와 계곡과 산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는 울진의 산은 천혜의 자연환경적인 요인과 문화적인 가치를 간직하고 있다. 주5일 근무제가 확산되고 있고 울진지역으로 내려가는 도로사정도 많이 좋아진 상태임으로 전 국민들의 여가선용 대상지로 아주 적합한 지역이 바로 울진이라는 사실이다.

타 지방의 산과 명소들도 대단히 우수하지면, 푸른동해를 바로 옆에 두고 있는 울진이야 말고 미래지향적인 레저문화도시로 발전할 요인들을 무수히 많이 갖고 있다는 사실에 울진인이라는 자부심을 갖게 된다.

울진을 사랑하고 아끼는 분들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것이 나의 작은 바램이다. 타 지역의 작은 사례를 보면서 울진인도 변해야 한다는 사실을 전하고자 한다. 올 여름 나는 전라도의 완도에 있는 상왕봉이라는 산을 산행하기 위해 완도를 찾았다.

완도를 연결하는 다리를 건너자 어께띠를 두른 젊은 청년들이 도로 곳곳에 배치되어 자기 고향인 완도를 찾아 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말과 함께 얼린 생수를 한 병씩 나누어 주고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하느냐고 물으니, 한 청년은 완도의 각 마을에서 자발적으로 나와 완도을 알리고 완도를 살리기 위해 하고 있다고 답했다.

전라도 지방은 자기 고향에 대한 애착이 다르다는 것은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다시 한번 강한 느낌을 갖게 되었다.

울진인으로서 자부심을 갖자는 다짐을 하긴 했지만, 구체적인 실천방법이 어떤 것인지 고민이다. 이러한 고민들을 나 뿐만 아니라, 모든 울진인들이 하고 있으리라 확신한다. 그 확신들이 쌓이면 언제가는 큰 힘으로 발휘될 것이다.


울진군 기성면 삼산1리 출생/  경기도 성남시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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