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진 문 논설위원
    
이번 호부터 김진문 논설위원이 쓰는 『문학산책』을 연재하고자 합니다. 시,소설,산문(수필)등에 관한 문학 이야기를 내보냅니다. 많은 관심을 바랍니다.(편집자)


이 늦가을에 김명인의 시 <너와집 한 채>를  읊조리면 쓸쓸하고 외롭고, 푸근하기도 하다.

시의 배경은 산 속 고즈넉이 너와집 한 채가 있는 풍경,  붉게 물든 만산홍엽, 그러나 쓸쓸한 죽음의 그늘과 같은 개옻나무들과  주저앉을 듯 세월의 무게를 버티고 있는 너와집 한 채가 있는 곳, 경북 울진군 북면 두천(안말래) 골짜기, 100여전, 보부상들의 애환이 서린 12령 옛길로 선길꾼(보부상)들의 애환이 서린 길이다.

열두고개(12령)는 울진(죽변,흥부)에서 돌재,나그네재,바릿재,샛재,느삼밭재,젖은텃재,작은넓재,큰넙재,꼬치비재,맷재(회비령),배나들재,봉화소천에 이르는 첩첩산중의 고개고개길입니다. 지금은 임도가 되었지만요. 아직도 더러는 옛길이 남아있지요. 시인은 언젠가 이 길을 따라서 두천까지 아니 그보다 더 깊이 매봉산자락 화전민이 살았을 법한 작은 빛내(소광천)를 따라 들어갔을 것이다.

시인도 이 산자락의 길이 옛 선길꾼들의 삶의 애환이 서린 길이었다는 모를 리 없었을 것이다. 문득 시인은 너와집과 길을 통해 우리에게 삶이란 아니 참된 행복이란? 무엇인가? 진부하고 통속적 물음같지만 누구나 한번쯤 해보는 진지한 물음을 묻고 있다. 그래서 인생이란 한때 불붙는 자연의 단풍과 같을진대, 한사람의 인생에는 누구든 범접 못할 세월의 무게가 배어있다는 것을 말함이 아닐까? 그러면서 아무 욕심 없이 살아가며 수제비 뜨는 산골처녀, 그 처녀에게서 느끼는 덜컹거리는 순수한 연모의 정을 나타내기도 한다. 끝내는 삶의 애환도 이제는 아주 지워버리고, 마침내 돌아서지 않겠다한다.

길이 있다면, 어디 두천 쯤에나 가서/강원남도 울진군 북면의/버려진 너와집이나 얻어들겠네, 거기서/한 마장 다시 화전에 그슬린 말재를 넘어/눈 아래 골짜기에 들었다가 길을 잃겠네/저 비탈마다 온통 단풍 불붙을 때/너와집 썩은 나무껍질에도 배어든 연기가 매워서/집이 없는 사람 거기서도 눈물 잣겠네/쪽문을 열면 더욱 쓸쓸해진 개옻 그늘과/ 문득 죽음과 들풀처럼 버팅길 남은 가을과/길이 있다면, 시간 비껴/길 찾아가는 사람들 아무도 기억 못하는 두천/그런 산길에 접어들어/함께 불붙는 몸으로 저 골짜기 가득/구름연기 첩첩 채워 넣고서/사무친 세간의 슬픔, 저버리지 못한/세월마저 허물어버린 뒤/주저앉을 듯 겨우겨우 서 있는 저기 너와집,/토방 밖에는 황토흙빛 강아지 한 마리 키우겠네/부뚜막에 쪼그려 수제비 뜨는 나 어린 처녀의/외간 남자가 되어/아주 잊었던 연모 머리 위의 별처럼 띄워놓고/그 물색으로 마음은 비포장도로처럼 덜컹거리겠네/ 강원남도 울진군 북면/매봉산 넘어 원당 지나서 두천/따라오는 등 뒤의 오솔길도 아주 지우겠네/마침내 돌아서지 않겠네(김명인의 시‘너와집 한 채’전문)

김명인은 울진이 낳은 시인이다. 소월문학상,현대문학상,대산문학상,이형기문학상 등 굵직한 문학상을 수차례 수상한 현역으로 지금은 고려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그의 초기 시들은 영동의 우람한 자연풍경과 동해바다의 끝없는 滄浪, 약소민족의 설움들이 나타나고, 또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잘 표현되어 있다. 어쨌든 그의 시는 인간 존재의 현실과 삶의 진정성을 추구하기에  대체로 무겁다.

또 그의 시에는 고향 울진(후포)의 이야기가 더러 나온다. 『너와집 한 채』도 경상북도 울진이 아니라, 우리나라 오지의 상징이었던 강원도, 그것도 강원남도 북면 두천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두천으로 가는 길은 없다. 너와집도 없다. 순수한 자연의 길은 없다. 인간의 욕심(?)을 실어 나르는 버스길과 임도가 휑하니 뚫려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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