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한 기  박 사

중학 3학년까지, 소설이란 소설은 닥치는 대로 구해서 읽어댔다. 일본 이와나미(岩波 )문고의 세계문학전집을 비롯하여, 우리나라 연애소설을 모조리 읽어 나갔다. 오죽하면 시험 때도 나의 책가방에는 소설 한 권은 반드시 들어 있었다.
 
하기 싫은 공부시간에도 몰래몰래 읽었다. 친구들은 소설박사로 불러주었다. 그런 어느 날, 교지발간을 위해 응모중인 학교 문예반에 단편소설 하나를 써서 익명으로 보냈다가 그 작자를 찾던 문예반 선생님께 발각되어 많은 칭찬을 받고, 나는 소설가가 되기를 꿈꾸기도 하였다.

해방 후, 우리말과 우리글이 쓰여 지면서 놀기 좋아하고 재주 있는 친구들을 규합, 연극공연도 해 보았다. 때로는 작품도 쓰고 무대에 나가 연기도 했다. 어찌나 재미있고 신이 나던지, 그는 여자 연기자가 없는 남학교에서 주로 여자 배역도 알아서 했다.

기계체조에도 능하여 초등학교 3,4학년 때 동리대항 턱걸이 대회에 출전한 적도 있었다. 어른들과 섞여 열여섯 번 턱걸이를 해 일등상을 받았는가 하면, 또 중학시절에는 기계체조부에 있으면서 목뼈를 상해 기브스를 할 정도로 운동에 열중했다. 하지만 그때까지의 나의 이상은 이것과는 딴판으로 너무나 달랐다.
 
그때 경농(京城農高) 수의 축산과에 재학 중이니 수의사가 되는 것은 정한 이치이고, 대학에서는 의학을 희망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평생 글을 쓰며 살아가고 싶었다. 그리고 장가(張哥) 성 아닌 타성받이 불우한 이곳 아이 셋만을 데려다가 끝까지 가르치며 살아가고 싶었다. 장래의 희망은 농장과 목장을 갖는 일, 이는 시골에 있는 전답과 임야만으로도 가능했다.

첫째는 여기서 말 못하는 짐승을 치료하며, 아프고 가난한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고, 외롭고 불쌍한 아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그리고 자급자족하며 답답한 마음을 글로써 나타내며 살고 싶었다. 이것이 최대의 희망이었다.

어릴 때, 그 황잡하고 할머니를 애태우게 한 일들은 모두가 이유 없는 반항이었다. 어려서는 그렇게도 위해 주고 과잉보호에 지나친 환경에서 그는 매사에 심통이 나고 불만스러웠다. 그러나 점차 소년은 한집안의 기둥이고, 그 자신 얼마나 할머님과 그 집안에선 소중한 존재임을 알기 시작했다. 어릴 때의 그 아슬아슬한 곡예도 모험심도 차츰 가라앉고 할머님의 기대대로 안정과 평범함을 꿈꾸게도 되었다. 하지만 6.25의 전쟁은 수의사의 꿈과 의사로서의 꿈, 목장주의 꿈도 앗아갔다.

 6.25는 많은 변화를 그에게 안겨주고 갔다. 3년 전쟁동안 그는 꼼짝 않고 시골에 묻혀 지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그는 이름도 모를 병에 시달리며 한쪽 발에 마비가 왔고, 드디어는 한 다리를 못 쓰기까지 했다. 여기서 그는 행복했던 이날까지를 다시 떠올리며 좌절했고, 한때 죽음이라는 것과 가출이라는 것, 그리고 이대로 평범한 한사람의 촌부로서 인생을 마칠 것을 생각도 해 보았다.
그리고는 밤마다 베개를 움켜쥐고는 많이많이 울어도 보았다, 그렇게 위해만 주시던 할머니도 이 무렵에 세상을 떠나셨다. 그러나 소년은 한 방울 눈물도 흘리지는 않았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나도 강해져야만 한다고.
 
할머니는 평소 동리에 똑똑한 구장 아저씨를 더없이 부러워했다. 그래서 항상 속 태우던 손자를 향해 이런 말을 했다. “ 얘야 제발 너 커서 저 구장만큼이나 되어 이 할머니를 기쁘게  해다오.”
그것이 원이셨던 모양이다. 오죽 못난 손자였을까. 그 할머님이 떠나시자 그는 다시 몸을 추스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주어진 환경 속에서도 문학수업은 어찌어찌 가능했고, 병은 차츰차츰 나아져, 마치 전쟁이 소강상태로 접어들 듯 병도 나아지기 시작했다.
 
이 무렵 시골 한 초등학교 여교사의 사랑과 위안이 더없이 고마웠고, 마을학교 선생들과 어울려 그가 쓴 극본으로 연극도 했다. 그러나 이렇게 시골에서 몇 년 있는 동안 자신은 한없이 낙오되고, 남들은 한없이 커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아버지를 졸라 부산으로 내려가 대학에 진학했고, 중국인의 도움으로 겨우겨우 학교를 다녔다. 6.25의 휴전도 이곳에서 맞았다. 수복 후 대학을 나와 고교 교사에서 3년 만에 대학 전임교수가 되었으니 누구보다 빠른 출세였다.
그리고는 쓰고 싶은 글을 쓰며, 문우들과 사귀었고 문단에도 등단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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