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식 편집국장
나는 어제 서울에서 출판사를 경영하고 있는 중학교 동창 친구로부터 정말 기쁜 소식을 들었다. 공부를 시작한 지 7년만에,  지천명이 되어서야 국문학 독학사 자격시험에 최종 합격했다는 것이다.

그는 나보다는 좋은 환경에서 자랐지만, 서면 삼근리 산골동네 출신으로 시를 쓰다보니 출판업을 하게 되었고, 많은 문인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는데, 자신은 대학을 나오지 못해 항상 미완성 작품 같은 기분이 들었으나, 이제 학벌로 인한 열등감은 없어지게 되었다 한다.  지금까지 그 친구는 자기가 출판했던 책 수십권을 내게 보내 주었다. 지난해는 이광수 작 “원효대사” 1, 2편도 받았지만, 나는 최근에야 그 책을 읽었다.

나는 오래되어 언제인 지 기억도 못하는 데, 청소년기에 이광수의 “원효대사를” 한 번 읽은 적이 있고, “그 책속에서 어떤 노선사가 동해의 일출을 향해 두 손을 활짝 펴고 큰소리로 ” 방아 상아라!“ ” 방아 상아라!“ 를 여러 번 외치는 장면을 기억한다.
 
그 때의 장면은 너무나 강렬하여 지금도 그 선사의 모습이 나의 눈에 보이는 것 같고, 그 외침의 소리는 지금도 내 귓전을 때리는 것처럼 선명하다. 이러한 현실 같은 환상을 불러 일으켜 수십년 간 나의 머리 속에 인상시킨 것은 작가 이광수만의 실력이다. 그의 뛰어난 장면 묘사력만이 가능했던 것이다.

지금도 나는 신년 아침 바닷가로 해맞이를 나가면, 이 대선사 모양으로 두 손을 벌려 들고 막 떠오르는 해를 끌어 안을 듯이, 움켜 쥐고 일출의 기운을 빨아 들일 듯이 “방아 상아라!‘ 를 외친다.
사실 원효대사에 대해서는 허구 속에 등장하는 인물로서, 그에 대한 간략한 소개 글을 읽었을 뿐, 전문적인 그의 저술들을 읽지 못해 그 사상의 깊이나, 인간성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러나 춘원 이광수라 하면, 시인 김소월과 함께 한국 사람치고 그의 작품 한 두 권 쯤은 안 읽은 사람이 없겠고, 그에 대한 정보는 귀 동냥으로도 조금씩은 다 들은 바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젊은 날 내가 이광수의 소설들을 대했을 때는 그의 문학적 재능의 천재성을 발견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원효대사’를 읽고서는 놀라 서울의 친구에게 원효를 소재로 한 다른 작가의 책이 있는 지, 또 이광수의 원효대사 원본과 다른 각색 본도 있을 수 있는 지를 물어 보기도 했다. 

이광수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원효대사’ 의 작품 중 일부의 장면묘사가 뛰어났던 점과, 내가 세계 최고의 아름다운 장편 <연애편지>라고  부르는 ’유정‘ 이라는 감동적인 소설을 쓴 작가라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소설 ‘원효대사’를 다시 읽은 지금 나는 그를 무척 존경하게 되었다. 한국문학의 최거봉이 될 만한 역량을 지닌 작가였다. 해박한 지식, 풍부한 어휘력, 독창적 묘사방법에다가 그 심대한 사상적인 깊이를 더한 작품임을 재발견 했던 것이다.
영국에는, 엘리자베스 여왕이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고 했을 만큼 민족적 자부심으로 여긴다는 대문호 윌리암 쉐익스피어를 가졌다면, 한국에는 그에 버금할 이광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에 대한 이러한 애착만큼 큰 안타까움이 있었으니, 그것은 그의 말년 친일활동이었다. 그를 보고 사람들은 친일문학의 오야붕이라고 부른다. 창씨개명 1호였다는 소문도 있다. 그는 일제 강점기를 관통해서 살아 온 소설가, 언론인, 사상가로서 일본 유학생 시절 동경에서 2.8 독립선언서를 작성하고 도산 선생과도 민족독립을 위해 활동해 왔던 그였다.

그의 일생 연표를 읽어면서 “우리의 위대한 영웅”은 왜 변절하고 말았을까... 만일 해방 직전 변절하지 않았다면, 일제가 그를 제거했을 지도 모른다는 동정심도 든다. 우리는 저, 3대 저항시인을 추억한다. 윤동주, 이육사, 한용운. 이들 시인들의 작품이 뛰어나기도 하지만, 그들의 숭고한 민족정신 위에 그의 작품들은 더욱 빛난다.

이제 얼마 있지 않아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이권 쟁탈전이 벌어진다. 또 얼마나 많은 인사들의 변절을 보게 될 것인 지. 근대사를 보더라도 국내에서 활동하던 조선이 낳은 천재 작가들 이광수, 최남선, 김동인도 변절하고 말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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