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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한기박사
나의 삶 나의 사랑/ 나의 自傳的 이야기 - 6
우리어메, 외갓(外家)집 가던날
2007년 06월 04일 (월) 00:00:54 [조회수 : 2215] 편집부 webmaster@uljinnews.com

   
              
                장 한 기 박사
 
 
내 어머님은 어려서 떠났다. 내 나이 여덟살 때, 그리고 어머님도 스물일곱, 고운 나이에 이 세상을 떠나셨다. 그러나 나에게 어머님에 관한 기억이란 한두가지 밖에는 없다.

나는 우리집안 3대 독자나 다름없는데다가 그 때만하여도 할머님의 사랑이 자극하시어, 나는 애기때부터 우선 할머님 품안에서 떠나보지 못하고 자란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다만 내가 어렸을 때 아직 둘레고름을 매고 있을 때였다.

정확히 생각나는 일은 단 서너가지 뿐이다. 그 중에서 가장 어려서 생각나는 일은 외갓집으로 가던 기억이다. 떠나기 며칠전부터 우리집에서는 술을 걸러고 떡을 쳐 인절미와 찰떡을 몇 소쿠리에 그리고 전과 건어물들을 미리 준비했다.

그래서 어른들은 날을 받아 며느리 친정집에 보낼때면 우선 짐꾼들을 앞에 보내고, 그 뒤에 나와 내 어린동생 순자를 업고 갈 돌이와 나를 업을 큰애기를 앞세우고 그 뒤에 어머님이 따르신다.

외가로 가자면 마을 옆길「옷태밭머리」를 지나「왼골」모래밭을 한참 가다가 논길을 따라 꼬불꼬불, 그리고 한참 솔밭길을 걸어서 산모퉁이 몇 개를 돌아가서야 그곳에 우리어메 친정집이 있었다. 내 생가에서 한 십리 남짓한 거리였으리라.

그날따라 날씨도 맑았으며 산길 좌우에는 늦게 핀 진달래와 철쭉꽃이 만발했다.
그때 나를 업고가던 순이는 나를 등에서 내려놓았다. 짐꾼들도 모두 이곳에 지개를 괘고 한참씩 시원한 솔바람에 쉬어가던 길이었다. 그때 어머님은 나를 업고 왔던 큰애기를 쉬게하곤 내 손목을 잡고 잔솔밭에 지천으로 핀 꽃, 그 중에서도 아주 예쁘게 핀 진달래꽃 몇 대궁이를 내 손에 쥐어 주신다.

그때 어머님의 얼굴과 모습은 잘 생각나지 않지만 노오란 저고리 파아란 깃 동전과 소매동전 그리고 길다란 옷고름도 유난히 고왔다. 어머님은 키도 크셨지만 유독 잘나신 얼굴이었다고 한다,

그런 어머니께서 우리집에 시집오셔 몇 번째 친정 나들이를 가시는 길인지는 몰라도 어쨌든 나에겐 신기한 날이 아닐수가 없었다. 이것이 내 생모와 외갓집에 관한 유일한 추억이다.

어머님의 친정집은 담양전씨(潭陽田氏) 울진 화동(花洞) 북파 종손으로 아마 외삼촌께서는 이집안의 십대가 넘는 종군으로 알고 있다.
보다 내 고향 울진에서는 토성(土姓)으로서 전.주.남(田.朱.南)이 삼성을 꼽으니 더욱 내가 태어난 수북(水北)에서는 전씨판이 과언이 아닐정도로 당시로서는 전씨들이 행세께나 한다고들 했다.

우리 울진 장씨들은 지금은 그 수가 많으나 특히 나의 계보는 울진에서는 몇 집 되지 않는 북파에 속했고 이 북파는 본래가 삼척평전(三陟平田)이 제 고장이었다. 그래서 평전바(平田派)라고도 한다. 그러나 현재 울진 장씨 중 북파가 고려말 안렴사를 지내신 천(天)자 영(永)자 할아버님은 장자로 말하자면 울진서는 그래도 우리집이 장손 집안이었다.
허나 우리집은 할아버지때 삼척에서 이리로 이사왔기 때문에 이곳 토성들인 전.주.남씨들은 그리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을뿐더러 매사에 있어 배타적이었다.

그러나 할아버지께선 재력이 있는데다가 워낙 발이 넓으셨기로 향교의 장은 물론 이렇다는 모임에도 빠지심이 없었다. 그리하여 집안 자식들의 혼사도 전.주.남을 가리지 않고 성사를 시키고 보았다. 그러나 내 아버지 혼사때는 깨나 곤욕을 치루셨던 것으로 듣고 있다.

그것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인데다가 이곳 풍속대로 전.주.남 중 그 중에서도 전씨네의 종가집 딸을 며느리로 맞는다는 것은 깨나 어려운 일이었다고 한다. 더군다나 우리는 외지에서 온 사람들을 의심하였다. 그리하여 어찌 어찌 사방으로 줄을 대어 우리 아버지 열네살에 우리 어머니는 열여섯살에 성혼하게 되었다.
우리집으로서는 과분한 혼사라고 했다.

그러나 외가는 별로 넉넉한 살림이 못 되었다. 그래도 종가인 만큼 제사가 많고 식구들도 많다보니 자연 문중 문토만으로 근근히 생활을 유지해가고 있었다. 어머님 시집 오실때도 이곳은 경상도 풍습이기는 하나 거의 우리집에서 거기 말대로 싸가지고 오다시피 하였다.

시집온 우리 어머니께선 층층시하에 귀한 며느리긴 했지만 남편이신 내 아버지께선 나이도 어린데다가 문약한 체질이시라 할머니께선 날을 받아 아들을 어머님방에 들여 보냈다고 한다. 그러나 아버님께선 일찍 신동(神童)이라 불릴 정도로 문제가 뛰어난데다가 또 일찍 개화된 매형을 만나 빨리 머리(상투)를 자르시고 일찍 서울 유학길을 떠났다.

그 곳에서 중학과 전문학교를 마치시고 내내 아버님께서는 서울에 머무셨다. 그런 관계로 일년 열두달 여름 겨울 방학때 잠시 다녀가시는 아버님을 대하는 것이 고작이었던 것이다. 그러한 중에도 어머님은 나와 내 누이, 그리고 또 하나의 누이를 낳고는 산후병으로 이 세상을 하직하고 마셨다.

27세 정말 덧없고 아까운 나이였던 것이다. 각설하고 어머님 떠나신 후에도 나는 할머니와 집안 어른들에 가려 참 어머님의 정을 그리움 없이 자랐다. 아버님은 서울에서 곧 새 장가를 드시고 계모가 있었지만 그저 좀 서먹하고 어색할뿐 어머니를 다시 그리워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러던 중 어느해 여름이었다고 생각한다. 아버지와 함께 새 어머니가 내려 오셨고 그때 풍속으로 새 어머니는 전 어머님 친정집에도 인사를 가야하는 풍습이 있었다.

그래서 그때도 우리집에서는 갖은 정심(精心)을 다하여 떡과 고기를 장만하여 일꾼에게 지우고 나와 내 누이가 함께 새 어머니를 따라 외가로 갔다. 일꾼들은 돌아가고 저녁참에 우리는 외가쪽 식구들과 새 어머니, 나 그리고 내 누이와 함께 저녁을 먹는 시간이었다. 물론 어두운 밤, 아직 그 곳에는 그때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으므로 우리는 아마 대식구 모두 마당에 멍석을 폈고 그곳에서 저녁을 들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모깃불이라하여 나락겨를 태우면 하얀 연기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외가는 이때도 가난했다. 그리고 뭔지 나에게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아니 서글프고 언짢은 심정이 울화로 솟구치고 있었다. 나는 울음을 터뜨렸고 그 이유는 나도 몰랐다.

나중엔 달래다 못한 외숙과 외숙모조차 나를 야단치시었고 계모는 눈시울을 붉히셨다. 아마 내 나이도 열두살쯤 됐을 때였다. 나는 본래 집에서도 떼쓰는 일이 많았고 나도 알 수 없는 불만을 터뜨릴때가 많았다. 그때마다 나를 아끼시던 할머님도 또 누구도 내 속을 몰라 애타하신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다가도 멀쩡할때면 남들은 모두 나를 향해 “저놈 뱃속에 영감 열이 들어앉았다“고 했다. 그렇게 어려서는 엉뚱한 데가 많았다. 모든 것이 나는 마땅치가 않을 때 이를테면 주위가 모두 내 생각만 못할 때 나는 심통을 부리고는 하였었다.

그리고 분위기가 서먹하고 자꾸자꾸 대화가 겉돌아 남의 눈치를 살필 때 나는 부화가 났다. 허나 어른들을 꾸짖을 수는 없지 않는가. 이럴때 나는 울음과 나또한 엉뚱한 짓거리로만이 나를 달랠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날도 아무리 생각해도 계모는 이곳에 자리할 자리가 아니었다고 생각한것같다. 풍습이 그러하다니 더욱 나는 못견디게 불만 스러웠고 이렇게 못사는 외가의 실체를 계모에게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싫었던 모양이다.
아무튼 나는 그 날의 이유를 모른다. 그리고 나는 자꾸자꾸 울었다. 밤은 점점 깊어오고 모기떼는 극성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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