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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한기박사
나의 삶 나의 사랑/ 나의 自傳的 이야기 - 마지막회
서가(書架)를 치우며
2007년 06월 25일 (월) 09:13:51 [조회수 : 3648] 편집부 webmaster@uljinnews.com

   
장한기    문학박사
얼마전 이층 도배를 끝내고 책장을 다시 정리하는데 아내가 올라와 낡고 소용없는 책들은 이제 그만 정리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는 주문이다. 실은 그렇다. 낡고 오래된 책들은 이미 볼품도 없고 또 여기저기서 보내온 신간들이 마구 뒤섞여 무질서하다.

시집과 수필집들을 비롯하여 월간지까지 단 한번도 훑어 본적없는 많은 신간들이 무질서하게 꽂혀있다. 그리고 오래된 고서중 5.60년전 학생시절에 사 모았던 옛날 책에서부터 오늘날의 새책까지 수천권에 달하는 이 많은 책들 중에서 과연 내 여생에서 필요로 하는 책은 도대체 몇권이나 될까?

때로는 간식을 줄이고 빠듯한 생활비에서 한푼 두푼 모아 샀던 당시로서는 소중하게는 여겨졌던 저 책들을 바라보며 나는 잠시나마 착잡한 감회에 사로잡힌다. 물론 개중에는 다음날을 기약하고 소중한 듯 여겼으나, 단 한번 읽지 않은 책들도 눈에 띈다.

우선 그전 같으면 논문집과 전공서적 부전공, 이를테면 연극과 국학관계 일서(日書)와 양서(洋書), 한서(漢書)들을 구별하고 전집류를 따로 모아 도배 후 책장을 다시 정리해야 하겠지만, 이 많은 서책 중 이제는 그 분류에 앞서 버릴 것과 남길 것을 우선 가려내야만 한다.

허나 지금 이 나이에도 막상 버릴 것은 하나도 없다. 모두가 소중하며 두고두고 또 읽고 보고 싶은 책들이다. 그러나 그것은 마음뿐, 이제 학교를 물러나 (정년퇴직) 팔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두고두고 읽고 다시 보기엔 시간이 짧고 아쉬울 뿐이다.

그래서 우선 버릴 책과 남길 책만을 고르자니 마음은 저리도록 아파온다. 이책 저책 모두가 정감이 간다. 허나 나는 결심을 하고 마치 전쟁터의 용사처럼 무참하게도 아주 소중한 것 외에는 모두 골라 한 곳에 쌓아 놓기 시작한다.

전집류가 많고 잡지가 허다하나 학회지와 신간 시집, 수필과 소설, 희곡집, 그리고 일반 교양지들도 수월찮게 많다. 여기까지 고르는데는 그래도 심기는 괜찮았다.

그러나 오랜 장서고를 열었을 때, 거기서는 할아버지 때부터 집안 후손들께 읽히고져, 그 예전「논어(論語)」,「맹자(孟子)」를 비롯해「대학(大學)」과「소학(小學)」「통감(通鑑)」과「명심보감(明心寶鑑)」심지어는「동몽선습(童蒙先習)」과「천자문(千字文)」까지 직접 한지에 기름을 매겨 책장으로 접어 만든 책, 거기에 직접 모필로 쓰신 한적과 시문(詩文) 등 그리고 아버님의 그 예전 1930년대 초, 학생(佛專) 때의 노트와 유품, 그리고 모필로 남기신 시문(漢詩)들은 내 마침 모교의 박물관장으로 있을 때 교사(校史) 자료실에 기증하고, 남긴 몇 권의 노트와 시문 그리고 한지 두루마리에 쓰신 한시 등은 차마 건드릴 수 없는 나에게는 가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아버님께서는 일찍 관동귀재(關東鬼才)라는 소문이 날 정도로 열살전에 이미 사서와 삼경(四書三經)을 떼시고 시전(詩傳) 서전(書傳)까지 마친 재사로서 역사와 유학(儒學)에 밝으시고 동시에 많은 고사와 시문 등을 암송하고 계셨기에 그의 남기신 글들도 적지 아니 많으셨다.

언젠가 아버님의 시문들은 내가 번역하여 후세에 남기리란 생각도 가졌었다. 정년 얼마전의  일이었다. 내가 초대 원장으로 있던 동국대 문화예대학원 고위과정에는 이 나라 문화 예술계의 하고 많은 분들이 몰려 왔다.

이 나라 중진 원로급 인사들도 있었지마는 그들은 하나같이 새 시대 새 욕구와 지식의 재충전을 위해 현직 교수와 박사학위 소지자들도 있었다. 당시 예총회장이자, 국회의원 이었던 왕년의 영화배우 신영균, 신성일, 판소리 인간문화재인 국창(國唱) 안숙선, 무용가 이성림 현 예총회장, 숙대(淑大)의 박인자 교수(발레), 경희대의 정재만 교수(한국무용), 동국대의 홍성기 교수(경영학 박사, 후일 불교방송사장), 전 국립극장장 백성희 예술원회원 등등 많은 재재다사들이 몰려 왔다. 물론 무엇을 배운다기 보다 새시대 새정보와 미래에 대한 서로간의 정보교환과 비전을 나누기 위함이었다.

그들 중 골동품과 옛 서화들을 수집하고 또 이를 감정하는 골동품 감정가들도 있었다. 부산에서 온 이동원(李東圓)이라는 분이 바로 그였다. 그때 내 선친의 육필이신 옛 송나라 문천상(文天祥)의「정기가(正氣歌)」를 보시고 이를 다시 표구해 온다며 가져갔다.

그때의 표구에는 유리도 없었기에 먼지와 파리 똥으로 보기조차 부끄러웠다. 그로부터 며칠  후 다시 내 방에 나타난 그는 아버님의 아호가 분명한, 똑같은 서체에 이는 대필로 쓰신 「士志於道而恥惡衣惡食者不足與議也」(선비가 도에 뜻을 두고 안좋은 음식과 안좋은 옷을 부끄러워한다면 그와 더불어 상론 할 수 없다.)라는 표구 하나를 더 가지고 나타났다. 일찍이 공자(孔子)께서 그의 제자 자로(子路)에게 준 말이었다. 부산 어느  고서화점에서 이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때 다시 아버님을 대하듯 반가웠고 그에게는 후하게 사례하고 다시 내 수중에 넣을 수가 있었으며, 지금도 내 집 응접실 벽에는 크게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아이들에게 교훈으로 삼을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이토록 아버님께서는 한학에 통달 할 뿐 아니라, 서예와 시문 그리고 신학문에도 능통하시었다. 아버님께서 49세 이른 나이에 이 세상을 하직 하셨으니, 미쳐 그 선대들께서 남겨 놓으신 고서와 유품들을 정리할 겨를도 없으셨다.

그것이 이제 아버님의 유품까지 그 양이 내게로 돌아 왔으니, 크게 많은 분량은 아닐지라도 자손으로서는 차마 손대기가 어려운 것이었다. 그렇다고 또 아이들에게 이것까지 전부 물려줄 수는 없는 일, 차마 그것까지 버리려고 한쪽에 쌓아 놓은 책 더미 속에 버리지는 못하고 따로 또 한쪽에 쌓아놓기 시작했다. 그러나 며칠 후 내 연구실에 주 한차례씩 나와서 내 강의를 듣고 있다는 박사과정 학생들을 불러 폐기된 책 가운데 혹시 논문집 등 필요로 하는 것들을 가져가라 했을 때도 나는 이것만은 그들에게 내 놓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거반 버릴 것 중에서 학생들이 가져가고 남은 것들은 따로 묶어 대문밖에 내어 놓았더니 몇 시간도 안 되어 자취 없이 사라져 갔다. 혹 그 속에는 다시 보아야 할 귀중서는 없었는지. 지금도 내 서고 한편에는 아직 선대 때부터 있어온 한적들이 가보(門中族譜)와 함께 큰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 내용들이 아까운 것이 아니라 선대 때의 그 자식들에게 전수하고자 한 그 마음과 육필이 아쉬운 것이다. 지금도 여기엔 내 선대의 할아버지 아버지 때의 묵향과 그 정성이 스며있는 것만 같이 느껴진다. (마지막 회)

<필자 장한기 박사의 주요약력>

문학박사/ 1930년 울진북면소곡2리에서 父 張炳郁, 母 田又江의 長男으로 出生/ 조모 슬하에서 울진 제동중학교를 거쳐 울진초등학교 졸업/ 서울농업학교를 나와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과 동시에 극작가, 문학평론가로 데뷔/ 선린상고 교사를 거쳐 1958년 동국대 교수, 서라벌예대, 중앙대, 성신의대, 세종대, 한국외대 대학원등에서 석·박사학위 지도/ 서울시 교육공로 표창과 동랑 유치진연극상, 국민훈장모란장을 수여받다.    
현재는 동국대 명예교수로 있으며,「사회복지법인 신곡(薪谷)」을 설립, 매년 10개 면의 불우 소년소녀 가장들을 돕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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