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간 이름을 걸고 외길 ‘불황’은 남의 얘기
가죽코팅기와 코팅재료 필름생산 독보적 위치

26년간 자신의 이름을 걸고 오직 외길 가죽제품을 만드는 데 사용하는 코팅기계를 만들어온 (주)은하의 백은하 대표. 그는 또 한사람 울진의 자부심으로 재부산 출향인이다.

국내에서 가죽을 사용하여 제품을 만드는 사람들은 ‘은하기계’를 기억한다. 현재 국내에 보급되어 있는 가죽제품 코팅기는 거의 은하 제품이다. 그는 1981년 기계 수리 및 용접을 하는 철공소 ‘은하공업사’를 창업하여, 현재 국내 가죽코팅 분야 생산라인 약 90% P,U 필름 약 70%의 시장점유율로 동 업계 최고 선두주자로 부상했다.

원재료 가죽의 거친 표면 그대로는 옷이나 신발 등의 제품을 만들어 상품화 할 수 없다. 재료로 표면을 깔끔하게 처리하기 위해서는 타 재질과의 접합이나 겉면 코팅이 필요하다. 은하공업사를 차려 가죽기계를 수리해 주던 백 대표는 작업능률을 올릴 수 있고, 제품의 품질도 높여 줄 수 있는 기계를 개발했고, 이것이 오늘날 (주)은하의 성장에 토대가 되었다.

그는 후포 웅굴재에서 2남 4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백암우(故,별명 백바우)씨는 작은 배를 가지고 고기를 잡았으나 자식들에게 큰 공부를 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백 대표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철공업 기술을 배우기 위해 “후포철공소”(사장 안태주)에 입사했다. 당시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힘든 가난했던 집 아이들은 이 공장에 취직하기를 선망했다.

아버지는 막내아들이 배를 물려받아 어부가 되어 곁에 있어 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는 시골 울진에 안주하고 싶지 않았다. 3년간 기술을 익혀 부산으로 내려간 것이 1970년도 도시에서 자신의 능력을 시험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

지금도 막역하게 지내는 재부군민회 김경만 직전회장을 만나 직장생활을 같이 하였다. 그 후 1973~1976년 군 복무 후 목재소 공무과 기계담당에 취직을 했다. 1978년도 결혼을 하고 직장 생활을 계속하면서 어떻게든 자신의 사업을 하고 싶었지만, 자금부족으로 기회만 노렸다.

81년도 결국 북구 삼락동에 방 딸린 작은 점포를 빌렸다. 공장이라기보다 선반 한 대, 용접기 한 대를 들여 놓을 수 있는 작은 공간이었다. 이것이 은하 공업사의 시작이었다. 새벽 4·5시 늦어도 6시에는 일어나 낮에는 일감을 구하러 다니고, 밤에는 보통 12시까지 정말 열심히 일했다.

마침 그 주변에 가죽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이 있었고, 고장이 날 때마다 그를 불렀다. 이를 계기로 가죽공장 사장들과 머리를 맞대 코팅기계를 개발하게 되었고, 오늘날 가죽코팅기계 제작의 일이 평생 사업이 됐다.

1989년 7월 양산체제에 돌입, 국내는 물론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 인도, 라틴 아메리카 지역에 100여개의 기계를 공급하였으며, 현재 가죽 코팅라인에서는 기술력을 바탕으로 세계 으뜸을 자부할 수 있는 노하우를 지닌 기업으로 성장했다.

현재 그는 경남 김해시 어방동 소재 6백평의 공장에서 28명의 종업원들과 “남들은 죽는다.”고 아우성칠 때도, 불황을 모르며 그동안의 땀과 노력의 결실을 맛보고 있다. 은하는 70억원의 자산에 금년 매출목표 60억원. 연간 약 20%에 가까운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그의 기업이 이렇게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첫째는 그의 피나는 노력의 산물이지만, 업계의 상황을 남보다 빨리 읽어낼 수 있는 거시적 안목을 지녔기 때문이다.

창업이후 은하공업사는 기계를 제작하여 판매하는 업체였다. 국내시장의 코팅기계 공급물량이 포화되기 전, 그는 남들보다 한 발 앞서 1992년 법인 (주)은하기계로 전환하면서 <가죽+합성수지>의 필름을 생산하는 체제를 갖추었다. 현재 은하는 코팅기계를 공급한 기업을 상대로 P. U. 코팅 필름을 판매한 수입이 매출총액의 80%를 차지하여 안정적 성장을 구가하고 있다.

그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판매대금을 떼이기도 부지기수였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남들처럼 시대변화를 읽어내지 못했다면, 외길 26년의 역사를 만들어 내지도 못하고 기계 수요가 줄어들면서 공장문도 닫았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코팅기계를 공급한 후 기능을 향상하여 지속적으로 A/S를 해 주고, 제품원료인 P. U.필름을 공급하면서 계속 품질을 업그레이드 해 주고, 우수한 기술과 품질의 기계와 코팅 원재료를 공급해 주니, 꿩 먹고 알 먹는 사업이었다.

중국 동해안에 50여대의 생산라인 거의 전량을 은하에서 공급하면서, 국내시장처럼 중국 시장도 은하의 독무대로 만들기 위해 아예 직원 1명을 광동성 광저우에 파견해 두었다. 그전에는 매달 2회 정도 직접 드나들어 중국인보다도 중국 각 곳을 더 많은 곳을 다녔다고 회고했다.

1996에는 통기성 P. U. 필름을 개발, 습식라인 (WET TYPE COATING LINE)을 자동화했다. 가죽제품의 품질을 높이는 획기적인 발명이었다. 전에는 공기가 통하지 않는 코팅 재료를 이용, 제품을 가공하는 기계장치인 건식라인 뿐이었다. 통기성 필름 양산체제에 돌입하면서 (주)은하로 회사 명칭을 바꾸어 완전히 백대표의 이름과 같게 했다.

통기성 P. U. 필름의 대표적인 사용례는 제약회사에서 판매하는 인체에 붙이는 일회용 파스의 재질이다. 통기성 P. U. 필름은 국내 타 회사 또는 외국에서 생산되지 않는 (주)은하의 독자적 기술이다. 그러나 신 개발품 통기성 생산라인은 기존의 제품의 능률과 품질에서 차이가 현격하지만, 기존의 2~5억원 정도의 코팅라인보다는 4~10배나 비싼 20억원으로 구매자가 없었다.

오히려 이것 때문에 은하는 신개발 기계를 이용하여 필름을 직접 생산하는 계기가 되었고, 타사에서 감히 따라올 수 없는 국내외 시장의 독보적 존재가 되었다. 국내 가죽코팅업계 뿐만 아니라 중국 등 국제시장에서도 감히 (주) 은하를 따라올 엄두도 내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백대표의 기업경영 방식은 단일품목의 대량생산 수법이 아닌 소량생산 다품목 전략이다. 따라서 그의 품목다각화를 위한 연구개발에 대한 집념은 계속된다. 그의 회사에서 생산되는 필름 접합 가죽제품들은 가방, 신발, 가죽쇼파, TV LCD 내부 부품, 약품포장재 등이지만, 아직 개척될 여지는 무궁무진하다. 최근에는 땀이 나도 미끄러지지 않는 통기성 가죽 코팅제품의 골프채 손잡이를 개발·시판하여 재미를 보고 있다.

요즈음 젊은이들 취직이 안된다고 한숨짓습니다. 은하의 경우, 유능한 인재들이 들어와 신제품과 영업마케팅을 개발하면, 발전 가능성이 무한합니다. 그런데 규모가 작아 보이고, 제조업을 기피하는 현상 때문에 기회를 놓치고 있습니다.
94년부터 국방부로부터 병력특례업체로 지정을 받아 현재까지 25명의 젊은이들이 배출되었고, 지금은 모범업체로 선정되어 현재 7명이 군복무를 대신하여 일하고 있습니다. 이들 중에는 은하에 남은 사람도 있고, 타 기업에 취직하여 모두들 건실하게 직장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가끔은 은하에서 일을 배울 때 고마웠다는 인사전화도 받습니다. 그런데 3년간 현역 복무를 마치고 나온 젊은이들은 은하에 입사를 했다가 한 달을 채우지 못하고 그만둡니다. 얼마나 나약한지 조금도 힘든 일을 견디지 못합니다.

그는 군에서 젊은이들을 망치고 있다며, 요즈음 세태에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그동안 자기의 삶을 개척해 오는데 고마운 사람들로서, 먼저 자신이 잠을 안자면서도 연구`개발할 수 있었던 건강한 체력과 강인한 정신력을 물려준 부모님께 감사드린다고 했다. 그리고 부인의 헌신적인 내조와 두 남매 자녀들의 모범적인 성장, 특히 김경만 직전 재부군민회장 내외와 친구들의 격려 덕분이라고.

그의 자녀 남매딸 용주(27세)양은 국내 작곡부문에서 뛰어난 재원이다. 03년도 경성대 3학년 재학중에 국내 최대 규모와 권위의 창작음악경연대회인 ‘난파음악제’에서 ‘비경’이라는 작품으로 입상하여 울진이 아니라 한국을 빛낼 가능성을 보여줬다. 현재 미국 유학중이다.

백 대표는 15~16년째 군민회 활동을 통해 고향사람들과 어울리고 있으며 현재 후포면민회 회장이다. 그리고 군민회를 뒷받침하고 이끌어 가는 재부 출향인 들의 모임인 ‘진우회’ 회원이며, 고향의 초등학교동창회 모임에는 빠지지 않고 참석하고 있다.

고향발전의 바람이라면 백암산과 칠보산의 중간 휴양림을 만들고, 관광객들이 후포해수욕장에서 연중 즐길 수 있는 노천 해수욕장만 생각 할 것이 아니라, 돈 많은 중국인을 끌어 들일 수 있는 계획도 세웠으면 좋겠다고. 땅 덩어리 큰 중국의 내륙인들이 중국 연안의 똥물들을 보다가 맑고 깨끗한 동해안의 바다와 회, 자연들을 맘껏 즐기며, 환상에 빠져들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한다면….

현재 살고 있는 주례 청구아파트내의 청산산악회 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후포면민회들의 대상으로 산악회를 만들 계획이다. 나아가 군민회에도 산악회가 결성되기를 바란다며, 재부 군민들의 건강과 우애를 더욱더 다져 나가는데 앞장서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안정권부산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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