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광사 주지 자  성
“참” 이라는 말을 우리는 참 좋아합니다. 참이란 진실이자 본질이며, 세상의 인위적인 조작을 탈피한 원래 그대로이자 자연부처가 바로 참입니다.

참지도, 참교육자, 참진리, 참지혜처럼 ‘참’ 이란 말하고자 하는, 표현하고자 하는 본래의 그것을 남들이 믿지 못하거나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붙여지는 허울 좋은 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도자이면 지도자이지 참지도자 따로 있고, 그냥 지도자 따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참이라는 말을 사용해야만 하는 것은 진실을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상(相)을 가지고 하는 것들은 언젠가는 삐걱대기 마련입니다. 상을 여의고 떠나면 그것이 바로 진실입니다. 상을 여의고 세상에 상도 이름도 알리지 않고 살아가는 그 사람이 군자이며, 덕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조차 논할 필요가 없습니다. 욕심이 없는 사람이 되면 당연히 지혜와 덕은 따라옵니다. 욕심이 없는 세상은 바로 평등 세상인 것입니다. 평등 세상이 도래 한다면 지도자란 있을 필요가 없겠지요. 하지만 이 세상은 아직 우리에게 준비되지 않았다고 말을 합니다. 여기 절집에서나 사바세계에서나 큰 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여전히 지도자를 필요로 합니다.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에서 ‘정치를 할 줄 아는 사람은 짐 실은 소를 이끌고 큰물을 건너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소를 이끄는 사람이 똑바로 이끌어 가게 되면, 무사히 큰물을 건너가는 것과 같이 일체와 같아서 많은 사람 가운데는 반드시 바로 지도하는 사람이 있어야 그릇된 길을 행하지 않게 된다’ 고 하셨습니다.
 
‘지도자’ 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이전에 그들도 인간입니다. 하지만 인간답지 않는 사람이 학문이 있고 지혜가 있다고 해서 지도자가 된다면, 박사가 천지인 요즘 시대에 지도자 아닌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자연스러워져야 합니다. 물이 흘러 바윗돌에 부딪치면 부딪치는 대로, 굽으면 굽이치면 되고, 좁으면 기다리고 나뉘어 흘러가면 됩니다. 바로 그렇게 사는 사람이 제대로 된 사람이며, 그런 사람이 바로 지도자인 것입니다.

지도자의 길을 가는 사람은 소를 편안하게 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럼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조건을 따지지 않아도 저절로 지도자가 됩니다. 사람들을 즐겁고 편안하게 할 때 지도자는 자신의 역할을 다한 것입니다.

욕심을 버리고 강처럼 계곡처럼 유유히 흘러가는 자연인이 되기 위해서는 화두를 들고 끊임없이 수행, 정진해야 합니다. 화두를 든다는 것은 끊임없이 의심하는 것입니다. 철저히 자기 자신을 보라는 것입니다. 말과 함께 행동이 일치해야 합니다.
 
마음이란 본래 하나이며, 부처와 중생의 마음은 다르지 않습니다. 즉심시불(卽心是佛), 즉 마음이 부처라 했습니다. 그 마음을 좇기 위해 화두를 호미삼아 매일매일 마음의 밭을 가는 농부로 수행하시면, 그것이 바로 상도 여의고 욕심도 벗어버린 자연인이 되는 길입니다.

끝으로 정치, 경제, 교육, 문화 등  각 분야에서 자의든 타의든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분이라면, 어떤 일을 할 때 과거를 항상 한번 씩은 돌아봤으면 합니다. 지금 이 나라는 과거 없이 우뚝 솟은 것이 아닙니다. 과거의 무수한 선각자와 애국자들이 이 나라를 후세에 물려주기 위해 피를 흘렸습니다.

과거를 거울삼아 조금만 더, 조금씩 더 청렴하려 하고, 지혜와 덕목을 갖추려고 노력하는 지도자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 근본과 본분을 제대로 지켜 나간다면 잘 되게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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