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1592년 임진년(壬辰年) 아계 이산해 선생은 이곳 울진 평해로 유배를 왔다, 선생은 중앙정치의 핵심인 영의정에서 유배자로 전락하여 정신적 충격과 고뇌가 컸으리라 짐작된다. 이때그의 심적 평정은 울진의 수려한 풍경과 자연이었다. 타고난 천재적인 문학적 재능을 발휘하면서...
그는 월송정, 망양정에서 시를 짓고, 백암에서 온천을 하며, 백암온천의 효능과 우수함을 글로 남겼다. 토착민과의 인간적인 유대를 맺어 울진의 생활사와 기후 풍토에 관한 수많은 기록도 남겼다.
울진 평해에서 쓴 아계 이산해 선생의 500여 수에 달하는 시문을 문학계와 연계하여 문학인과 울진 관광객이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시문학회를 열고 세미나를 할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추사 김정희 선생의 유배지인 제주에는 매년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듯이 아계 이산해선생의 많은 유적지와 고증적 시문이 남아있는 울진을 문학적 테마고장으로 개발하여 지역문화계를 활성화시키고, 전국적인 문학고장으로 자리 매김하였으면 좋겠다.
이곳이 조선 선조때 영의정을 지낸 아계 이산해 선생이 낚시를 하면서 풍류를
즐기시던 곳이였는지 정말로 몰랐습니다.
사실 같은 시기에 정승을 지내신 서애 류성룡 선생은 이름이 많이 알려진 분이었으
나 이산해 선생은 좀처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후포의 향토 사학자이신 정돌만님께서 울진신문에 아계 선생의 후손들과
광품리 남대천변을 소개하는 사진을 본적이 있었으나 제 자신도 이산해라는
사람이 누군인지 몰랐습니다. 작년 KBS드라마 이순신을 보고 이산해 선생이
서애 류성룡선생과 송강 정철선생만큼 유명한 분인줄 알게되었습니다.
류성룡선생은 역사책에 많이 나와서 누구나 잘 알고
정철선생은 비록 정치적으로 다소 간신으로 묘사되었으나 가사문학의
대가로 국어시간에 많이 들어 잘알고 있으나
아계 이산해선생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유명한 인물이 우리 고장에서 유배생활을 했다는것을
울진사람들 조차도 대부분 모르는 실정입니다.
하루빨리 아계문학의 테마고장으로 만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