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흥리 주상태씨...태풍 루사때 복구비 20억 따내

                                   작성자 : 매일신문 울진·황이주기자 ijhwang@msnet.co.kr  
                                                  2008-05-13 14:03:54    

            ▲ 주 상 태 이장
'상왕(上王) 의원, 왕(王) 이장, 대흥리 멋쟁이, 갤로퍼 신사, 주 이장….’

경북의 동북단인 울진군내에서도 알아주는 오지 마을인 울진읍 대흥리 주상태(75) 이장의 별칭이다. '상왕 의원'은 주 이장이 대구 동갑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의 아버지임을 사극적(史劇的)으로 표현한 것이고, '왕 이장'은 울진읍의 28개 마을 이장들 중에서 리더 역할을 해 온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대흥리 멋쟁이'는 산골 마을 이장답지 않게(?) 늘 양복이나 콤비 차림을 하고 다녀서이고, '갤로퍼 신사'는 운전해 다니는 차량이 갤로퍼라서 그렇게들 부른다. '주 이장'은 마을 일을 맡아보면서 붙은 가장 평범한 호칭이다.

"다 정겨운 이름이지만 그래도 가장 기분 좋은 호칭은 역시 '이장'입니다. 요즘이야 세상이 변해서 역할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한때는 이장이 만병통치약처럼 통용되던 시절도 있었어요. 면 서기들이 이장 딸이라면 얼굴도 안보고 장가들던 그 시절에는 이장의 한마디가 곧 법이기도 했습니다."

고희를 훌쩍 넘긴 주 이장에게 이장이란 마을의 안녕과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책임자란 의미가 훨씬 더 강하다. 이 때문인지 남들이 부러워하는 '국회의원 아버지'란 호칭보다 '대흥리 이장님'으로 불리길 더 바란다.

주씨가 이장이 된 것은 7년 전. 마을 원로들에 의해 추대됐다. 이유는 의외로 간단했다. 60가구 115명이 사는 마을에서 이장 일을 맡아 볼만한 사람이 없다는 것. 몇 명 없는 젊은 사람들은 직장 때문에, 70세가 넘은 이들은 나이가 많아 부적격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이것은 표면적인 이유일 뿐 원로들의 속내는 달랐다. 당시 검사 아들을 둔 힘 있는 사람이 마을을 대표하면 아무래도 군청 등 관계기관이 더 신경을 쓸 테고, 숙원사업 해결 등 마을 발전을 더 앞당길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기대심리에서다.

대흥리는 울진읍내의 마을 중에서도 가장 오지다. 60가구라곤 하지만 본동과 깨밭골·돌산골·건잠 등으로 촌락들이 산자락을 따라 뿔뿔이 흩어져 있다. 때문에 주민들이 한자리에 모이기도 어렵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각종 사업에서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였다.

하지만 주 이장이 동네일을 맡으면서부터 사정이 크게 달라졌다. 대표적인 예가 태풍 루사 때다. 마을 복구비로 국·도·군비를 무려 20여억원이나 받아냈다. 이 때 처음 깨밭골과 돌산골에 시멘트 포장도로가 생겨났다.

"동네에선 검사 아버지가 이장을 맡아 수십년간 안되던 일을 바로 해결했다며 난리가 났어요. 하지만 사실은 좀 억울해요. 태풍이라는 재난이 있었고, 또 이를 관련기관에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데 다리품을 판 결과지, 검사 아들을 둔 덕에 예산을 더 따온 게 아니거든요."

주 이장은 이장을 하면서 애마를 두 번이나 바꿨다. 취임하자마자 2인승 갤로퍼 밴에서 테라칸으로, 다시 작년 7월 7인승 산타페 신형으로 교체했다. 물론 차량 구입비는 주 의원을 비롯한 자식 3남매가 보태준 돈이다. 마을 노인들이 목욕을 가거나 5일장을 보러 수㎞ 떨어진 읍내까지 나갈 때 편안하게 모시기 위해서다. 이 애마는 아내 박금랑(73)씨보다 마을 주민들이 더 애용할 정도다.

주 이장의 역할은 마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마을간, 이장들 간에 분쟁이 있을 때 해결사 역할 또한 그의 몫이다. 때문에 이장들 사이에선 '왕 이장'으로 통한다. "각 동리 이장들이 자기네 마을이 먼저라며 생떼를 쓰는 경우가 많은데 이럴 때일수록 대화와 타협이 필요합니다."

주 이장은 요즘 그 어느 때보다도 바쁘다. 34년 전 새마을운동 붐이 일던 당시 지은 동회관과 노인회관 신축에 매진하고 있는 것. 하지만 걸림돌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은 예산. 2층 건물을 짓는데만 2억원 가까운 돈이 예상된다. 부지 200평은 이미 3천만원의 예산으로 확보해 둔 상태.

하지만 건축비 확보가 관건이다. 다음은 법적인 문제. 동네 자체가 불영사 계곡을 끼고 있어 회관 예정 부지도 문화재보호구역 내에 있다. 문화재청에 진정도 넣고 해서 긍정적인 답변을 받아 놓곤 있지만 개별법 적용 등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늙어서 무슨 고생이냐'고 아내와 자식들이 나무라지만 난 그렇게 생각 안해요. 이장이 시쳇말로 별 끗발은 없지만 이보다 더한 봉사의 자리도 없어요. 하지만 올가을 공사에 들어가 내년 봄쯤 회관 건물을 완공하면 미련없이 이장직에서 물러날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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