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 : 2020.9.29 화 13:44
> 뉴스 > 오피니언 > 연재
     
남도국 나의삶·나의 영광
제9편 / 43년 군산 생활
우리의 과거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2008년 07월 01일 (화) 16:13:57 [조회수 : 2194] 편집부 webmaster@uljinnews.com

   
 
    미공군 제8전투 비행단사령부
                  前 남도국 공보관
  
 
59년 11월 이래 2001년 8월 까지 나는 전라북도 군산에서 살아왔다.  61년 11월 군에서 제대한 후 줄 곳 나는 그 곳 군산비행장 미 제8전투비행단 헌병대 군견대원으로 첫 직장 생활을 시작하여, 65년 9월 현재의 부인을 만나 결혼 하였고, 43년 간 그기에 살며 딸 아들 다섯을 낳아 키우고, 가르치고, 시집 장가 다 보냈으며, 현재 그들에게서 태어난 손자 손녀 아홉을 두고 있다. 

군산 시청 옆 영화동 미도파 미장원 미용사로 일하든 지금의 부인을 만나, 그 미장원을 인수 받아 운영 한 후로부터 나는 외롭고 어려운 생활 벗어나 무난한 생활을 해 왔다.  미 공군 부대 군견 경비원으로 시작하여, 사령부 안전처로, 보급대대로, 공보관으로, 옮겨 다니는 동안 나는 군산비행장 행운아로 불리어졌고,

또 밖에서는 영화동에 해외 개발 공사 군산 지사를 개설하여 직원과 함께 밤늦도록 열심히 일한 결과, 200 여명의 한국 아가씨들을 도와, 신랑 따라 미국으로 이주 시켰고, 또 한편으로는 한국 노총, 주한 미군 노동조합 군산지부 부 지부장 직도 맡아 열심히 일했다. 

그 때는 아직 노동조합이 자리를 정리하지 않은 때라, 많은 조합원들이 복지, 인권 침해, 불평등 차별 대우, 불합리한 승진 등의 잘 못된 조치를 겁도 모르고 파헤치며 바로 잡아 가든 일 등이 주마등처럼 추억으로 떠오른다. 

삼신 할 매 물 떠 놓고 빌든 부모, 가난한 농부의 여섯 째 아들로 자라, 돈도, 학벌도, 지식도 없어 객지에 처음 나갔을 때, 누구 하나 든든하게 의지 할 데 없어 어렵사리 살든 힘들고 고달프든 지난날을 회고하노라면, 마치 내가 옛날 어떤 사람의소설 이야기를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을 느낀다. 

나는 이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라고 밖에 다른 말을 할 수 가없겠다.  친구의 권유로 65년에 교회에 나가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그 다음해에 지금의 부인을 만나 모든 일이 잘 풀리며 오늘에 이르렀고, 슬하에 딸 넷, 아들 하나, 모두 결혼하여 사위, 며느리,  손자, 손녀 등 21명의 가족을 두고 있는바, 이들 모두 예수님을 믿고 그분의 은혜로 오늘날 그들 모두 평안하게 잘 살아가고 있다. 

군산은 나의 제2 고향이다.  힘 있든 젊은 시절 40 년을 거기서 열심히 일하며 즐기며 살아왔다.  또 바쁘게 살아오는 동안 나는 그곳이 객지라서 힘들게 살았다고 느껴 본 적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경찰에 근무하는 형님이 힘이 되어 주었고, 야간 수당이 많아 한국공무원의 배를 넘는 월급을 수령하든 좋은 직장에 다니고 있어 어디를 가나 기죽을 리 없었다. 

또  타고난 긍정적 사고방식 때문에 누구와도 잘 어울려 각 종 스포츠 (축구, 배구, 테니스, 수영, 골프), 등산, 낚시, 음악 동호회 생활에도 남들과 함께 즐기니 참여하는 곳마다 심부름꾼, 일꾼으로 봉사하는 일 마다 하지 않았다.  20대에 축구와 배구로, 30대에 테니스, 등산, 낚시로, 40대에 테니스, 등산, 골프를 즐기며, 소속팀의 총무나 회장 일 맡아 하였으며, 직장 생활에도 별로 어려운 것 느끼지 못하고 살아왔다.

노동조합 일이나 운동 시합 하면서 싸움질도 많이 하였고, 돈도 많이 쓰고, 남 돕는 일에도 열심히 동참하였으며, 사적 모임 경군회 (경상도 인의 모임), 기지 산악회, 비조회 (비행장 낚시회) 등을 조직하여 대 내외 적으로 활동도 열심히 하였다.

정치인들의 지역 갈등이 극도로 심하든 1991년, 나는 오랜 군산 생활과 경군회의 조직을 통하여 영남인 김 영삼 대통령 후보가 호남인 김 대중 후보와 맞붙어 싸울 때, 군산에 거주하는 영남인 200 명의 김 영삼 후보 지지자를 만들어 그 명단을 김 영삼 후보 캠프에 보냈더니, 김 영삼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 나의 형님(병국)에게 선거 운동 열심히 해 준 대가로, 안산의 마사회 슈퍼 운영권을 허가 해 주어, 금요일부터 일요일 까지 매 주 3일 간 영업을 하여 약 800 만원의 순 이익을 내는 알찬 사업을 하게 한 적도 있었다.

또 한편, 나는 미군들과도 친하게 지냈다.  동료들 중, 미군과 다투고 직장을 그만 둔 이들도 많았다.  그러나 나 같은 하잘 것 없는 울진 시골뜨기, 그렇게 어렵든 그 시절, 미군들의 모든 것이 만족하고 감사 했든 탓 이였든지 도 모른다.  살다 보면 난들 어찌 실망하고 속상할 때가 없었으랴만, 그럴 때면 나는 근무 끝나기가 바쁘게 부대 내의 테니스, 골프, 수영, 볼링, 탁구 등의 시설로 달려가 열심히 땀 흘리고 즐기다 보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모든 불쾌한 일들을 깨끗이 잊어버리고, 가정에 돌아와 쉬면서 건강한 내일을 설계하며 살아왔다.

나의 부인도, 미군 손님 접대하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다.  나름대로 방법을 연구하여 나의 뒷바라지를 잘 해 주었다.  밖에서 모셔야 할 손님을 집으로 초청하여, 손수 만든 음식으로 정성껏 대접하면, 미국인들은 오히려 집 밖에서 대접받는 것 보다 더욱 좋아하고 한국의 좋은 가정 분위기와 집 사람의 정성을 더 귀하게 평가하여, 보은의 기회만 오면 상이나 표창을 신청하여 수  많은 상을 수령하게 하였고, 승진도 쉽게 잘 올라가는 혜택을 누렸다. 

나는 그분들로 부터 남다른 신임을 받으며 살아왔다고 생각 한다.  그의 매년 사령관의 근무우수상을 수령 하였으며, 미국에 열 차례 나 교육을 다녀왔고, 일본의 요꼬다, 오끼나와, 하와이 호놀루루, 알레스카, 괌 등지를 각 각 두 번, 필립빈 클락 기지 등에도 한 차례 교육 받으러 출장을 다녀오는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  그 덕분에 나는 그들의 세계관에 대하여 많은 것을 배우고 지구촌의 견문을 넓히게 되었다.  이런 모든 긍정적 기록은, 내가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미국 영주권을 취득 할 수 있는 특별 혜택이 보장된다.     

군산 공군 기지가 이제는 새 만금 방파제 안으로 위치해 있다. 군산기지는 알다시피 서해를 사이에 두고 중국과 마주 하여, 군사 전략적으로 서로 견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는 지형적으로도 중요하지만, 또 기지의 남 쪽 활주로부터 약 3마일 바다 건너에 무인도 섬이 있는데, 이 섬의 산봉우리가 비행장에 남 쪽 활주로로 착륙하는 비행기를 안전하게 유도하는데 결정적 도움을 준다. 

공군에서는 이를 일컬어 군산 비행장의 천혜의 섬 이라 말한다.  주한 미군기지 이전 문제로 꽤나 시끄러운 요즈음, 공군의 중요한 군산기지를 새 만금 사업 완공 시 어떻게 처리 할 것인가가 자못 궁금하다.

군산은 또 많은 것이 풍부하고 잘 갖춰진 도시다.  인구는 옥구군을 통합하여 약 28만에 이르지만, 교통편이 육, 해, 공 모두 편리하고, 기름진 호남평야와 서해안의 값싸고 질 좋은 많은 해산물들, 우리나라 어디를 가도 이와 비길 만 한 곳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서해안 고속도로 개통으로 서울 까지 2시간 남짓, 군산 공항서 서울 제주도로 날라 다니며, 배로도 국내 주요 항구는 물론 중국 까지도 여객선이 정기적으로 운행된다.  충남 서천을 연결한 4차선 고속도로와 철길이 이어져 군산을 더욱 편리하게 한다. 

군산항을 밝게 비치는 오랜 역사 속의 월명산 수시탑은 우리나라의 명물이다.  나는 젊은 시절 집 사람과 손을 잡고 이 월명공원을 거닐며 우리의 젊은 시절의 꿈을 키워왔다.

군산은 또 휴식을 위한 여건도 잘 구비 돼 있다.  20분 내에 도달하는 인구 30 만의 익산시, 40 분대에 전북의 수도이며 우리나라 문화의 일 번지 전주에, 또 한 시간 거리 내에 서너 개의 전주권의 유명 온천장이, 여러 개의 유명산과 넓고 어자원이 풍부한 서해안 바다와 깨끗한 섬들, 유명 저수지 낚시터, 여러 개의 테니스 코트, 36 홀 및 18홀의 골프장, 여러 개의 해수욕장이 군산시 주위에 즐비해 있어 사람이 살기에 편리하고 좋은 곳으로 생각한다.

군산은 또 맛의 고장이다.  꽃개탕, 비빔밥, 복어요리, 생선회, 떡갈비 등의 맛과 멋은 우리나라 어디에 내 놓아도 손색이 없으리라.

이것으로 나의 군산 생활 40년을 마감할 까 한다.  지난 40 여년의 세월, 나를 키워주고, 아껴주고, 보듬어 주었든 군산, 나는 그곳에 사는 나의 모든 친구와 친지들에게 이 글을 통하여 감사를 드린다.  혹시 내가 잘 못한 것 있으면 이 기회에 정중히 사과를 드리니, 너그러이 용서해 주길 바란다. 우리에게 과거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나는 내가 돌아온 이곳 울진에서 앞으로 나의 새로운 인생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려 한다.     

편집부의 다른기사 보기  
ⓒ 울진신문(http://www.uljinnews.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기사 댓글 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글쓰기-
전체보기

회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창간일자 : 1991년 4월 8일 |운영위원장 : 박경조 | 발행·편집인 및 주필 : 전병식 | 등록번호 : 경북 0100137 | 청소년 보호 책임자 : 전병식
서울지사장 : 임명룡(☎ 010-6230-1976) | 부산지사장 : 안정권(☎ 010-5488-2686) | 대구지사장 : 전종각(☎ 010-7287-7910) | 연간구독료 : 30,000원
계좌번호 농협(주식회사 울진신문사) 317-0002-7924-91
경북 울진군 울진읍 읍내3길 17 | 전화 : 054-783-8600 | 팩스 : 054-783-8601
Copyright 2005 (주)울진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이메일 webmaster@uljin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