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일 잡은 가자미 한상자 팔면 6만원
기름값 10만원 지하면 남는게 하나도 없어…”

                    ■ 후포항 성길호 남성식 선장

  “50년 가까이 바다를 누비벼 고기를 잡았지만 지독한 가난의 대물림은 끊이질 않는다.

내일 모래 70살을 내다보는 나이에도 무엇하나 남긴 재산도 없고 자식들에게 풍족하게 해준적도 물려준 것도 없다.

이제 남은 것은 지친 몸과 성한 곳 하나 없는  몸뚱아리….”
후포 항구에서 만난 한 어부의 넉두리에 억장이 무너졌다.

1943년 평해읍 직산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지긋지긋한 농사일이 싫어 18살 총각때 배를 타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바다와 함께 살며 후포항을 지키고 있는 성길호 선장 남성식(66세)씨.
군생활 3년을 빼고 쭉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생활해 왔다.

남선장은 왜 왔냐고 묻는다. “살아온 이야기를 듣고 싶어 왔다”고 했더니 “별로 할 말이 없다”고 한다.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갈까? 갑갑했다.
무작정 “오늘 고기잡으러 안가냐”고 물었다.
“고기를 잡으면 뭐하냐 하루종일 잡은 가자미 한상자 팔면 6~7만원 하는데 기름값 10만원 지하고 나면 적자인데 뭐하러 나가"

항구에 매어놓은 배들은 따가운 땡볕에 맥없이 줄줄이 서있다. 남선장 말대로 배들은 할 일이 없다. 지친 어민들을 닮은 배들의 모습에 현재의 어촌의 상황이 반영되고 있었다.

남선장은 왼팔이 없었다. 10년전 고데구리(쌍끌이) 어선작업을 하다 롤러 밧줄에 감겨 갈비가 부러지고 팔이 심하게 다쳐 치료했으나 왼팔을 잘라 낼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50년 가까이 고기잡이 일을 하면서 이 시기가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다고 한다. 병원 치료를 마치고 나니 돈도 몸도 모두가 바닥나 있었다.

그러나 끝까지 정리하지 않고 남겨둔 배한척에 다시 몸을 실어 보았다.
사고후 1년만에 오징어 잡이를 나갔다. 그래도 바다는 남선장을 배신하지 않았나 보다.

불구의 몸으로 출어한 배에 다행이 오징어를 가득싣고 올 수 있었다.  “그래 다시 시작하자,”
“어찌됐거나 바다가 내 삶의 터전일 수 밖에 없구나”하는 운명을 받아들이며 다시 뱃사람 일을 시작했다.
낚시와 오징어 잡이를 했지만 겨우 생활을 지탱할 수 있었다.
집일을 주로하던 아내도 남편의 힘겨운 배일을 보다 못해 함께 배에 몸을 싣는다. 부족한 노동력을 거들어 주었다.

그러나 힘겨움이 계속되는 세월속에 이제는 아내도 내몸도 지칠대로 지쳤다.
사람을 쓴다 하지만 엄두도 못내는 인건비 때문에 부부가 함께 버티고 있다.

남선장은 인터뷰내내 옆에서 엿듣고 있는 부인(임분자·60세)을 쳐다보며 “날 따라 다니다 몸이 망가질 때로 망가진 아내의 모습에 너무 미안하다고….” 숙연 해진다.

이제는 돈도 돈이지만 배를 타지 않으면 몸이 망가지는 것 같아 몸을 위해서도 배를 탔다.
그것도 잠시 갈수록 지쳐가는 몸뚱아리를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렵다.  올해나 내년쯤 어선 감축을 배구조조정에 신청할까 말까 망설이고 있단다. 배구조조정도 신청하면 다되는 것이 아니어서 걱정이라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진퇴양난의 현실에 그물만 어루만지고 있다.

객지에서 생활하고 있는 딸과 아들들에게 “직장도 중요하지만 빨리 결혼해야 될텐데….”라며 자식 걱정도 한가슴 지니고 있었다.

남성식 선장은 50년 가까이 고향을 지키며 어부의 삶을 살았지만 단 한번의 희망도 갖지못했다.
너무나 힘든 고향 지킴이가 되었다.
아니 자기와의 너무나 힘든 싸움을 하고 있다.

그래도 변함없는 시간에 변함없는 마음으로 바다를 지킨다. 그래서 오늘도 대가없는 일이지만 후포항을 넘나들며 아직도 외팔로 그물망을 어루만진다.


                                      강진철기자 jckang@ulji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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