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선출직 지도자들 미미한 역할에 섭섭…”

■ 강원이발관 김연국 사장
“미국에 계시는 형님과 누님들이 미국에 와서 같이 살자는 몇 번의 권유를 뿌리치고 탯줄을 묻은 땅 울진에서 삶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고집한 울진땅에서 삶은 그렇게 쉬운 시간은 아니였습니다. 많이 힘들었지요…”

2대째 가업을 이어온 강원이발관 그 역사는 70년을 넘어서고 있었다.

그동안 거쳐간 손님만해도 울진군민 전체가 두 번 이상은 머리를 깎은 셈이다.

김연국사장(55세)은 인터뷰를 시작 하기전 먼저 그동안 받은 상을 진열 해놓은 본가로 안내했다.

먼저 상을 보고 이야기를 풀어가자는 주문을 했다.
세월을 간직한 수십개의 상들은 청년회에서부터 노인회까지 세대를 넘어 활동해온 삶의 흔적과 복지에서 지역 민원까지 지역 구석구석 발길 안닿은 곳이 없는 삶의 실천 영역이 흠뻑 담겨 있었다.

때론 가위를 들고 때론 맨발로 소매를 걷어 부치고 달려갔다. 그리고 지역현안으로 대립되는 논쟁의 현장에서는 말로 몸짓으로 부딪치며 실천의 삶을 살아온 모습이 진열된 상으로 말해주고 있었다.

김연국사장은 받은 상장과 상패를 되돌아 보며 “지역의 발전을 위해서는 업종이나 개인의 이해득실을 초월한 역할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힘주어 강조했다.

1953년 울진에서 태어나 15살부터 부친이 해온 이발소에 심부름으로 시작한 일이 이제 40년을 넘겼단다. 부친이 해오신 30년의 세월을 합하면 70년을 지난다. 한달에 5백명의 손님으로 계산하면 엄청난 숫자다.

과거 장발이 유행하던 시절 손님이 없어 혼쭐난 시대를 회상하며 쓴 웃음도 지었다. 지금도 서울 대구 등지서 머리 깎으러 찾아오는 손님이 있어 그 기쁨이 한이 없다 한다.
몇십년 단골들이 강원이발관을 고집하는 것에 자신의 실력을 인정받는 소박한 자찬으로 격려를 삼는다.

요즘은 헤어스타일의 변화 그리고 남녀가 구분되지 않는 공간에서 미용업이 퓨전화 되어있는데 나름대로 끝없이 연구하고 변화와 유행에 대한 기술력을 진보시키고 있다고 한다.

김사장은 “40년이 지난 이제야 이발업에 대한 의미와 역할을 조금알겠다”며 겸손해 한다.
“숙련된 기술력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손님에 대한 정성이라고 생각한다. 정성껏 모신 손님은 조금 부족한 부분이 있더라도 감사해 한다”라며 40년의 이발업에 대한 철학을 ‘손님을 위해 정성을 다하는 모습’이라고 강조한다.

한발 더 나아가 지역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그동안 힘있는 사람들의 지역에 대한 역할이 너무 아쉽다”
많은 정치지도자들이 거쳐 갔지만 한번도 지역민과 함께한 정치인은 없었다고 본다. 지금도 타 지자체와 비교하면 열악한 것이 한두개 아니다. 이렇게 뒤쳐진 지역의 경제나 문화나 모든 것에 대한 지역의 정치인들의 역할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도 마찬가지다. 언제나 당선만 되면 자기중심의 입장을 가져간다.

12년간 지역에서 3선의 국회의원지낸 사람도 지역민에게 감사인사 한마디 없이 훌쩍 떠나버렸다. 인간적인 모멸감 까지 든다.

1999년에 작성한 ‘울진전역’공원화 계획안을 보여주며 지역발전에 대한 구상안을 직접 작성해 이곳저곳에 의견을 개진도 해 보았다는 말에 괜히 숙연해진다.

열정과 분노로 지역을 지켜오면서 시련도 많았다. 3년전 건강이 좋지 않아 고생을 많이 했다. 열심히 살았는데 뜻하지 않은 건강으로 가족들과 많이 힘들었다. 이렇게 시련의 시간을 맞이 하면서 아내(이금자·53세)의 위로가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큰 힘이 되었다. 남편의 부족함에 살짝이 채워주었고 남편의 넘침에 잔잔히 제동을 걸어주었다. 이렇게 부족함과 넘침에 조정자로 동반자로 옆에서 같이한 아내에게 너무 감사하다고 전한다.

슬하에 아들 둘이 있는데 자기 능력껏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아가면 된다며 자식에 대해 독립적으로 개척해 나가는 삶을 바라고 있었다.

헤어지는 기자에게 이렇게 내뱉는다.
“죽어서 울진귀신이 될 것이다.”  “왜그런지 울진이 좋아.”

                                  /강진철기자 jckang@ulji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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