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문 논설위원
“일본 놈 밑에 사나 양반 놈 밑에 사나 그게 그거지 뭐”
인생 대역전 꿈꾸는 세 놈의 숨 막히는 격전
서부극 부활...“시원 하고 또 시원 하였다”

제목부터 눈길을 끈다. 놈놈놈, 최근 개봉한 영화 놈놈놈. 김지운 감독의 작품이다. 제작비 200여억 원 투입, 개봉 얼마 안돼 벌써 관객 500만 돌파란다. 할리우드에 밀려난 듯한 한국영화에 르네상스는 또 오는가?

나는 영화 보는 것을 워낙 좋아하기에 지난 주, 서울에 가자마자 ‘놈놈놈’부터 찾았다. 영화관 선전 포스타를 슬쩍 보니 총잡이들의 활극 같기도 하다. 예상은 적중. 영화의 무대와 배경은 1930년대 일제 강점기, 만주 일대다. 당시 만주는 조선인뿐 아니라 일본인 러시아인, 만주인, 중국인등 독특한 다인종들과 언어가 충돌한 무법천지로, 일본군의 무력과 비적이나 마적들의 총칼이 법과 질서를 대신했던 곳이다.

‘놈놈놈’이 주목 받는 까닭은 이름 하여 새롭게 창조한 gimchi-western(한국판 서부 활극)이라는 것이다, 무대와 배경이 거칠고 험악한 황야라는 곳, 그곳에서 주인공들이 총잡이로 말들을 타고 대격전을 벌이는 점, 주인공 한두 놈은 반드시 죽는 다는 점, 보물이나 황금을 놓고 인생의 역전을 노리다는 것, 스케일이 크다는 것들이다.

주인공과 배경만 만주나 한국일 뿐 그 기법과 내용이 전형의 서부 영화를 쏙 빼닮았다. 60년대 말 우리들이 즐겨보았던 총잡이들의 서부활극, ‘석양의 무법자’를 떠올리게 한다. ‘놈놈놈’의 첫 장면부터가 그렇다. 화면이 시원하고 방대하다. 광활한 만주벌판을 달리는 기차와 철길에 놓인 먹이를 아슬아슬하게 탈취하여 끝없는 창공으로 한껏 비상하는 독수리, 그 가당찮은 날갯짓이 주인공들의 운명을 미리 예고한다.

내용도 서부영화에서 황금을 찾으려는 ‘총잽이’들의 ‘대격전과 황금탈취를 꿈꾸는 인간욕망’이 만주 황야에서 보물지도 하나를 놓고 사투하는 벌이는 세 놈들의 숨 막히는 격전, 그래서 인생의 대역전을 꿈꾸는 게 아주 딱 맞아 떨어진다. 영화음악도 비슷하다. 그런 점에서 김지운 감독은 우리나라 영화사상 한국판 서부활극을 재창조 해냈다는 찬사를 들을 만 하다. 칸 영화제에도 초대 받았단다.

 놈놈놈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정체불명의 지도를 둘러싸고 쫓고 쫓기는 놈들의 대격전을 그린 오락영화이다, ‘놈놈놈’ 이 세 놈은 구체적으로 좋은 놈(현상금 사냥꾼 박도원역, 정우성), 나쁜 놈,(마적단 두목 박창이역, 이병헌) 이상한 놈(열차털이범 윤태구역, 송강호)이다. 주인공이 독특하여 이 영화가 한층 더 주목 받는지 모른다.

이병헌의 악역은 소름이 끼친다. 이제까지 보았던 착하고 순한 모습에서 사람(친일파)하나 죽이는 것쯤 예사인 듯 얼굴색 하나 바꾸지 않는다. 마치 손쉽게 벌레 한 마리 눌러 죽이는 것처럼 철저하게 냉혈한의 모습으로 보여주고 있다. 만주대륙에서 마적 제일 두목을 꿈꾸는 헛된 욕망(명예)의 화신답게 잔인하다.

송강호(윤태구역)는 코믹한 복장부터 웃음을 자아낸다. 코믹한 복장에다 보물지도가 든 가방을 쥐고 황야를 내달리는 모습, 밤중에 탈출을 기도하다 들키는 장면, 똥코신 등에서 그의 전형적인 코믹연기는 순간순간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이 윤태구의 꿈은 어찌 보면 소박하다. 돈 많이 벌어 고향으로 돌아가 땅도 사고하여 농사짓고, 짐승들을 기르면서 그저 편안하게 사는 것, 어찌 보면 식민지 조선 민중의 전형을 보는 듯 하다.

인물 좋은 정우성(박도원 역)은 정말 그 진가를 아낌없이 드러냈다. 더구나 영화 후반 수많은 일본군을 상대로 혼자서 말을 타고 역주행하면서 장총을 휙휙 돌리며 싸우는 장면은 압권이다. 정말 멋진 장면이다. 그의 장총에 거꾸러지는 많은 일본군들을 볼 때  최근 독도문제로 불거진 한일간의 감정을 영화로나마 후련하게 풀어준 느낌은 나만의 카타라시스일까?

그래서 좋은 놈으로 나오는 걸까? 어쨌든 이 세 놈은 당시의 거창한 독립을 바라는 독립운동가나 지식인이 꿈꾸었을 사회주의자도 아닌 놈들임에는 틀림없다.

‘놈놈놈’은 단순한 오락영화다. 심형래의 ‘디워’처럼 보여주기 위한 오락영화일 뿐이다.  무슨 이야기나 이념, 의미 따위를 미리 생각하고 ‘놈놈놈’을 관람하는 것은 금물이다. 탈 이념적, 포스트 모더니즘적이다. 윤태구가 “우리 입장에서는 일본 놈 밑에 사나 양반치하에서 사나 그게 그거지 뭐”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드러난다. 재미가 스토리다. 오락영화는 소설이 아니다.

옥에도 티가 있듯이 ‘놈놈놈’에도 몇 가지 허점이 보인다. 윤태구가 만주 황야에서 오토바이에 매달려 질주하는 장면인데, 땅바닥에 질질 끌려가면서도 팔꿈치 하나 다치지 않았다는 것, 하기야 주인공이 다치거나 죽으면 안 되지, 그러니까 주인공이지! 하는 실소를 자아낸다.

또 하나는 보물 지도를 전해주는 어색한 장면, 차라리 처음부터 ‘보물지도’라고 밝히지 말았으면 관객들의 호기심이나 궁금증과 긴장감을 더 했을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박창이는 죽고 그 보물이란 것이 다름 아닌 유정(油井)이긴 하지만. 다음에는 세 놈들의 관계설정이다.

이놈들이 어떻게 만주까지 와서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처지가 되었는지 과거가 뚜렷하지 않다. 박창이는 자기 손가락을 무참히 자른 일명 ‘손가락 귀신’(윤태구)을 찾아 복수하려고 한다. 이 둘의 인연도 모호하다. 관객의 입장에서 이들의 관계 설정을 스쳐가는 듯한 흑백장면으로 처리했더라면 더 좋았다고 보겠다.

‘놈놈놈’에 하나 더 보태자. 현재 우리 사회에도 이런 ‘놈놈놈’이 없는가. 그런데 너는 어떤 놈? 아니 그러는 당신은 어떤 놈? 그렇다고 인간을 꼭 세 부류로만 나눌 수 있는가?

내가 보기에는 세 놈 다 ‘불쌍하고 딱한 놈’이다. 왜? 개인의 욕망에만 집착한 놈들이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어느 기발한 영화감독이 또 재미있는 ‘년년년’ '좋은 년, 나쁜 년, 이상한 년'이라는 제목의 오락영화를 만들지도 모르겠다. 기대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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