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문 논설위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처럼 며칠 지나면 한가위 명절이다. 하늘 높푸르고 날씨는 덥지도 춥지도 않다. 산천에 꽃피웠던 나무와 풀들, 논밭의 곡식들이 열매를 달고 익어간다. 모든 게 풍성해지는 철이다.

팔월 한가위 명절에는 언제나 민족의 대이동! 귀소본능! 이런 말들이 따라 붙지만 한편으로는 ‘명절증후군’을 미리 걱정하는 여성들이 적지 않다. 남정네들에게는 이른 바 벌초 증후군. 필자도 지난주에는 서울에서 온 사촌들과 조상 묘에 벌초를 했다. 이 산 저 산에 예치기의 쇠 소리가 요란하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이제 조상모시는 것도 우리 대에 끝날지 모른다는 것, 벌초도 대행 한단다. 서울에서 비싼 기름때고 오느니 그 돈으로 대행시키면 오히려 싸게 먹힌단다. 아주 깊은 산골뿐만 아니라 동네 둘레 산천에도 묵묘가 늘어나고 있다.

필자의 경우도 태백준령의 험하고 깊은 산에 있는 웃대 조상들의 묘는 성묘할 엄두도 못 낸다. 어른들의 말씀으로는 명당 찾아 그곳에 조상을 모셨단다. 어른들이 돌아가시고 몇 해 다녔지만 지금은 숲이 우거지고 길도 끊어져 난감하기 이를 데 없는 경험을 하고서야 단념했다.

백골이 난망, 조상께는 송구하나 그 이후로는 망향제로 대신한다. 명당 찾아 삼천리라는 매장문화도 많이 변해 지금은 수목장까지 하는 이들도 있다. 금수강산이 묘지강산이 되다시피 한 국토 환경을 생각하면 바람직한 현상이기도 하다.

요즈음 종교편향이 문제가 되고 있지만, 어떤 집안은 형제간에 각자 종교가 다르니 제사봉행도 순탄치 않고, 방방곡곡에 흩어져 사니 친인척이라는 말이 무색하단다. 필자와 같은 쉰 세대들의 어린시절인 5, 60년대만 해도 우리는 농경사회나 다름없었다. 공동체 의식이 강했다.

지금은 어떤가? 자식도 하나 아니면 둘, 극소수라 이제는 삼촌도, 사촌도, 고모도, 이모라는 말도 사라지게 되었다. 호주제가 폐지되어 가부장 개념도 무너지고 있다. 가까이 사귀는 이웃이 사촌이 고모, 이모, 삼촌이 되어가고 있다.

혈연·지연공동체에서 새로운 공동체로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이다. 8·15해방 후의 급속한 산업화로 농촌인구의 도시유입 등 농촌의 붕괴는 공동체의 붕괴를 가속화시켰다. 그러나 공동체 요소는 부분으로나마 아직 남아 있다. 그 현상의 하나가 부모, 친인척 등 혈연, 지연을 찾아 명절 때마다 이루어지는 민족 대이동 같은 것이다.

한창 산업화가 되던 60년대에는 우리나라 농촌인구의 절반 이상이 농촌을 떠나갔다. 요즈음 신세대들은 이들의 제3세대, 손자들이다. 이 신세대들은 대부분 도시가 고향. 푸근하고 못생기고 불편하고, 느리지만 정겨운 촌스러움보다 세련되고 편리하고, 합리와 화려함을 추구하는 세대다. 쉰 세대들이 꽁보리밥에 풋고추를 따서 장에 찍어먹던 이야기를 하면, 간단하게 라면 끓여 먹지 왜 그렇게 살았냐고 되묻는단다.

지금의 세대들은 확실히 물질의 풍요를 누리고 있다. 그들 앞에 가난이 어쩌고, 고향이 어쩌고 해봐야 낡은 세대가 지껄이는 해묵은 언사가 될 게 뻔하다.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에게는 고향이지만, 2, 3세들에게는 낯선 타향일 뿐이다.

그러나 쉰 세대들의 수구초심은 어찌하랴! 사람은 태어난 곳을 그리워하는 본능이 있다지 않는가? 여우는 죽을 때 구릉을 향해 머리를 두고 초심으로 돌아간다. 근본을 잊지 않는다. 죽어서라도 고향 땅에 묻히고 싶어 하는 마음이다.

등이 굽은 물고기들/한강에 산다./등이 굽은 새끼들 낳고/ 숨 막혀 헐떡이며 그래도/서울의 시궁창 떠나지 못한다./바다로 가지 않는다. /떠나갈 수 없는 곳/그리고 이젠 돌아갈 수 없는 곳/고향은 그런 곳인가(김광규의 시‘고향’전문)

찌들고 오염된 도시의 삶에 지치면서도, 막상 서울을 버리고 고향으로 내려가지 못하는 많은 도시인들, 이미 그곳에서 가정을 꾸리고 생활의 근거지를 마련했기 때문에, 오염된 공기와 더러운 물을 마시고 여기저기 상처를 입으면서도 떠날 수 없는 것이다. 이제는 도시(서울)에 정착하여 고향에 돌아갈 수 없는 아픔을 노래하고 있다.

언젠가 서울의 어느 친구가 필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시에 비해 투박하고, 소박하고, 겉멋을 모르고, 화려하지 않는 게 농촌이다. 그러나 농촌도 이제는 많이 변했단다. 산천도, 인심도 예전이 아니란다. 해아래 어디 새로운 게 있는가? 라고 응대했지만 울진촌놈으로 자처하는 필자에겐 섭섭한 말로 들렸다. 그럴지 모른다.

온 국토가 개발과 발전이라는 이름아래 자연생태 파괴와 같은 모든 게 합리화되고, 화려함과 돈의 가치만이 최고 만능인 듯한 물신(物神)의 시대. 이런 인간세태에 내가 보탤 말은 그리 없다.

‘잃어버린 고향을 찾기 위해서 인간은 타향으로 가야 한다.’는 카프카의 말처럼 사촌들은 서울로 돌아갔다. 아련하게 익어가는 한가위 보름달 같은 고향유정을 가슴에 안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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