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의 새벽을 여는 사람들 - 환경미화원

   "   추위에 온 몸 숨기며   새벽 2시부터 청소

        그래도 일할 수 있어   그나마 다행 …"

   
2008년의 12월 마지막 날 아침은 유독 추웠다.

울진의 새벽을 여는 사람들. 아직 새벽이라기 보다는 깊은 밤의 기운이 잔뜩 남아 있는 시각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환경미화원들의 거리청소일이 시작되지만 오늘은 2008년 마지막 날 청소는 각오가 남다르다. 너무 힘든 한해였기 때문에 그런지 지난 한해의 모든 악운을 남기지 않기 위해 티끌하나 남기지 않고 쓸어 담는다.

새벽 3시에 만난 남윤자(62세 울진읍거주)씨는 “새해가 더 어렵다는데… 그래도 깨끗하게 청소하면 사람들 마음이라도 좋잖아요.” 하면서 추운 한파로 눈가엔 시린 눈물이 흘러내렸다. 푹 눌러쓴 모자와 칭칭 감은 목도리에도 오늘 아침 한파를 견딜 수가 없었나 보다.

이렇게 2008년의 묵은 때를 쓸어내고 2009년 울진의 새아침을 맞이하기 위한 환경미화원들의 움직임은 새벽 2시 부터 시작 되었다.
새벽운동으로 건강을 챙겨야 할 나이에도 불구하고 조그만 구루마 하나에 빗자루 쓰레받기를 싣고 맡은 책임구역을 청소하느라 정신이 없는 할머니에게 말을 걸었다.

“많이 춥지요?” 했더니 “오늘 좀 춥네요.” 라고 답한다.
5년째 미화원 일을 하고 있다는 남윤자 할머니는 자초지종을 밝힌 기자에게 집안이야기를 늘어 놓는다.
“가난하게 살다보니 자식들에 잘 못해줘 지금도 객지에서 어렵게 살고 있어요. 자식들에게 기댈 수가 없어 일을 하고 있어요.”
힘들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힘은 안 들어요. 그래도 이게 어디요. 나 같은 나이에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데…”라며 일에 대해서는 기뻐한다.
사람들이 움직이기 전에 깨끗하게 청소해야 된다며 구루마를 끌고 구역을 바삐 옮긴다.

조용한 울진시내 거리에 한참 만에 사람움직임이 보였다. 버려놓은 쓰레기봉투랑 폐박스를 한곳으로 모으고 있는 환경미화원이었다. 가까이 가니 추위를 피해 온몸을 숨기고 눈만 보였다.
19년째 일을 하고 있다는 사봉업(50세)씨는 아주 씩씩하게 움직였다. 몸놀림도 가벼웠다.

기자가 가까이 가도 아랑곳 하지 않는다. 오직 쓰레기 옮기기에 열중이다.
“수고하십니다.”라고 인사를 전하니 “누군데요?” “왜 그런데요?”라며 되묻는다.
쓰레기를 함께 옮기며 이야기를 걸었다. 할 만하냐고 물었더니 거침없이 “좋다”라고 답한다. 20년 가까운 시간의 생활이 이젠 당당한 직업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참 좋았다.

다른 한쪽에서도 사람기척이 있어 돌아보니 한사람이 똑같이 쓰레기를 모으고 있었다.
매화에서 출근해 일을 한다는 신철권(55세)씨였다. 일을 한지 20년이 넘었다고 한다. 말없이 일만 한다. 손놀림이 아주 빠르고 노련하였다.
한참 후 3시 30분이 되어 밝은 자동차 불빛이 보였다. 청소차였다.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담배에 불을 당긴다. 기자도 이틈에 인사를 올리고 울진의 새벽을 여는 사람들과 동참하기로 양해를 구했다. 흔쾌히 승낙을 받고 이동을 시작했다.

무겁게 생각했던 기자의 생각과는 판이하게 다른 분위기로 작업은 아주 자연스럽고 재미있게 진행되었다. 기사아저씨와 수거작업 아저씨의 손과 발은 설치된 버튼에 의해 빈틈없는 궁합을 이뤘다.
골목길을 돌아 정차하고 출발하고 다시 현내로 넘어가 돌아 나오고 아파트단지를 지나 또 다시 주차장이 되어버린 좁은 골목길을 날렵하게 빠져나가는 작업의 진행은 본능적 움직임 같이 이루어 졌다.

한참 일하던 신씨 아저씨는 한마디 내뱉는다. “연탄재가 부쩍 많아졌다. 살기 힘들어진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라고 씁쓸해 한다. 그리고 덧붙인다. “어려운 것은 이해하겠는데 제 날짜(연탄재 수거는 월 금요일)에 연탄재를 버려야 하는데 시도 때도 없이 갖다 버려 실컷 치워도 연탄재를 남겨두고 가면 청소한 빛이 나지 않는다.”며 억울함도 호소한다.


“힘들어도 쓰레기가 많았으면 좋겠어요…”

  
   
                                                         
  봉투에 제발

  음식물 넣지 마세요

  경제 좋아져

  연탄재 없었으면…

신철권씨는 여기에 불만을 하나 더 토로한다. “가구 폐가전제품 등 스티커를 사서 부착해 버려야하는데 얌체족들의 무단투기에 화가 너무 난다. 경고장을 붙여놓고 가져 갈 것을 유도하지만 꿈적도 않고 며칠이고 그 자리에 방치되어 있으면 깨끗이 청소한 보람은 커녕 사람들이 미워진다. 혹자는 이렇게 수거 않고 지나간 쓰레기를 보면 청소도 안하냐? 빈정대는 사람도 있다.”며 쓰레기 분리수거에 지역민들의 적극적인 동참을 호소했다.

작업 중 가장 힘든 사례는 일반쓰레기에 음식물 국물 등이 혼합되어 있을 때 차량으로 넣는 순간 비닐이 터져 썩거나 냄새나는 국물이 얼굴과 옷을 뒤덮어버리면 일 할 맛이 뚝 떨어진다며 음식물 분리를 신신당부한다. “제발 음식물을 버릴 때 ‘역지사지’의 상황을 고려해 달라”고.

가득 찬 차량을 비우러 신림소각장으로 향하기 전 길가에 차량을 세워놓고 모두가 담배 한대씩 물고 긴 숨으로 연기를 빨아들였다. 꿀맛이었다.
시간은 어느새 밤의 공기가 사라지고 새벽의 먼동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신림소각장으로 향해 가면서 조수석에 앉아 남복하(53세) 기사님과 이야기를 나눴다.

남기사의 첫 한마디는 이렇다.
“오늘은 묵은 쓰레기가 잔뜩 쌓여야 하는데 물량이 없네요. 경기가 정말 안 좋은 모양이다. 연말연시가 되면 이런저런 쓰레기로 넘쳐나는데 올해처럼 한산한 물량은 처음 본다.” 라며 어려운 경제현실을 쓰레기 물량으로 가늠하며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남복하씨는 말을 계속 잇는다. “그래도 울진사람들이 분리수거 등 쓰레기 처리에 의식이 많이 높아지고 있다. 규격봉투 사용 등 시민의식의 발전을 보면 울진도 환경에 대한 수준이 좋아지고 있다.”며 지역주민들의 쓰레기 처리 의식을 환경의식의 눈높이로 평가하는 환경운동가적 시각을 갖고 있었다.

시간은 언쭉 5시30분 가까이 되어 신림소각장에 도착하니 벌써 소각장 관리자들이 출근을 해 청소차량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울진의 곳곳에 새벽을 여는 사람들의 역할은 빈틈없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렇게 새벽을 여는 사람들이 자기역할을 차질 없이 실천함으로 인해 울진사람들의 무사한 오늘과 내일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주)금강L&C 전병옥 사장은 “열심히 일하는 환경미화원들에 늘 미안한 마음이다. 일하는 것에 비해 대우가 부족한 것 같다. 좀 더 낳은 복지에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헤어지는 기자에게 아저씨들은 한마디씩 거든다.

“2009년은 힘들어도 좋으니 쓰레기 많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경제가 좋아져 연탄재가 쌓이지 말았으면 좋겠어요.”라고 힘주어 말한다.
“경제 불황도 빗자루로 확 쓸어내 모두가 넉넉해졌으면 좋겠어요.”
강진철 기자 jckang@ulji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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