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시론

자식들에게 아빠라는 호칭으로 불림을 받고 있지만 당신은 아버지라는 호칭으로 부모님을 부르는 우리사회의 ‘낀 세대’인 40~50대.

가난의 세월을 겪고 지금 사회적으로 가장 중심에선 입장에서 다양한 역할을 해나가고 있는 40~50대는 부모에게는 효도의 마지막 세대이고 자식에겐 효도를 기대하지 못하는 시대의 운명을 짊어진 한국사회의 현대화 과정에서 ‘낀 세대’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이들은 최대한은 아니지만 최소한이라도 가난했던 세월을 원망하지 않고 고단하게 살아오신 부모님의 삶을 존경하고 그 삶을 보답해 드리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식에 대한 삶을 강요하지도 않지만 자식으로부터 삶을 보상 받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세대의 변화에 비판 없이 따라가는 자식들의 이기적 가치관에도 ‘행여 어떻게 삐뚤어질까’하는 두려움에 아무런 저항도 없이 모든 요구들을 수용해준다.
이렇게 부모님께는 자신의 책임과 의무에 최선을 다하며 살지만 자식들에겐 권리와 보상을 기대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 ‘낀 세대’들은 부모와 자식사이에서 속으로 울고 있다.
 
‘낀 세대’ 당신의 고민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자식들에겐 당신보단 나은 미래를 기대하며 무조건의 투자를 집행하느라 가슴조이며 자신은 사회에서 조직에서 변화하는 시대를 뒷걸음 칠 수 없기에 살아남는 날개 짓을 쉴 사이 없이 하고 있다. 
숱한 고민의 시간 중에 지금 40~50대가 맞이하는 가장 어려운 시간은 부모님과의 이별의 시간을 맞이할 때 가 아닌가 싶다.

지인들의 喪家를 방문할 때 마다 남의일 갖지 않은 상황이 되고 보면 한숨의 길이만큼 근심도 깊어진다. 모든 ‘낀 세대’들의 현재시간이다.
형편이 조금만 나아진다면 부모님 모시고 금강산 외국여행 한번 함께  다녀올 날을 학수고대 하던 시간이 벌써 40을 무기력하게 넘어 50에 접어든다.
언제 한번 효도 같은 효도 한번 해볼까? 하는 기약은 이제 깊은 모금의 담배연기 속에 날려 보낼 수밖에 없는 현실이 되었다.

명절이나 휴가 때 본가를 다녀오는 길에는 언제나 엄마 손맛이 잔뜩 담긴 김치며 아버지 땀이 흠뻑 젖은 쌀이며 부모님이 챙겨주신 수확물을 가득 싣고 또 다시 삶의 현장으로 돌아가지만 굽은 허리의 힘듬과 무릎관절의 진통을 애써 감추며 웃음으로 맞이했던 부모님의 모습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어떻게 다 못한 효도를 만들어 갈까?
부모님을 뵐 때 마다 다짐해보는 마음이 작심삼일로 끝나버리는 현실을 극복해보는 효도의 실천을 한번 만들어 가보자.
먼저 부모님의 거친 손을 한번 잡으면 효도는 시작된다. 아들 딸 들의 손길은 부모님들에겐 그리움이다. 키울 땐 맘껏 당신의 것으로만 알았던 아들 딸 이었지만 애비 어미가 된 자식들 볼에 손길한번 못 내민다.
언제부턴가 어색한 장면이 되어버린 부모님과의 스킨십을 회복하는 것은 부모님의 그리움을 찾아주는 것이다.
이것이 효도의 시작이다. 이번추석에 못 잡아 보았다면 다음 발걸음에는 꼭 한번 잡아보자.

그리고 언제 어디서 만나게 되는 가족들과 정겹게 지내는 모습에서도 효도가 있다.
바쁜 일정에 안부전화 한번 못하고 지내는 형제들을 바라보는 부모님은 안쓰러움 마음을 감추고 살아간다. 당신 없는 세상 “자식들끼리는 우애 있게 살아야 하는데…” 하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것 또한 효도이다.
또 물려받은 것 하나 없어도  벌어놓은 돈 없어도 씩씩함을 잃지 않는 모습을 간직해야 한다. 자식의 여린 모습엔 불효가 있다. 수억 원의 연봉에서 하루일당 품팔이의 까지 각양각색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자식들의 모습에서 부모님께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자식의 당당한 삶의 모습이다.

훌훌 털고 마음편한 세월을 가질 수 있게 할 수 있는 것은 자식들의 건강한 삶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렇게 효도는 아주 조그만 곳에 있다. 작은 것이 소중하다.
그리고 역사의 순리에 따른 상황이라 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이별에는 눈물이 난다. 특히 부모님과의 이별은 너무 많은 슬픔의 눈물이 난다.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보답에는 부족했으니깐 말이다.
그래서 효도는 끝이 없는 모양이다.
jckang@ulji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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