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칼럼 임 명 룡

임명룡 (후포면 금음2리 출생
      성균관대 儒學大學院 석사과정중)
요즘 가장 인기있는 예능프로그램인 ‘해피선데이 1박2일’ 울진편에서도 언급된 적이 있지만, 흔히 백두대간을 한반도의 뼈대로 봤을 때 울진은 등뼈의 맨 끝이자 꼬리뼈에 해당한다.

하지만 그것은 백두대간이라는 아직 국어사전에도 등재되지 않은 모호한 개념을 가지고 한반도 전체에다 견주어놓고 위치를 산정한 것이지, 실질적인 우리 남한 영토에서 울진은 등뼈의 가장 중심이다. 척추의 중심이 힘의 배분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듯 울진은 원자력으로 우리나라의 중추적 에너지를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등짝이 그렇듯 고단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눈길과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다. 마치 소외받는 우리 아버지들의 등처럼. 요즘 학생들에게서는 보기 어렵지만 예전 까까머리 중고등학생들은 수학여행을 가게 되면 반드시 부모님께 드릴 선물을 한 두 개씩 사들고 돌아왔다. 평생 바깥세상이라고는 구경 한번 못하신 부모님들의 등골에서 빠져 나온 돈으로 여행을 하는 게 죄송해서 꼬깃꼬깃 접어두었던 노잣돈을 쪼갰던 것이다.

그래봤자 그 돈으로 살 수 있는 선물은 뻔한 것, 수학여행지 주변에는 푼돈짜리 조악한 기념품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그들을 기다렸다. 그중에서 단연 압도적인 숫자를 차지하는 물건은 바로 ‘효자손’이었다. 저렴한 가격에 이름도 착한(?) 등긁개가 고단한 부모님의 등을 위한 선물이었던 것이다. 7~80년대 성류굴 앞에는 수학여행 차량들이 늘어서고 효자손도 그렇게 팔렸다. 그 시절, 성류굴과 백암온천은 태백산맥 등짝에 붙어 눈길과 손길이 미치지 않는 울진의 효자손이었다.

지난 8월7일, 서울에서 일행 7명을 인솔하고 울진친환경농업엑스포 관람을 다녀왔다. 며칠 전부터 전국이 태풍 모라꼿의 간접영향에 들 것이라는 예고가 있었고, 가랑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임에도 36번국도 울진부근은 많은 차량들로 북적거렸다. 차량의 숫자는 엑스포공원이 가까워지면서 현저히 늘어났고, 친절한 안내를 따라 엑스포공원에 도착하면서 마침 내 눈으로 ‘울진에 사람사태’를 목격했다. 그때 이미 80만 명이 넘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사람들이 울진을 찾았고, 우리 군민은 철저한 준비와 성심을 다한 진행으로 그 많은 손님들 가슴에 울진을 심어드리고 있었다. 여간 뿌듯하고 감동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아직도 서울에서 5시간이나 걸리고, 산맥을 굽이 돌아가서야 만날 수 있는 울진. 그 흔한 고속도로를 오르는데 까지만도 1시간이 더 걸리는 오지에서 그런 큰 행사를 완벽하게 치르다니, 정말 대단하고 고마운 일이다. 친환경농업엑스포가 이뤄낸 대성공의 파장이 아직은 울진의 현실 경기에까지 확연히 나타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보니 더러는 그 노력과 투자를 다른 곳(종목)에 쏟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전국 어느 지자체에서도 그보다 나은 종목을 찾은 것 같지는 않다.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우리는 중요한 미래 브랜드 하나를 선점했다는 것이다. 독일의 소설가 토마스 만은 시민사회에서 1대가 돈을 벌면 2대는 정치를 추구하고 3대는 예술을 하려 한다고 했다.

예술이라는 대표적인 단어를 선택했을 뿐, ‘고차원’을 의미한다. 고차원이고 첨단일수록 귀착점이 친환경에 닿아있다. 즉 미래로 점점 나아갈수록 친환경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경제, 정치, 예술.......우리는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먹을거리를 선택했다. 농업의 예술을 선점한 셈이다. 선점의 중요성은 새삼 말이 필요 없다.

레밍턴 타자기에서 비롯된 알파벳 자판 배열 방식 즉, QWERTY방식이 오늘날 컴퓨터에서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그동안 보다 효율적인 자판 배열이 여러 차례 제안되었지만 QWERTY를 바꿀 수는 없었다. 폴 데이비드는 이를 ‘경로의존현상’이라고 하는데, 시장이 항상 시장원리에 따라 결과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우연한 역사적 사실’에 결정적으로 좌우된다는 것이다.

실리콘 벨리가 그러한 예이다. 1940년대 스탠퍼드대학교 부총장 터먼이 소규모 업체에 첨단산업을 지원한 것을 계기로 첨단의 아이콘이 되지 않았던가. 마찬가지로 지평선이 보이는 평야가 친환경을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선점한 울진이 친환경농업의 고장이 되는 것이다. 마음속에서는 벌써 이번 행사에 힘쓰신 모든 관계자 여러분들과 울진군민들께 경외를 드리고 있다.

언뜻 그 시절 성류굴 입구에 내걸렸던 효자손이 떠올라 감회가 새롭기도 하다. 그러나 이제는 효자손이 아니라 안마기로 기억될 것이다. 금강송으로 지어진 한옥에 놓인 최첨단 안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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