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진칼럼 ■ 전병식 주필

▲ 전병식 주필
금번 국회의 지경부 감사장에서는 경주에 건설 중인 중·저준위방폐장부지 안전성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제의 핵심은 지반이 너무 연약하여 공사를 중단하고 부지 위치선정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95년 말 경주시민들은 90%에 가까운 압도적인 찬성으로 방폐장을 유치하고 환호했다. 그런데 오늘날 경주는 예전의 경주가 아니다.

연일 불화와 시위와 투쟁의 고장으로 바뀌었다. 정부와 한수원 측은 지원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한수원 본사 이전위치를 두고 주민들 간 평화는 깨졌다. 얼마 전에는 경주시의회 의원들이 방폐장 유치 취소를 선언하는 사태에 까지 이르렀다.

경주에 방폐장을 건설할 수 있다는 판단자체가 잘못됐다. 지반이 문제가 아니다. 경주가 어디인가? 천년의 기가 서린 곳이다. 경주는 우리나라 고대역사의 중심도시로서 오늘날 문화적 수도이다. 이곳에 방폐장을 건설한다는 것은 서울 한복판에도 건설할 수 있다는 무모한 발상이다.

이런 수준 하에서는 고준위 방폐장도 대한민국 땅 어디든지 건설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원자력 관련시설 입지선정 기준은 먼저 인문지리적 조건을 살피고, 그 다음으로 자연지리적 조건을 살핀다.

인문지리적 조건의 첫째가 대도시와 멀리 떨어져야 하고, 둘째가 인구밀도가 낮아야 한다. 경주는 천년고도 문화적 보고의 고장으로서 가급적이면 원형을 복원하고, 원형대로 보존되어야 할 도시이다.
그러나 이러한 보존가치보다도 훨씬 더 큰 현실적인 부당성은 경주는 울산과 포항이라는 큰 도시들을 포함하여 약 2백만 명이라는 사람들이 인근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경주에 방폐장을 건설하려는 결정은 애당초 무리였다.

방폐장 부지는 어디가 적지인 지를 과학적으로 접근하여 최고의 입지에 대해 시간이 걸리더라도 주민들을 설득하여 풀어야 할 문제였지, 여론을 호도하여 국민들 간 경쟁을 시켜 선정할 사안은 결코 아니었다.

전국공모라는 미명아래 정부와 한수원이 텔레비전과 일간신문들을 동원하여 정치·사회적으로 풀어낸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실수였다. 이로 말미암은 경주부지 추진에 대한 난관은 필연적이었으며, 응보이다.

벌써부터 일부 주민들 중에는 뜬구름 잡는 이도 있다. 경주방폐장은 다시 울진에 올 것이란다. 울진만큼 인문·자연지리적 조건을 갖춘 곳은 없다는 것이다. 수백 년 뒤를 내다본다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는 것이다.

한수원 측은 방폐장 공사 중 지난 6월, 예상치 못한 연약 지반이 발견되어 공사기간을 30개월 연장하고, 공사비도 700억 원을 추가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경주부지 지질조사보고서에 의하면, ‘방사성폐기물 저장소가 설치될 지하 130m 아래의 지질은 연약 지반인 4~5등급에 해당한다.

또 보고서에는 “전 세계적으로 안전에 문제가 있는 4~5 등급 지반에 핵 폐기장을 설치한 사례가 없다." 며, 저장소 위치를 옮겨야 한다는 의견도 적혀 있었고, 지하수 용출량도 월평균 49톤 정도로 보고 되었다.  그런데  공사중 그 12배가 넘는 614톤이 용출되는 것으로 확인되어  만에 하나 방사성 물질이 유출될 경우, 지표면이나 표층수까지 빠르게 번질 수밖에 없다.

이제부터 우리는 정부와 한수원의 발표를 믿을 수가 없다. 지금까지 정부와 한수원은 원자력사업과 관련해서는 주민들의 신뢰를 잃었다. 매번 밀실에서 은밀히 추진하는 행태를 보여 왔기 때문이다.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기질 않는다.

목적 달성의 수단으로 매스컴을 동원하여 여론을 호도하고, 주민들 간 갈등을 조장해 왔으며, 지역민들과의 약속은 지키지 않아 번번이 큰 사회적 문제를 만들어 왔다. 그리하여 ‘안전에는 문제없다.’고 공언하면서도  밀실 한켠에서는 울진설치에 대한 연구를...

최경환 지경부장관은 경주 방폐장은 17년 걸려 주민투표 등 우여곡절 끝에 결정된 일이다. ‘안전에는 문제없는 것으로 안다.’ 고 밝혔고, 한수원 측은 실무차원에서 검토한 내용일 뿐이다. 일부 보강 조치를 거치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방폐장 사업단 관계자는 실제 굴착을 해봐서 육안으로 상태를 확인한 다음에  필요하면 재배치라든가 여러 가지 방법을 강구하겠다고 한다.

진보신당 조승수 의원은 그는 중·저준위 방폐장은 최소 300년 이상 지진이나 기타 자연환경으로부터 안전하게 격리되어야 하는데, 공개된 한수원의 내부 문건을 전문가들과 분석한 바, 내진성이 떨어지고, 지하수 오염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한나라당 이종혁 의원은 최근 국감장에서 경주 방폐장 건설부지는 암반이 부실할 뿐 아니라, 지하수가 하루에 614톤이 나올 정도로 위험하다"며, "이곳에 방폐장을 짓는 것은 미친 짓이다." 라고 격렬히 비판했다.

정부와 한수원은 어떻게 할 것인가? 밀어붙일 수도 없고, 멈출 수도 없고 참으로 진퇴양난이다.
                                전병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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