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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는 문화창조 … 전설은 관광자원”
■ 문화지식 ■ 윤대웅 울진향토사연구회장
2009년 10월 13일 (화) 09:01:35 [조회수 : 2138] 편집부 webmaster@uljinnews.com

 
비(碑)받침 거북의 머리에 왜 용(龍)이 있는가?

   
 
▲ 윤대웅  울진향토사연구회장
 
“신화에서 문화가 창조되고, 전설은 관광자원이 된다.”

송덕비(頌德碑), 신도비(神道碑) 등의 받침돌은 거의 대다수가 거북의 형상을 하고 있다. 이를 귀부(龜趺)라고 하는데, 머리는 용(龍)의 모습과 거북의 모습 두 가지로 되어있다.

용은 신령스러운 상상의 동물로서 비늘달린 동물의 장(長)으로 5개의 발톱이며, 구름을 일으켜 비를 내리는 등의 조화 무쌍한 영물이다.

중국 신화에는 그들의 조상신인 황제(黃帝)는 사람 얼굴에 용의 몸이라 하며 신성시 한다.
중국 약학서인 본초강목에는 용의 모습을 “입가에는 수염이 났고, 턱밑에는 여의주, 낙타머리, 사슴뿔, 도깨비 눈, 소 귀, 독수리 발톱이며, 등(背)에는 81개의(9×9) 비늘이 달린 여러 동물의 특성을 합한 형체로 묘사하고 있다.

물, 바다의 신(神)으로 여기는 영물이며, 아홉 마리의 새끼를 낳아 각각 평생 좋아하는 바를 쫓아서 등천하지 않고 살아간다고 하는 바,
-1은 비희인데 무거운 것을 지는 것을 좋아하고 형상은 거북과 흡사하다. 비석을 바치고 있는 귀부(龜趺)가 그것이요.
-2는 이문(이무기) 인데, 글을 좋아하고 또 바라보기 좋아하며 형상은 뿔 없는 교룡(蛟龍)으로 비석위의 문양이 되고(平生好文 今碑兩旁文龍是其遺像/중문사전)
-3은 포뢰(蒲牢)로 형상은 작은 용이며, 소리 지르기를 좋아하여 종의 위 꼭지가 되고(形似龍 而小性好叫吼今鐘上紐是也)
-4는 사자형상 감옥문 문양이다.
-5는 솥(鼎)의 문양으로 옛적 많이 쓰이든 것으로 머리만 있고 몸이 없는 탐식하는 짐승이며, -6은 지네(蚣)의 형상인데 물을 좋아하여 교량의 기둥에 조각된 문양이고,
-7은 애자인데 칼의 자루문양이다.
-8은 산예라고 하는 사자와 흡사한 형상으로 연기를 좋아하여 향로의 받침발이 되었고,
-9는 라와(螺蛙)인데 소라와 흡사하고, 다물기를 잘하며 문고리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비(碑) 받침돌은 무거운 것을 지기를 좋아하는 용의 아들 “비희”이기에 머리모양의 용의 모습으로 형상된 것이라 하겠다.
   
 
 
 


거북 본래의 모습 받침돌에서 비(碑)를 받치고 있는 거북은 첫째로 중국신화에서 세계를 지탱하고 있다는 데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중국의 신화에는 우주의 기둥을 거북이 받치고 있다고 한다.

신령스러운 것으로 일반 거북과는 다르게 의미가 부여되어 있다. 이기(異記)에 기술된 바를 보면 천년을 산 거북은 털이 나고, 5천년을 산 거북은 신귀(神龜)라 하고, 일만 년을 산 것을 영귀(靈龜)라 한다.

본초강목에 “영귀는 일명 비희라고도 하고, 역(易)에는 신령스러운 징조로서 밝은 덕행(德行)”으로 비유했다.둘째로 “영귀”는 일명 “비희”라고도 하였으니, 용의 아들이나 거북과 동일하게 형상한 것이라 하겠다.

일반상식적인 측면에서 비갈(碑碣)이란 위가 둥근 것을 “갈”이라고 하고, 모난 것을 “비”라 한다.
이는 원래 자연석 일면을 갈아서 글을 세기고 위를 둥글게 한 것이 “갈”이며, 사각형으로(육면체) 잘 다듬은 것을 “비”라 한 것이 시원이 되었으나, 비각(碑刻)의 통칭이 “비갈”이다.
따라서 세간에 흔히 비석(碑石)이라 하는 바, “비석”은 비를 만들기 위한 돌이란 말이 되니 “비갈”이라 함이 합당하다

비(碑)의 받침돌 거북의 형상인 것은 귀부(龜趺)라고 하고, 4각형의 홈을 파서 받친 것은 농대석(籠臺石)이라 하며, 비의 위에 용의 문양을 새겨 얹힌 개석(蓋石)은 이수라 하고, 지붕형식은 가첨식(加?石)이라 한다.
결론적으로 귀부(龜趺)의 머리 모형이 용 또는 거북 어느 것이나 그 의미 다를 바 없으며 예부터 혼용하여 왔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거북 몸체에 용의 머리 모형으로 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고 신성 서러울 것 같다.
위 3에서 기술한 영귀(靈龜)는 일명 비희라고도 하였으니 그러하다. “비희”는 용자(龍子)의 이름이라 하였다.

받침돌은 “귀부”와 “농대석”이 있고, 위의 명칭은 “이수”와 “가첨석”이 있는데, 통칭으로 세간에서 관석(冠石)이라고도 하나 개석(蓋石)이 합당하다. 따로 얹지 않고 비신(碑身)에 함께 조각된 구름문양 등은 비두(碑頭) 또는 비수(碑首)라 한다. 

그리고 간혹 묘 앞에 제수 차리는 돌을 좌판이라고도 하는 바 이는 상석(床石)이라 함이 옳을 것이고, 묘의 비는 묘비(墓碑)라 하면 된다.
받침돌 귀부는 거북이 아니라 용의 아들(龍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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