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진칼럼 ■ 김진문 논설위원

  ▲  김진문 논설위원
모든 공간은 모든 길이다. 새롭게 가야할 길과 아직도 가지 못한 길 사이에서 바람을 단 돛은 설레었으리라. 망망대해에 일엽편주가 되어, 미지의 세계를 향한 처녀항해로 가슴 부풀었으리라. 수평선은 때때로 폭풍과 뇌우를 동반하여, 우리에게 패배를 요구하기도 한다. 험한 욕망의 바다를 헤쳐 나가야 비로소 대지 위에서 가장 빛나는 별을 볼 수 있으리라.

길은 이어져야 한다. 길은 잠깐 끊어질 뿐, 머물지 않는다. 길은 물처럼 흘러야 한다. 흐르는 것은 썩지 않는다. 고이거나 막힌 인공의 도로는 진정한 자연의 길이 아니다. 인간 탐욕과 속도 숭배의 길일뿐이다. 자연의 길이 아닌 기계의 길이다. 자연과 평화의 하늘 길로는 새가 날고, 파괴와 죽음의 하늘 길로는 폭격기가 난다.

십이령(十二嶺)을 넘는다. 지인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선인들이 넘던 길을 간다. 만산홍엽이다. 시나브로 나무들이 탈속을 한다. 단풍이 진다. 탈속 하는 나무들은 겸손하다. 다만 꽃과 열매를 하늘에 피우고, 다시 거름이 되어 뿌리로 돌아가 내년에 새로운 잎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것이다. 자연의 진정한 회귀가 아니겠는가?

단풍진 길을 밟으며 가슴 깊이 숨을 들이쉰다. 가슴 가득 맑은 산소가 팽팽하게 들어찬다. 보부상들의 애환이 서린 철비를 지나 새재를  넘는다. 성황사, 굽이굽이 지나온 길을 선인들은 이곳에서 기원했으리라. 장사가 잘 되기를, 무사안녕과 따뜻하고 평화로운 삶을 말이다. 그들의 기도와 신앙은 광란과 사치가 아닌 소박함이었을 것이다. 

마고할멈 바위의 전설을 더듬는다. 울산에서 마고 할멈이 끌고 왔다고 한다. 말에 싣고 오다가 여기에서 멈추고 말았단다. 바윗덩이가 마치 마고 할멈 생의 봇짐 같다. 우리는 누구나 인생 봇짐을 지고 간다. 내 삶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생의 값어치는 얼마일까?

길은 역사다. 추억이다. 이야기이다. 이미 걸어온 길, 신화와 전설이 없다면 그것은 길이 아니리라. 인생에 꿈과 신비, 희망이 없다면 얼마나 무미건조하랴. 길은 이어져야 길이다. 삶은 이야기로 이어진 길이다. 아직 가장 아름다운 노래와 훌륭한 시는 씌어지지 않았다. 불멸의 춤은 아직 시작 되지 않았다. 가장 위대한 예술과 역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마고 할멈의 바위가 우리에게 새삼 무언가를 깨우쳐 준다.

인간은 길을 만든다. 길을 길들인다. 진정한 길, 인간의 길은 무엇인가? 너그럽고 평화롭고 여유로운 길은 어디에 있는가? 당신은 지금 어디로 가려 하는가? 지금 어디쯤 있는가? 어디에? 벌써 종착점에? 인생의 대지가 당신을 부른다. 수평선 너머로 파도가 일렁인다. 모든 광야가 당신을 손짓한다. 인생은 살아볼만 한 길이 아니겠는가? 길이 아무리 사방팔방으로 뻗어도 종착지는 하나다.

선인들이 한양으로 가기위해 넘던 길, 단풍이 물든 황홀한 길을, 그 삶을 우리는 황홀하게 넘는다. 불편한 진실, 십이령, 새재를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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