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진칼럼 ■ 김 진 문 논설위원

경인년 정초, 필자는 아계鵝溪 이산해李山海가 유배 왔던 평해 일대를 탐방했다. 이산해는 조선중기(선조) 영의정을 지낸 인물로 임진왜란 발발 당시 유성룡과 함께 어가御駕를 의주로 피신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으나, 이를 빌미로 정적들로부터 탄핵을 받아 이곳 평해 일대로 유배를 온 바 있다. 이산해는 달촌(평해 삼달), 서촌(온정), 화오촌(월송), 황보(노동)마을에서 3년 동안 머물렀다.

그가 유배 와서 남긴 시詩와 문文(기記,전傳,설說,증서贈序)을 문집으로 펴낸 것이 아계유고鵝溪遺稿이다. 이 책에는 당시 평해 일대의 풍물, 인물, 지리(산수) 등이 풍부하게 담겨 있어 향토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 받는다. 그는 유배생활 틈틈이 글을 쓰면서, 울진의 명승지를 유람했는데, 그 중 한 곳이 관동팔경으로 유명했던 망양정望洋亭이다. 옛 망양정의 풍광을 읊은 시인으로는 송강松江 정철, 숙종대왕 어제시御製詩, 정조대왕 어제시, 매월당梅月堂 김시습 등이 있다. 아계는 다음과 같이 읊었다.

바다를 낀 높은 정자 전망이 탁 트여 枕海危亭望眼通/올라가 보면 가슴 속이 후련히 씻기지 登臨猶足 心胸/긴 바람이 황혼의 달을 불어 올리면 長風吹上黃昏月/황금 궁궐이 옥거울 속에 영롱하다네. 金闕玲瓏玉境中

오랜만에, 참 십 수년 만에 망양정 옛터를 오른다. 산기슭, 새로 난 대리석 계단 보폭은 왜 그리 넓은지? 내딛는 발걸음이 어쩐지 부자연스럽기만 하다. 대리석 계단 또한 둘레의 풍경과는 그리 잘 어울리지 않는다. 건축물에 문외한인 필자에게도 이건 아니다 싶다.

옛터에 오르자 유허비가 반갑다. 유허비를 보는 순간 이곳에 작은 정자 하나쯤 세웠으면 하는 생각이 퍼뜩 떠오른다. 벼랑 끝 소나무 세 그루, 겨울 찬바람을 맞으며 의연하게 마을을 굽어보고 섰다. 그런데 보기가 민망스러운 풍경 하나! 소나무에 걸린 마을 방송 스피커이다. 좀 제대로 정비할 수 없을까?

무심한 겨울바람에 몸을 맡긴 채 눈은 수평선을 향한다. 동해는 만경창파萬頃蒼波이다. 마침 갈매기 떼들이 하늘을 날아올라 바다풍광이 더욱 살아 오른다. 아계가 읊은 대로 전망이 탁 트여 가슴 속이 후련히 씻긴다. 검은 바위에 굽이쳐 부서지는 새하얀 파도는 송강의 시 구절처럼 가히 고래 등과 같고 눈부신 은산銀山이다. 이제 어떤 시인이 이보다 더 아름다운 구절로 읊겠는가? 더구나 겸재謙齋정선鄭 과 연객烟客허필許 의 망양정도望洋亭圖에는 동쪽벼랑에 파도치는 풍광이 펼쳐져 장관인데, 이제 아스라한 벼랑은 대부분 잘려나가 도로가 되었기에 더욱 스산하기만 하다.

그건 그렇다 치고 현 기성면 망양리 마을 앞 도로를 망양오징어도로라고 한다. 이는 울진의 대표 산물인 오징어와 미역 등을 말리며 해안가로 내달리는 국도 7호선 일부 구간을 일컫는 별칭이다.

그런데 지금 이 마을 주민들은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4차선 국도가 마을 뒤편으로 개설되면 관광객이 크게 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울진군의 대책 마련을 기대하고 있다.
오징어 파는 어느 할머니의 말씀-그 대책이란 현재의 2차선 도로 쪽에서 벼랑을 거쳐 바로 망양정 옛터로 오를 수 있도록 구름다리를 놓는 것이다.
그래야 마을을 지나는 관광객을 일부라도 붙잡을 수 있기 때문이란다. 말하자면 관광객 유인책이 필요하다는 것.- 울진군 문화행정의 좋은 발상을 경인년 새해에 기대해 보는 바이다.

모처럼 아계, 송강 등이 올랐던 망양정 옛터에서 법고창신法古創新! 이제 흘러간 400여년의 세월, 4차선 국도를 쌩쌩 달리는 버스, 차창너머의 저 만경창파를 그저 스쳐 지나는 한 장의 흑백사진으로만 남길 것인지?
인생과 세월은 찰나刹那요! 자연은 낙하유수落花流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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