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지킴이 ■ 현대조경 황 재 성 대표

평해 현대조경 황재성(59세) 사장은 변화무쌍하고,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사람이다.

최첨단 사업에서~장묘사업까지 그 처럼 다양한 사업 경험을 가진 이도 드물 것이다. 그를 보고 사람들은 오뚝이 인생이라고 한다. 하도 여러번 실패와 성공을 반복했으니...

평해.온정 유선방송사업 1호, 조경공사업 1호, 컴퓨터학원 운영 1호, 장묘사업자. 납골당 1호에다가 자동타이머를 개발 대구에서 약 2년간 공장도 운영한 적도 있고, 대구에서도 컴퓨터학원을 운영하기도 했다.

한창 돈을 많이 벌었을 때는 평해에다가 3층 건물도 올리고, 3천여평의 부지에 ‘자연농원’을 만들어 골동품 전시장과 소동물원을 운영하기도 했다. 평해지역에 자가용이 거의 없을 때 그의 부인은 평해 여성운전자면허 1호의 기록을 추가할 정도였다.

그는 평해읍 오곡리 태생으로 어린시절 만들기에 소질을 보였다. 무엇이든 손에 잡히면 분해하고 조립했다. 그가 라디오를 만들어 보이자 초등학교 담임교사는 커서 훌륭한 과학자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서울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전자회사에 잠깐 몸 담았다가 75년 21살의 나이에 귀향했다. 당시 울진군내에는 막 흑백 텔레비전이 보급되기 시작하였는데, 전파수신 기술이 없어 화질은 형편없었다.

그가 내려와 울진읍과 평해, 백암온천 등 그 지역 산 정상에다가 전파 수신장치를 설치했다. 그는 당시 동해안에서는 거의 유일한 고급 기술자였다. 유선을 각 가정에 보급해 선명한 화질을 보여주니, 그의 인기는 하늘을 치솟았다. 종업원을 7명이나 두고도 바빴다. 울진읍은 약 1년간 운영하다가 다른사람에게 넘겨주고, 백암온천과 평해 두 곳만 관리하며, 텔레비전 판매대리점과 수리점도 같이 운영하니 삼수겹장이라, 돈이 벌리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평해읍민들에게는 평해초등학교 운동회를 안방에서도 볼 수 있게 무선으로 전파를 발사하여 생방송으로 중계하기도 하고, 가끔 평해읍 뉴스도 직접 아나운서가 되어 방송도 했다. 또 무비카메라를 사용하여 그때는 포항시내에서도 보기 힘들었던 결혼식 비디오를 촬영하여 편집해 주기도 했으니….

20대 초반의 젊은 황사장은 울진 최고 인기맨이었다. 그의 유선방송기술은 전라도까지 수출되었다. 포스코가 유선망이 전혀 없던 광양만에 제철소를 지으면서 황사장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수신장치를 설치하고 막 보급을 시작할 무렵 그 지역 조폭들에게 뺐기다시피하고 철수했다.

허-허- 하고 웃던 그는, “수년전 백암온천 및 평해의 유선방송이 포항케이블방송에 약10억원에 팔렸는데, 전라도 광양시 유선망을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다면, 그 재산적 가치는 얼마나 될까요? 아마 수백억에서~수천억 갈 겁니다.”한다.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풀려나갔다. 컴퓨터가 일반 국민들에게 보급되기 시작하자, 평해와 대구 대명동에 컴퓨터교육 학원을 차리고, 자동타이머 기술 특허를 얻어 대구에다 생산 공장을 지었다. 대구공장에 근무하던 경리직원이 자기 언니를 소개하여 그의 부인이 되었다. 그러나 컴퓨터는 아직 초기 보급단계라서 수강생이 적었고, 자동타이머도 당시는 수요가 적어 적자를 면치 못하면서 많은 손해를 보았다.

그에게 또 한번의 손해는 IMF때였다. 이제는 조경업과 장묘업이 본업이 되었지만, 유선방송사업이 자리를 잡자, 묘목 장사도 겸했다. 약 5년뒤에는 본격적으로 조경업에 뛰어들었지만. 아파트 조경공사를 많이 했는데, 부도가 터지고, 더군다나 보증 및 부도어음 약 5억원이 목을 조였다.

“지금 조경석 시공업과 장묘업에는 일이 많습니다. 쉴 날없이 일을 매일 열심히 합니다. 일이 있어 즐겁고 건강하여 일할 수 있다는 것이 위안이죠, 그리고 두 아들들이 수백명 모집에 8천명이 몰리는 포스코와 포스렉에 취업된 것이 큰 기쁨이죠.

본격적인 조경업은 백암성류파크호텔을 지을 때 석축기술을 일본기술자로부터 기초적인 것을 배워 30년간 울진에 주요 조경석 공사를 거의 다했습니다. 장묘업은 기성비행장건설 때 1000여기의 묘를 옮겨야 할 것을 보고 손을 댄 것이 또 업이 되었지요.”

지금까지 본사에서는 많은 고향 지킴이를 발굴해 왔지만, 그 만큼 무궁무진한 이야기의 주인공은 없었다. 지면 사정으로 줄이고 줄여야 하지만, 한 가지는 더 싣지 않을 수 없다. 그의 부인은 경북대병원에서 황사장을 연구대상이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그는 위가 없다. 두 번의 위암 절제수술을 받아 식도가 작은 창자에 바로 연결돼 있다는 것이다. 처음은 23년 전이었고, 두 번째는 재작년 8월이었다고. 첫 번째는 수술 20일후 퇴원을 할 때 받아온 20일치 약만 먹었고, 두 번째는 수술 일주일후 타온 한달치 약만 먹었을 뿐이라는 것. 경북대에서 큰일난다며 발발이 연락이 와도 다 나았다며, 약은 고사하고 병원에조차 결코 가지 않는다는 것.

그는 술잔은 놓지 않는다. 조경석 시공은 예술성이 있어야 진정한 작품이라고 하며 이야기를 하는 중에도  맥주잔을 기울였다. 인명은 재천이라는 것.
                                                                                                         임헌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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