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명룡 논설위원
 입춘도 지나고 우수憂愁와 경칩驚蟄이 다가오면서 세상의 온갖 생물에게서 생동감이 일기 시작한다. 조용히 땅에 귀를 대고 있으면 생명이 움트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이맘때 주로 산사山寺 여행을 즐기는데, 고요한 가운데서 만물의 생동은 한층 더 활기차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동안거冬安居 용맹정진을 마친 스님들의 울력에 활기가 돌고, 경내에는 약간의 소란도 용납되는 이즈음, 수행법을 몰라도 부처님 앞에서 가벼운 사색에 빠져보는 것도 좋다. 불교예술에 대해서 아는 것은 없지만 개인적으로 목조불木造佛을 좋아하는데, 안목이 있어서가 아니라 나무(木)의 생물적 질감에서 느껴지는 생명성生命性 때문이다.

고대로부터 사물에 대한 인식은 동서양에 따라 큰 차이가 있는데, 서양에서 만물은 창조물(造,Creation)이라는 인식이 강한 반면, 동양에서는 만물이 태어난다(生,born)고 보았다. 인간과 흡사하게 만들었다고 해도 휴먼 로봇의 부속 하나로 전체 구조를 가늠할 수 없듯이, 만들어진 것은 일부분에서 전부의 속성을 파악하기 어렵다.

그러나 태어나는 것은 미세한 부분도 전체의 속성이 내포되어 있다. 예를 들면 사람은 하나의 세포에서 60兆의 세포로 분열되었기 때문에 세포 하나하나에 전체의 특성이 들어있다. 그런 까닭에 줄기세포를 이용한 복제가 가능한 것이다. 꺾꽂이라는 말처럼 꺾어서 꽂아도 똑같은 나무가 되는 것이 바로 부분 속에 전체가 들어있는 생물生物의 특성이다.

생물의 번식구조나 인간의 종법구조도 마찬가지다. 나뭇잎 하나의 무늬에는 나무 전체를 2D(two-dimensional)로 보여주고 있는데, 인간의 봉건 종법제도를 도식화圖式化 하면 잎사귀 무늬가 된다. 이와 같이 생물은 미세한 부분에서부터 시공을 초월한 번식까지도 유기체적으로 연결되어있다. 나무로 만든 불상에서 특별한 생명성을 느끼는 이유도 그 때문이라 여긴다.

새해 소식으로 우리 군郡이 울진 금강송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등록 추진에 나섰다고한다. 두 손 들어 환영하는 바이다. 우리 소나무 숲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수백 년 동안 국가로부터 특별한 보호를 받아왔던 위대한 유산이 아니었던가. 울진 금강송은 특히 왕실의 관곽재棺槨材인 황장목黃腸木으로 유명한데, 같은 우리나라 소나무라도 일반 소나무에 비해 심재心材 비율이 두 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니 특별한 소나무임에 틀림없다. 뉴스를 접하면서 일본에 있는 고류사(廣隆寺) 미륵보살이 생각났다.

우리 울진에서 건너간 하타노 카와카쓰(秦河勝)가 창건한 고류사(廣隆寺)와 우리 금강송으로 만들어졌다는 미륵보살반가사유상. 봉평 신라비新羅碑에 기록된 사건으로 인해 도일渡日한 파단(波旦: 울진의 옛이름, 일본音 ‘하타’)땅 사람들이 창건한 사찰에, 금강송으로 제작된 목조불이 일본 국보로 모셔져있다는 것은, 생명체의 유기적 활동에서 빚어낸 매우 특별한 인연으로 여겨왔다. 우리 국보83호 금동미륵보살과 흡사하게 닮은 고류사 미륵보살. 한반도 제작설에 대해 아직은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한 것도 사실이다.

어떤 이는 일본이 메이지 시대에 미륵보살 안면을 일본인의 얼굴로 변형을 가했기 때문에, 카를 야스퍼스Karl Jaspers가 언급한 ‘인간 존재의 가장 청정한, 가장 원만한, 가장 영원한 모습의 표징’이라는 말에 공감할 수 없으며, 한반도 제작설에 대한 의미도 희석되었다고 씁쓸해한다.

하지만 필자 생각에는 여전히 울진 땅의 생명력이 일본에서도 여전히 생동하고 있는 증거라 믿는다. 얼굴이 조금 달라졌다고 해서 본질의 생명성이 달라지지 않는 것처럼. 울진 금강송이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 되면 기념으로 고류사에 여래상如來像 한분을 조각해서 기증하는 것도 특별한 인연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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