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병 식 주필

 나는 요즈음 TV 사극에 빠져 있다. 케이블 TV 16번 채널에서 저녁 늦은 시간 ‘왕의 여자’를 방영한다. 이 극을 통해 권력이 어떻게 만들어지며, 만들어진 배경이나 과정에 따라 어떤 종말을 겪게 될 지를 절실히 음미하고 있다.

물론 작가는 극적 효과를 높이기 위해 허구적 상상력을 더해 시청자들을 TV 앞에서 자리를 뜨지 못하게 하는 재미난 소재들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결국 소품에 불과하고, 스토리 자체의 무게감과 충실성이 시청자들을 끌어 들이는 힘이 된다.

드라마 중간에 보기 시작해 10여회를 띄엄띄엄 보았는데, 조선조의 광해군이 임진왜란 중 세자에 책봉되고 선조가 붕어하자 왕위에 올랐다. 극중에서는 광해군이 선조의 독살을 몰랐던 것으로 설정하고 있지만, 알고도 묵인했을 가능성도 엿보인다.

광해군이 즉위하자마자 왕권 안정을 빌미로 친형인 임해군을 제거하고, 어린 동생 영창대군마저 질식사시키는 장면까지 볼 수 있었다. 죽느냐 사느냐의 사색파당의 잔혹했던 권력암투 속에서 왕위에 오른 광해군은 영리했다지만, 시대적 상황의 한계를 극복하지는 못했다.

광해군을 적극적으로 옹립했던 배후 세력은 이이첨과 정인홍 일파였다. 이들은 북인에서 갈라져 나온 대북파다. 백척간두에 선 광해군을 왕위에 올리고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누리기 위해 왕으로 하여금 온갖 패륜을 자행하도록 사주했다.

극중에는 당대의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백사 이항복과 한음 이덕형도 만날 수 있었다. 사색당파라는 만인의 투쟁 속에서도 역사를 통해 피어난 이들의 인격과 경륜에 흠모의 정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위안이었다.

역사적 사실인지 극중 역할에 불과한지는 알 수 없지만, 광해군이 왕이 되는 데는 ‘개똥이’라는 궁녀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등장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았다. 역사의 왜곡이었고 파국을 향한 질주였다.

많은 역사적 치적을 남기기도 한 광해군이 결국 즉위 16년 만에 서인의 반정으로 폐위되어 제주도로 유배되었다가 비참한 죽음을 맞게 된다. 광해군의 이러한 종말의 내부에는 극중의 역할로 봐서 ‘개똥이’의 악역이 가장 컸다. 왕은 그녀의 말을 신용했다.

그녀의 저주였다. 광해군의 아버지 선조로부터 성은을 입은 몸으로서 또 그의 아들 광해군의 총애를 받은 것 자체가 패륜이었다. 선조를 독살한 아킬레스건을 잡아 쥐고, 자신의 운명을 한탄하면서 이루지 못할 미완성 곡 ‘사랑’을 연주했으니... 그 곡은 필시 한 맺힌 여인의 저주였다.

세상은 남자가 움직인다고 했던가! 남자를 움직이는 것은 여자라. 과거나 현재나 한 인간의 삶에 있어서 권력과 여자는 엄청난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역사는 증명한다.

극 중 작가의 역량이 돋보이는 것은 ‘맹지천’의 설정이다.
인생을 달관한 그는 멋있고 스승다웠다. 광해군이 왕이 되기까지 책사 역할을 맡았던 그는 가설 인물일 테지만, 광해군이 보위에 오르자 하직 인사를 하고 훌쩍 떠난다.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며.

만일 맹지천이 눌러 앉아 광해군의 옆을 지켰다면, 그도 또 하나의 파당을 형성하여 사색의 피를 묻혀 결국은 인조반정 때 형장의 이슬이 되었거나, 사약을 음미하면서 인생의 쓴 맛을 곱씹어야 했을 게다.

오는 6.2 지방선거까지는 두 달이 채 못 남았다. 기득 권력을 지키려는 이들과 이를 차지하려는 사람들 간의 세력다툼이 치열하다. 피 터지게 싸운다. 누가 선거를 민주주의 꽃이라고 했던가?

이들에게 진정으로 권하고 싶다. 16번 채널 ‘왕의여자’를 보라고. 권력이 무엇인지, 인생이 무엇인지부터 생각 좀 해 가면서 싸우기를 바란다. 역사의 흐름을, 종국의 역사를 읽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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