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오신날 - 자비도량 불영사를 찾아서

 천축산 아래 하늘이 내린 천혜의 수행터

불영사 일운 주지스님, 대규모 중창불사 회향 눈앞에…



대한불교조계종 
      자비도량 불영사 주지
  불영사는 그 자리에 그렇게 있었다.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울진 사람들의 삶 속에 평화와 자비심을 심어 주고, 함께 호흡하면서 말이다. 영산홍 붉게 타는 어느 봄날, 솔바람 소리, 차향 은은한 불영사를 찾았다.

곧 있을 부처님 오신날 행사 준비로 도량은 분주한 모습이었지만, 고요함과 편안함이 느껴진다.

오는 사람 막지 말고 가는 사람 잡지 말라는 불가의 인연 사상 때문인가, 수선납자(修禪衲子)들의 선기(禪氣)가 어려서인가. 울진을 상징하고 자랑할 만한 것을 꼽으라면 성류굴, 울진송이, 대게, 온천, 금강송, 불영사 등 많은 것들이 떠오를 것이다. 이중 유형과 무형을 아우르는 상징거리가 바로 불영사가 아닐까 싶다.

신라시대 때 창건된 이래 울진 사람들은 인생의 희노애락을 부처님 전에 털어 놓으며 두 손을 모았을 것이다. 꼭 법당 안 부처님 앞이 아니어도 좋다.

불영사를 찾았을 때는 마음에 드는 곳 어디쯤엔가 주저앉아 잠시라도 속세의 번뇌 망상, 근심 걱정거리를 다 내려놓고 마음의 평화를 즐겨보는 것이 제격일 것이다.

백의관음무설설(白衣觀音無說說)이요 남순동자불문문(南順童子不聞聞)이라. 설하는 자는 설하는 바 없이 설하고 듣는 자는 듣는 바 없이 듣는다.

서쪽 산 위 부처바위 설하는 바 없이 무한설법 하니 나그네가 남순동자 되어 듣는 바 없이 들어봄도 어떨런지... 은행나무 부처로 화현하다 대웅전 앞뜰에 서서 삼층석탑을 바라본다.

기단부, 탑신부, 상륜부가 온전히 보존된 화강암석탑으로 세월의 부침을 비껴간 모습에서 더욱 소중하게 다가온다.

신라시대 때 창건된 불영사는 여러 번의 화재로 창건 당시의 건물은 남아 있지 않으나, 이 석탑과 대웅보전 석축만이 남아 불영사의 천년의 세월을 말해주고 있다.

화려하고 정교한 내부단청으로 더욱 격조 높은 건물인 대웅보전은 영조 원년(1725)에 건립되었으나, 부처님은 최근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오늘이 어제가 되고 새것이 옛것이 되는 법이니 옛 법당에 새 부처님이 계시네 하고 분별하는 것도 부질없이 느껴진다. 현대적이고 세련된 그 모습에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부처님인 듯 하여 오히려 기도하고 참회하기도 더욱 편안하다.

알고 보니 1997년 불영사 뜰의 수령 600년 된 은행나무 큰 가지가 부러졌는데, 그 은행나무로 조성한 삼존불이라고 한다.

수행의 종교, 자력의 종교 불영사를 얘기하면서 천축선원을 빼면 뭔가 허전하다. 아마도 천축선원이 불영사의 사격(寺格), 위치 등을 대변해 주기 때문일 것이다.

1997년 현재의 자리에 개원한 천축선원은 정면7칸의 당당하면서도 겸손한 듯, 화려하면서도 소박한 듯한 비구니 수행자들의 요람이다. 한글 편액이 인상적인 천축선원은 굽이굽이 돌아가는 불영사 계곡 옆에 고즈넉이 자리하고 있다.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한 이곳 뜰에 와 서니 ‘왜 사는가’라는 물음보다 ‘어떻게 사는가’라는 물음이 더 절박하게 다가온다. 구하려고 하지 않는 자 무엇을 구할 수 있을 것이며, 노력하지 않는 자 무엇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

불교는 수행의 종교, 자력의 종교이다. 수행이 배제된 불교는 감나무 밑에 앉아서 저절로 감이 떨어져서 입안에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 수행자들이 모여드는 결제철(동안거, 하안거 각 3개월)이면 이곳은 생사일대사를 해결하기 위한 자기 자신과의 소리 없는 전쟁터로 변한다.

왜,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인터넷도, TV도 없는, 석 달 동안 산문 밖 출입도 금지된 이곳으로 스스로 오게 하는가. 선원 마당 한가운데 서있는 굴참나무에 기대서서 ‘나는 누구인가?’라고 큰소리로 묻고 싶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스님들의 수행처이다 보니 평소에는 일반인에게 개방되지 않는다.

일반인들에게는 1년에 겨우 몇 번 개방될 뿐이다. 바로 부처님 오신날과 백중기도 기간(음력 7월12일~14일)이다. 이때는 누구든 신청만 하면 스님들과 함께 하는 자비도량참법 기도에 동참할 수 있다.

이밖에도 매년 정월이면 다라니 삼일수행기도(음력 1월12일~14일)를 봉행한다. 스님들과 함께 하는 기도에 동참하여 지난 업장은 참회하고, 선업은 증장시키기를 발원해 보는 것도 아주 귀한 인연이 될 듯하다.

수행·포교·도량불사, 불영사와 닮은 주지 일운스님 면면이 법등을 밝혀 온 불영사. 1969년 현재의 선원장인 일휴스님 때부터 불영사는 비구니 도량이 되었다. 현재는 동해 지역 최대의 비구니 선찰(禪刹)이자 포교도량이다.

1991년 현재 주지 일운스님이 부임해 오면서 크게 중흥되고 있다. 20여 년 전에 불영사를 다녀온 사람이면 엄청나게 확장되고 정비된 모습에 놀랄 것이다.

재임 20년 동안 스님이 가장 신경 쓴 부분은 개인의 수행과 함께 포교와 도량 정비이다. 불사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수행불사요 둘째는 포교불사요 셋째는 도량불사이다.

이것은 스님들의 의무이자 책임일 것이다. 스님은 이 세 가지 모두를 실천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종합선물세트 같은 스님이다.

군 포교의 중요성을 실감한 스님은 1995년 사동 육군연대에 불영사 포교당인 불일호국사를 건립하였으며, 어린이 포교를 위하여 어린이 여름불교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특히 올해부터는 초?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제1회 불영사 문화체험 및 글짓기대회를 개최하고, 내년부터는 템플스테이도 준비하고 있다.

이밖에도 ‘사찰음식 문화체험’이나 ‘국수 무료 공양’ 같은 불특정 다수인을 위한 프로그램도 있다. 한편, 불영사에는 수행방법이나 활동 목적에 따라서 많은 신도회가 결성되어 있는데, 울진 지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서울, 부산, 대구, 포항, 동해, 강릉에도 불영사 신도회가 결성돼 있을 정도이고, 외국인 신도들도 많이 있다. 취재일 당일에도 대만인 신도가 방문하여 본사 취재진과 인사를 나누었다.

1991년 부임 이래 주지스님이 도량 정비와 중창 불사에 쏟아 부은 노력과 정성은 가히 경이로울 정도이다. 스님들의 수행과 신도들의 활동에 불편함이 없도록 오래된 건물은 중수하고 필요한 건물은 신축했다. 이렇게 신축된 건물만도 20여 동에 이른다.

천축선원을 비롯하여 참선 수행자들을 위한 무위당, 선원장 스님 거처인 청운당, 식당과 발우공양방으로 쓰이고 있는 청풍당, 사물(대종·법고·운판·목어)이 있는 법영루, 노스님들의 거처인 희운당, 불영사 소재 문화재 보관 장소인 수장고, 불영사 강당 및 참선체험관 등을 완공하였으며, 스님 제자들의 거처로 쓰일 청납당은 현재 불사 중에 있다.

건물 신축 뿐만 아니라, 법당 보수 불사와 개금불사 등도 스님 앞에 놓여진 시절인연이었다. 불영사에 있는 대부분의 법당들은 조선시대 건물이라 오래되고 낡아서 비가 새는 등 불편함이 많았다.

대웅전, 응진전, 극락전, 의상전, 칠성각, 황화실, 설법당, 등의 썩은 나무와 낡은 기와를 교체하는 등 해체 보수 공사를 마무리 지었다. 전기·전화 설비, 진입로 확장, 오수 정화 처리 시설, 지하수 개발, 소화전 등 스님의 손끝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이 모든 도량 정비에 들어간 공사비를 대강 어림잡아도 100억은 족히 될 듯싶다. 스님은 2~3년 내에 모든 불사를 마무리할 계획인데, 이때는 전국의 신도들과 울진군민과 함께 준공식을 가질 예정이란다.

20년의 세월 동안 이 많은 불사를 해오면서도 한 번도 힘든 줄 몰랐다는 스님은 그대로 불영사와 닮아 있었다. 그야말로 스님에게는 일이 수행이요 수행이 바로 일이었던 셈이다.

늘 그 자리에 그렇게 있는 불영사 불영사는 빼곡히 들어찬 전각들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으면서도 여백의 미가 살아있는 도량이다. 옛것과 새것이 조화를 이루고 있고 모두가 제자리에 무심히 있다.

특히 연못 옆에 웅장히 서있는 법영루는 카메라를 짊어진 나그네들에게 가장 좋은 모델일 듯 싶다. 연못 고요한 날, 그 속에 비친 법영루의 모습은 우리에게 허(虛)와 실(實)을 정확하게 구별할 것을 일러준다.

대웅전에서 종무소로 쓰이고 있는 설선당을 끼고 돌면 명부전, 의상전, 응진전, 칠성각이 차례로 나오는데, 이중 응진전은 불영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보물 제730호로 지정된 응진전은 조선중기의 아름다운 목조건물이다.

특히 백일홍 피는 계절이면 불영사의 응진전을 보러 가자. 산 아래 무심히 자리한 응진전과 어우러진 백일홍은 한 폭의 수채화이다. 응진전은 부처님의 16제자인 나한을 모신 전각으로 불영사의 나한님들은 아주 근엄하고 점잖다.

수행자의 모습을 하고 있는 그분들과 한 분 한 분 마주하며 인생의 희로애락을 모두 나누어도 좋을 듯 하고, 지금 현재 아주 간절히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면 한 번 떼를 써보아도 다 들어주실 듯 하고, 그냥 앉아서 명상을 하기도 아주 좋은 곳이다. 도

량을 한 바퀴 돌아 시원한 감로수로 목을 축인다. 중생들의 삶은 뭔가를 추구하느라 늘 목마르다. 돈도 많이 벌었으면 좋겠고, 사회적 지위도 올라갔으면 좋겠고, 자식들은 일류대학 나와서 좋은 직장에 취직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고. 부처님은 이러한 중생들을 향해 추구하되 과욕을 부리지 말 것과 소유하되 나누는 삶을 일러주신다.

고통은 내가 가진 욕심에 비례한다. 이번 부처님 오신날에는 사찰을 찾아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행복하게 사는 법을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자. 즐거움도 고통도 내 마음 먹기에 달려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그 순간이 바로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순간이 될 것이다.

나의 근심걱정, 번뇌 망상, 삶의 무게를 모두 절에 내려놓는다. 불영사는 언제나 그랬듯이 그 자리에 늘 그렇게 있을 것이다. 법의 향기 한 아름 안고 산을 내려왔다.

                                                  /장자중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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