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기 전 울진초등학교장

왕피천 제방 둑에 벚꽃의 향기 조용히 내려앉고, 하얀 조각구름 띄엄띄엄 그림같이 유유히 떠도는 화창한 어느 봄날!

내고향 사적지요 관동팔경의 하나인 망양정.... 그 옆을 자주 지나치면서도 뜻있는 마음으로 올라보지 못했던 지난 날들이 아쉬워 잠시 얻어진 마음의 여유를 달래면서 디뎠던 발걸음이 어느새 누각 난간에 기대서게 하였다.

망양정(望洋亭)은 원래 기성면 망양리 현종산 기슭에 자리 잡았던 정자를 철종 11년(1860)에 지금의 이 자리에다 이건 하였으나, 모진 비바람에 허물어져 1958년에 다시 중건 하였지만 세월의 흐름에 이기지 못함을 애석히 여겨 2005년에는 완전 해체하여 신축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숙종께서는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라는 현판을 하사 하였고, 숙종과 정조의 어제시(御製詩)와 시인 정철의 관동별곡이 유명하고, 정철이 관동팔경의 하나로 지명한 연유의 전설에는 하늘의 달, 바다에 비친 달, 왕피천에 떠있는 달, 앞에 놓인 술잔속의 달.......

이 4개의 달을 한꺼번에 바라볼 수 있는 천하 유일한 정겨운 풍치의 아름다움 때문이었다고 하니, 그야말로 하늘이 내려준 태평성대의 그 모습이 한 폭의 동양화로 아련히 떠오른다 해도 과언이 아닐지며, 시인이 아닌 어느 누구라도 한 귀절의 시상(詩想)이 떠오르지 않는데서야 어찌 이 자리에 섰다 할 수 있으리요

☞ 왕피천 굽이굽이 푸른바다 자락안은 / 내고향 관동팔경 망양정에 올라서니 / 그 옛날 선비님들 태평성세 읊던 노래 / 보이듯이 들리듯이 그 옛날이 그립구나.

☞ 흰모래 하얀물결 저녁노을 드리울 제 / 갈매기 높이 날며 그 옛노래 부르난 듯 / 이제를 원망하랴 돌아서는 저 길손아 / 발자취 남길손 가 걸음 재촉 아쉽도다.

라는 글귀를 모아 세며 한발 두발 옮기다가 다다른 이 곳이 바로 새롭게 단장된 휴식의 요람이자, 희망과 꿈을 안겨다 주는 해맞이공원.........

수평선 저 너머에서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동해 일출의 장관을 한 눈으로 굽어 본다.

황홀한 우주의 섭리에 취해 안녕과 희망을 빌어보는 자리였기에 나도 모르게 털썩 주저앉아 멍하니, 망망 대해의 푸름과 갈매기 날으는 아늑한 풍취에 도취되었다.

얄팍했던 내 생애의 파노라마는 아예 바다 속 깊이 묻어버리듯 무아의 경지에 빠지다가도 다시금 여행의 새로운 참 맛과 멋의 신비로움에 젖어드는 번뇌에 사로잡히며, 풀어내지 못할 온갖 궁금증이 갈등으로 이어져 갔다.

아마도 옛 어른들께서 후대들이 더 갖추어 개발할 여지를 예견하고 이 터를 잡았을까? 아니면 선대들이 못다 이룬 유적지의 숨결을 이어받아 수려한 풍광으로 각광을 받을 수 있는 천혜의 지형임을 확신했던 탓인 지?

한줄기 솔바람의 시원스런 향취야 말로 이 자리에서 직접 마셔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무어라 설명해도 이해 못할 것이지만, 웬지 발걸음은 가벼워지고 마음은 풍요에 젖어 행복한 웃음을 자아낼 듯 한 내 표정을 옆에서 보는 이가 묻는다면 무어라 대답해 주었을는 지!

곰곰이 생각하며 월송정을 찾아들 다음 날을 짚어보며, 그늘에 쌓인 솔밭 사이로 점점 멀어지는 망양정이 한자락의 추억으로 남아주길 바라는 마음 간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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