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영 기

오늘도 때늦은 봄날의 쾌청한 날씨이건만, 불어오는 바람결은 마치 삼복의 더위인냥 후덥지건한 느낌에서 부채 생각이 간절해 졌었다.

그렇지만은 얼마전 망양정에서 느껴봤던 조상들의 옛 정취를 다시 느껴본 설레임을 애써 가누려는데 귓전을 스치는〝배일호〞의 신토불이....「내것이 제일이요, 우리 것이 제일인데, 남의 것을 왜 찾느냐?」의 흥겨운 가락은 착잡했던 내 가슴을 시원하게 탁 틔워주었다.

다시금 여행의 참 맛, 참 멋을 제대로 찾을 수 있는 여정(旅情)에 도취되어 나도 모르게 같이 즐거워하며 흥얼거리던 순간 차는 어느새 월송정유소에 다다랐던지 하차의 재촉을 받았다.

내리자마자 따가운 햇볕을 손바닥으로 가리며, 짙은 솔향기 그윽한 평해공고 교정 앞 솔밭 그늘 속에 싸이노라면 월송정의 아름다운 풍치에 젖어든 향취를 혼자 느끼기엔 너무나 아쉬웠다.

명사십리와 동해의 푸른 창파를 굽어보며, 송강 정철이 관동팔경의 하나로 이름지어 칭송한 월송정 사연이 저절로 몸과 마음에 스며들어오고 전설속의 신선이나 된 듯하다. 옛 조상들의 얼을 되새겨 볼 수 있는 이런 곳이 바로 울진의 자랑거리이요, 문화유산임에 틀림없겠다.

월송정(越松亭)은 옛날 솔밑, 솔머리, 송두(松頭)라 하여, 울창한 솔밭 앞에 있다는 뜻이고, 월송을 달효(達孝)라 이름 하였는바, 이 마을의 이윤(李潤)이란 사람이 부모 병의 위독으로 단지 수혈(斷指輸血)했다.

부모 사망 후 3년간 아옥시묘(牙屋侍墓) 하다가 호랑이에게 잡혀간 효성을 칭송하여 나라에서 시려각(施閭閣)을 세워 달효마을(達孝村)이라 하였다고 전해온다. 월송정 인근에는 만호(萬戶) 1인과 수군 400여명이 주둔하여 해적을 막았다 한다.

중국 월(越)나라에서 들여온 수려한 풍치의 송림과 정각 앞의 백옥같은 모래밭이 잘 어우러져 신라 화랑의 수련지였다는 명승 유적지로 널리 알려진 이 누각에 올라서면, 시인이 아닌 누구라도 한 수의 시상(詩想)은 떠오를 수 밖에는...

☛ 평해의 월송정은 옛화랑의 수련성지
달효촌 처녀총각 설레이던 가슴안고
솔바람 흰모래에 깊이묻은 사랑얘기
오늘에 이어받을 굳은절개 효심일세.

☛ 솔머리 아침햇살 황금물결 수놓을제
옛조상 얼이담긴 월송정이 여기런가
달효촌 전설받아 아옥시묘 못할망정
어버이 살아실제 지극정성 다해보세.

이렇듯 우리 옛 조상들의 얼이 숨쉬는 곳곳마다 그 곳 특유의 풍광이 뛰어나고, 전설, 전래민요 등은 말없는 스승이 되어 가르침을 주고, 스스로를 자성케 하며, 사람 됨됨이의 거울이 되어준다. 이 귀하고 값진 현장체험의 즐거움은 그 무엇에다 견줄 수 있으리오!

그러므로 이제 우리고장에도 7번국도의 4차선 확장으로 200여리 해안선이 손짓하는 푸른바다와 하얀 모래밭, 시원하고 깨끗한 계곡의 물길을 찾는 수 많은 길손들에게 낯 익어져 간다.

군민 모두는 내 고향에 찾아온 손님들의 마음을 풍성하게 해주는 여행의 진맛을 보여 주는 방법은 없을까! 하고, 몰두 하다 보니 어느 듯 시간의 재촉을 받아 발길을 옮긴다.

                                        /전 울진초등학교장 윤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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