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식 주필

수일전 황석영의 ‘장길산’에서 구월산의 활빈도(活貧徒), 무림의 고수 칼잡이였던 마두령의 애절하고도 비분에 찬 죽음을 만났다.

그는 시대가 낳은 의적(義賊)이었다. 조선 숙종조  탐관오리의 학정에 시달리고, 생사여탈권마저 빼앗긴 비참하고도 처절한 민중들의 삶을 구제하려 했다. 그가 살아 민중의 삶을 활빈하여 ‘공정한 사회’를 만들지 못했던 것은 못내 아쉬웠다.

그런데 오늘 아침 모 조간신문 칠곡 주재 마기자가 쓴 <기자수첩> “ 엄정한 법집행은 원인제공자로부터...” 라는 제목의 칼럼을 읽었다.

그동안 수 많은 칼럼을 읽어 봤지만, 현장기자가 권력과 금력에 빌붙지 않고, 사건의 본질에 다가서서 공정한 시각으로 문제의 인식을 분명히 드러낸 글을 접한 것은 처음인 것 같다.

공교롭게도 며칠 사이에 두 마씨로부터 카타르시스적인 감동을 받고 보니, 앞으로의 나의 처신에 거역할 수 없는 어떤 힘의 계시는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정말 기자다운 기자를 만났던 것이다. 마기자 같은 사람들이 많아지면, 이 땅에 공정한 사회가 만들어 질 것이다.

그런데 나는 얼마 전 지역 두 그룹으로부터 울진신문 기사의 공정성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수통의 전화를 받았다. 한 그룹은 울진원자력발전소에서 해고된 사람들이었다. 울진신문에서 울진원자력본부장의 기고 글을 왜 실어 주었냐는 것이었다. 울진원자력은 지역에 도움주고 있지 않으며, 그러므로 본부장은 대단한 인물도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또 한 그룹은 신울진 공사현장의 중기 사용과 관련하여 울진원자력의 보도자료 내용은 사실과 다른 데, 정확히 확인하지도 않고 기사화 했다는 것이다. 물론 신문사의 능력이 닿는다면, 기관에서 나오는 자료마다 내용의 진실여부를 직접 확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동안 울진신문은 이 두 그룹과 관련하여 아무도 관심을 가져 주지 않을 때, 힘있는 원자력측의 눈치를 살피지 않고, ‘이상한 고용’ ‘지역 중기 사용을 확대하라!’ 는 오히려 약간의 편파성이 있는 기사를 연속으로 크게 보도하여 지역이익을 도모해 왔다.

그런데도 고맙다는 인사는 받지 못할망정, 자신들의 주장은 확인하지 않고 그대로 실어주어야 하고, 기관에서 나오는 보도자료는 왜 확인하지 않았느냐고 항의를 받으니, 참으로 힘이 빠지고, 주장의 공정`공평성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19년째 울진신문을 만들면서 지역에 많은 기여를 해 왔고, 남들만큼 지역 사정을 일고 있다고 자부한다, 그런데 울진군에 수 십개의 위원회가 있지만, 지금까지 ‘울진군 체육회 ’ 단 한 곳에만 참여시켜 주고 있다.

각종위원회 위원들의 선정에는 편파성이 없는 지 궁금하다. 그런데 약 한달 전 유일하게 쓰고 있던 한 개의 감투마저 아쉽게도(?) 내놓아야 했다. 임기는 남았지만, 모두들 사표를 쓴다고 하는 데...
사표를 안 쓰면 감투에 연연하는 사람처럼 비굴해 보일 수도 있겠고, 그리고 ‘새술을 새부대’에 담으려는 새 정권의 구상이겠지, 라는 생각에 선 듯 제출했다. 그런데 나의 사표를 낸 지 약 한달이나 지난 뒤에 접수되었다니 놀라울 뿐이다.

특히 울진군은 내년도에 처음으로 군단위에서 주관하는 경북도민체전을 목전에 두고 있다.
194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은 선거에서 이기면, 모든 공직을 전리품으로 획득했다. 그것은 멀리는 ‘새술을 새부대’에 담으려는 성경정신에서 출발하고 있다. 어찌 보면 일의 공정성 보다는 능률성에 비중을 둔 듯하다. 그것은 공정성도 중요하지만, 일의 능률성도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일 게다.

그런데 울진원자력민간감시기구에는 같은 인사가 핵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는데, 체육회와는 달리 새 정권의 요청에도 사표를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원자력발전소는 울진에서 가장 중요한 기관 중의 하나이다.
새 정권에서 손발이 맞는 사람들과 원자력 발전소를 감시하겠다는 구상은 일의 능률을 위해서라고 봐야 한다. 니편 내편의 문제가 아니다. 정부여당에서 국회의원 한 석이라도 늘여 안정적인 의석을 확보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새 정권이 들어서면, 구 정권과 행동을 같이하여 일단 자리를 비워주어야 하는 것이 순리가 아닐까!  임명권자와 행동을 같이하여 머리와 손발이 따로 놀지 않도록 하는 것은 일의 능률뿐만 아니라, 공평하고도 공정한 사물의 행정(行程)일 것이다.


                                                                   /전병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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