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신문 창간 19주년을 맞으며…



 

 

                    전병식 발행인
지금으로부터 약 2100여년 전 중국 한(漢) 제국의 사마천(司馬遷)은 중국의 상고시대로부터~전국시대까지 약 2500여년간 중국의 고대사를 저술했다. 이 책 분량도 130권에 달하는 데 사마천은 집필 당시 자신의 관직명을 따 ‘태사공서(太史公書)’ 라고 이름지었으나, 나중에 역사가들이 사기(史記)라고 이름 붙였다.

사마천의 사기의 구성은 왕들의 정치를 본기, 열국들의 제후 정치사를 다룬 세가, 본기와 세가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다룬 열전(列傳), 연표와 서(書)로 구성돼 있다. 이중에 열전은 70여권에 달해 수많은 인물들의 흥망성쇠를 다루고 있다.

사기의 번역자는 많겠지만, 내가 읽고 있는 사기의 평역자 김병총은 책머리에 사마천은 역사의 아버지다. 그의 사기는 분명히 역사서이지만, 인간철학서이며, 과학서이며, 오묘한 전대미문의 뛰어난 문학작품이라고 단언한다.

역사이후 지금까지의 온갖 유형의 인간들이 등장하는 책이다. 황제와 성현 명재상 지사 재벌 열사가 나오고, 대문호와 학자와 정객 자객 유협(遊俠) 혹리 해학가 검객 점술가 깡패 도둑 남색 사기꾼까지 등장한다. 모두가 일류들이다. 표독함이 극에 달하는 왕후도 나오고, 절색의 경국지색도 나온다.

그러므로 권력자가 읽으면, 지배의 원리와 기술을 배우게 되고, 반역자가 읽으면, 저항의 논리와 기술을 익히게 된다. 은둔자가 읽으면, 인생의 숭고한 허무를 깨우치게 된다는 것이다.

평역자는 또 사마천의 인생 목적을 현세에서 누리는 부귀영화에만 있다고 보지 않았다. 그는 육체가 썩어 없어진 후에도 명예로운 이름이 영원히 남게 되는 ‘불후의 명성’에서 구원을 찾았다고 한다.

사마천의 생몰연대와 사기의 저술기간이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김병총의 평역본에는 B.C. 145년경에 진(秦)의 섬서성에서 출생하여 60세 무렵에 사망했으며, 36세 때 사기를 저술하기 시작해 19년째 되던 해인 55세 때 완성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울진신문이 19년째를 맞이했다. 울진에서 일어난 일들을 채곡채곡 기록해 나가고 있다. 사마천은 19년만에 세계 역사에 전무후무할 대하드라마이자, 대서사시인 ‘사기’를 완성했다.

울진신문을 사기에 비교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뜻이 잘 맞지 않을 수도 있지만 당랑거철(螳螂拒轍)에도 비견할 수 없으며, 울진신문과 가까이 하거나 동시에 말을 해서도 안될 만큼, ‘사기’는 인간의 문자 창작물 중에서는 유사 이래 가장 숭고한 업적으로서 존경이 아니라 두려움을 느낄 정도의 대작이다.

다만 울진신문 창간 19주년을 맞으면서, 마침 사마천의 사기를 읽고 있는 중에 사기 완성기간과 울진신문의 발행기간이 같다보니, 너무나 많은 감동을 받고 있는 사기에서 어떤 반성과 교훈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신문이란 무엇인가? 현재 사람, 자연으로 인해 세상에 일어난 일들을 기록해 놓은 것이다. 이것이 쌓이면 역사적 기록이 될 것이고, 오래되면 바로 역사가 될 것이다. 어떻게 보면 울진신문이 19년째 울진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고, 나는 현대판 사관(史官)인 셈이다.

사마천이 사기를 저술한 직접적인 동기는 아버지의 유언에 따랐지만, 평역자가 말하는 반고(班固)의 ‘한서(漢書) 사마천전에서 사마천은 위에 기술한 ’사후의 명성‘에서 그의 생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받으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그는 사기 집필 7년째 되던 해 친구인 이능(李陵) 장군을 도우려다 효무제(孝武帝)의 노여움을 사 성기를 잘리는 궁형(宮刑)을 당했다. 나중에 재상급인 중서령(中書令)의 관직에 올라 측근에서 황제를 보좌했지만, 주위로 부터는 업신여김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궁형이 사마천을 분발시켰을 지도 모른다. 만일 그가 거세 당하지 않았다면, 사기 저술에 모든 심혈을 기울일 수 있었을까. 그의 능력으로 봐서 당시에는 많은 재물과 처첩을 거느릴 수 있었을텐데...

울진신문도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나에게 어떤 큰 심적 고통이 없었다면, 역사서나 뒤적일 남아도는 시간도 없었을 지도 모른다. 누군가 하나를 잃으면 반드시 얻는 게 있다고 한 말이 맞는 것 같다.

울진신문 창간 19주년을 맞으면서, 앞으로 울진의 역사를 기록하는 울진신문의 내용이 더욱 충실해지리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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