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피천은 영양 수비에서 발원하여 북류하다가 울진 왕피리에서 꺾이어 동진하여 수산 앞바다로 흘러드는 동해안 제일의 강이다.

그러니까 포항의 형산강, 영덕과 삼척의 오십천, 강릉과 영양의 남대천 보다 긴 강이다. 부산에서 두만강까지 왕피천 보다 긴 강은 없다는 얘기다.

왕피천은 하류에 이르러 매화천과 만나서 2억년이 넘는다는 성류굴을 만들고, 불영계곡의 소광천과 합류하여 바다로 흘러든다.
포구 남단에는 관동팔경의 한 곳인 망양정이 둔산 위에 자리 잡고 있으며, 북단에는 수산 송정을 중심으로 울진엑스포공원이 조성되어 명소로 가꾸어지고 있다.

성류굴에서 바로 건너다보이는 자연 부락에서 나고 자란 나는 여름이면, 은어잡고 뱀장어 잡던 재미가 평생토록 잊혀지지 않는다. 그때만 해도 고기잡이는 주로 원시적 방법에 의존했기에 더 오래 추억되는지도 모른다.

왕피천 은어는 민물에서 산란하여 바다로 갔다가 치어 때 다시 민물로 올라 와 봄여름을 지나 가을에 산란하고, 바다로 가서 죽는 일년생 회기성 어종이다. 연어는 왕피천에서 산란하여 이듬해 바다로 가서 3~4년을 살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서 민물에서 죽는 다년생 어종이다.

그 시절 은어가 얼마나 많았는지 강가에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그야말로 물반 은어 반이었다. 저녁 무렵 강가에 수온이 올라가면, 물속에서 먹이 활동을 하던 은어들이 일광욕을 하러 강가로 몰린다. 멍석떼 같은 은어떼들이 여기저기 둥치둥치 모여 빡실거린다.

초망을 든 형들을 따라 은어잡이에 나선다. 꼬맹이가 하는 일은 주로 족두 담당이다. 고기를 잡으면 주워 담는 일이다. 재수 좋게 한 초망 잘 치면 족두는 감당이 안 된다. 울진말로 방티가 동원되고 더 많이 잡히면 가마니가 동원된다. 생각해 보라 은어를 잡아서 가마니에 담는다니 그러나 그것은 과장 없는 실화였다.

구워먹고 지저먹고 끓여먹고 해도 남는다. 은어를 대량으로 먹어 치우는 한 방법으로 은어국수라는 것이 있다 은어를 가마솥에 삶아서 은어육수를 내고 그 육수물에 암반 콩국수를 삶아낸다. 건저 낸 은어는 뼈를 추려낸 다음 살코기로 국수꼬미를 만들어 원 없이 얹어 먹는 것이 은어국수다. 정말 별미다.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돈다.

원시적 은어잡이의 단 한 가지 방법이 있었다. 집집마다 한두 그루씩 있는 감나무가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찢어지는 가지가 있게 마련이다. 찢어진 가지에서 풋감은 따서 디딜방아도 풍풍 찍어 가마니에 넣고 열 가마니고 스무 가마니고 만들어서 이고 지고 강가로 나가서 여울 상류에서 일거에 풀어 내린다.

떪은 감물이 한바탕 여울을 타고 내려가면, 그 속에서 놀던 은어들이 그 물을 먹고 아가미가 막혀 질식하는 것이다. 벌렁 자빠져서 뱃살을 드러내고 물가로 밀려 나온다.

뒷들 육동소에서 성류소까지 약 일킬로의 여울에는 동네방네 사람들이 다 흩어져 은어를 주워 담기에 분주하다. 참으로 장관이다. 남녀노소 구분 없고 먼저 주워 담는 사람이 임자다. 집집마다. 한두 됫박씩은 거두니까 줄잡아도 대여섯 가마니의 은어를 잡는 것이 연중행사였다.

지금 생각해도 잉여 농산물을 활동한 친환경적 어로방식은 우리 선조들의 지혜를 느끼게 한다. 물론 아가미가 막힌 은어들은 일정시간이 지나면 맑은 물로 세척되어 다시 소생한다.

또 한 가지 쏠쏠한 재미중의 하다가 뱀장어 잡는 재미다. 뱀장어는 낮에는 깊숙한 곳에 숨어서 쉬다가 야밤에 나와 활동하는 야행성 물고기다. 그래서 뱀장어 잡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뒷네 숲에 지천으로 늘어선 진피나무 껍질을 볶아서 가루를 만들고, 그것을 삼베 보자기에 넣고 물속으로 들어가서 숨만 쉬고 있는 뱀장어 코앞에서 진피가루 물을 먹인다. 피할 수 없이 한두 모금 마시면, 백발백중 복통을 못 이겨 뛰쳐나온다. 아리고 쓰린 진피 성분에 일시적 마취현상을 보이는 것이다.

뱀장어가 물위로 떠서 비실거릴 때 낚시나 삼베보자기로 싸서 건져내야 한다. 성류굴과 내통하고 있는 성류소에는 특히 뱀장어가 많았다. 소가 깊고 넓어서 중소 좋은(1m가 넘는) 뱀장어가 많이 잡혔다.

앞산에 소떼를 풀어놓고 여가시간에 성류소에 들어가 뱀장어를 잡고 그날의 등수별로 줄을 서고 풀피리 꺾어 만들어 불면서 개선하던 모습을 떠올리면 지금도 입가에 미소가 피어난다. 은어도 없고 뱀장어도 없는 오늘의 왕피천을 바라보며 치수의 방향을 근대화식 개발이 아닌 원시적 개발로 바꾸어 보면 어떨까 하고 제안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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