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문 논설위원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 시절, 뉴욕의 지식엘리트였든 헬렌 니어링과 스코트 니어링 부부는 불황과 실업의 늪에 빠져 파시즘의 먹이가 되어버린 사회를 떠나고자 했다. 그들은 일찍부터 서구문명이 그 누구에게도 안전한 삶을 보장해주지 못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그래서 오랜 뉴욕 생활을 청산하고 버몬트주의 깊은 산골로 들어갔다.

평화주의,자연주의,채식주의,영성주의자였던 그들이 추구한 가치는 번잡한 일상과 돈과 물질의 노예가 되다시피 한 도시적인 삶에서 벗어나 시골로 가서 단순한 생활을 하는 것, 그래서 긴장과 불안에서 벗어나, 무엇이든지 쓸모 있는 일을 할 기회를 갖는 것, 그리고 조화롭게 살아가는 것이었다.

니어링 부부는 조화로운 삶을 살기위해 다음과 같은 원칙을 세운다. 즉 먹고 사는데 필요한 것들은 적어도 자급자족한다.
스스로 땀 흘려 집을 손수 짓고, 땅을 일구어 곡식을 가꾸고 양식을 장만한다. 이윤만 추구하는 경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돈을 모으지 않는다. 한해에 먹고 살기에 충분한 노동을 하고 양식을 모았다면 돈 버는 일을 하지 않는다. 농사일은 이웃과 힘을 합쳐 해낸다. 집짐승을 기르지 않으며, 고기를 먹지 않는다. 것들이었다. 니어링 부부는 이 원칙대로 삶을 살았다.

꽤 오래전에 읽은 ‘조화로운 삶’ (Living the Good Life)은 니어링 부부가 버몬트 산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산 스무 해의 기록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도시를 떠나 시골이 아닌 깊은 산골로 온 도시인의 귀농보고서나 다름없다. 그러나 단순한 농사기록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과 삶에 대한 깊은 영성과 철학을 이야기하고 있다.

인간의 영혼을 갉아먹는 물질문명과 차별과 가난, 착취, 극심한 이윤추구가 최대 삶의 목표나 다름없는 자본주의 체제는 21세기 지속 가능한 문명적 대안과 보편적 조화로운 삶의 본보기가 될 수 없음을 이 책은 말하고 있다.

한마디로 니어링 부부가 말하는 ‘조화로운 삶’은 단순하고 소박한 삶으로 자연의 원리를 거스르지 않는 영적인 삶이었다. 왜 채식과 유기농사를 고집하여, 건강한 먹을거리를 어떻게 생산했는가, 살림집은 그들 손수 어떻게 지었으며, 그리고 자급자족 경제생활과 여가시간 이용법, 이웃들과의 관계, 버몬트에서 이룬 것과 이루지 못한 것에 등에 대해 꼼꼼하게 기록해두었다. 어떤 이가 그들에게 동료들은 도시의 빈민가에서 그러한 혜택을 빼앗긴 채 살아가고 있는데, 당신들만 이렇게 외진 산골로 도망쳐와 그것을 누리려고 하는가? 이 물음에 대해 니어링부부는 일리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사람은 어떤 처지에 놓이더라도 바람직하게 삶을 살아야할 책임이 있고, 인생은 전적으로 자신의 선택임으로 나쁜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선택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어쨌든 수도승과도 같은 아주 검소하고 절제된 생활 속에서 그들의 영혼은 자유를 구가했다. 참으로 놀라운 삶이었다.

그들의 삶은 요즈음 유식한 말로 참살이(Wellbeeng)와 참죽음((Wellding)의 삶이었다고 후세 사람들은 평하고 있다. ‘자연주의자의 충고’라는 시에는 그 삶의 철학이 일부 담겨 있기도 하다. 이 충고는 우리 같은 범인에게 인생을 돌아보게 할 만한 경구인데 다음과 같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당신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라./마음의 평정을 잃지 말라./당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으라./집, 식사, 옷차림을 간소하게 하고 번잡스러움을 피하라./날마다 자연과 만나고 발밑에 땅을 느껴라./농사일이나 산책, 힘든 일을 하면서 몸을 움직여라./근심 걱정을 떨치고 그날그날을 살라./날마다 다른 사람과 무엇인가 나누라./혼자인 경우는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무엇인가 주고/어떤 식으로든 누군가를 도우라./삶과 세계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라./할 수 있는 한 생활에서 웃음을 찾으라./모든 것 속에 들어 있는 하나의 생명을 관찰하라./그리고 세상의 모든 것에 애정을 가지라.

미국의 1930년대와 2000년대의 한국 상황은 다르지만, 나는 최근에 서면 쌍전리 박찬득·배동분 부부가 쓴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읽었다.

책의 내용을 귀(歸:뒤돌아보지 않는 인생이 있을까?) 거(去:쉬어가도 멈추지는 말라) 래(來 우리 앞의 모든 것에 가슴이 뛰다) 사(辭: 산골에서 부르는 노랫자락)의 4부분으로 구성해놓았는데, 10여 년 전에 쌍전리에 귀농해 지금까지의 산골생활을 서정적 필치로 세세하게 그리고 있다.

지금도 아직 초보농사꾼이라 자청하는 박찬득씨는 유명회사 자동차의 지점장을, 산골 아낙이 된 배동분은 한국생산성본부 선임연구원이기도 했다. 이들 뿐만 아니라 쌍전리에는 귀농한 분들이 몇 있다. 이들은 귀농 전, 서울에서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번듯하고 안정적인 직장에 다녔던 사람들이었다.

10여 년 전, 나는 처음 그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과연 얼마동안 이 산골에서 버틸까가 의문이었다. 촌놈 출신인 나도 이 산골짜기에 들어와 살라면 큰 용기가 있어야 할 것인데, 그러나 요즈음 가끔 그들을 만나보면, 이젠 초보 농사꾼이 아니라 전문 농사꾼이 다 되어 있었다. 애시당초 무연고였던 이들은 이제 이곳 토박이가 다 된 듯 모두 다 행복 충만의 얼굴들이다.

이 책 서문에는 귀농주동자였던 박찬득이 아내인 선우 엄마에게 쓴 편지에 귀농 까닭이랄까 인간적 소망의 일단이 나온다. 첫째 남을 밟고 내가 올라가야하는 사회와 짜놓은 틀 안에서 벗어나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는 삶을 살고 싶다는 것, 둘째 남은 삶을 남자로 태어나서 하고 싶은 일을 하다 죽는 것, 셋째 아이들만큼은 학원 숲이 아닌 자연에서 흙과 함께 자라게 하고 싶다는 것이다.

『도시의 찌든 사회에서 잔머리 굴리다가 흘리는 땀 냄새와는 질과 향이 다르다.(중략) 내몸에서 나는 땀 냄새를 맡을 때, 내 삶의 실체를 바로 볼 수 있고, 지금 내가 서 있는 위치를 네비게이션보다 더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귀농하지 않았다면 체험하고 깨닫지 못했을 일들이 한둘일까마는, 그 중 하나가 바로 이 땀 냄새다.』‘행복한 땀 냄새’라는 글에 이들 부부가 도시에서는 느끼지 못한 노동의 행복감이 오롯이 나타나 있다. 이뿐 아니다. 60여 편의 산문마다 산골이 아니면 감히 생각도 못할 삶의 일화가 재미나게 펼쳐지고 있다. 꼬마였던 선우와 주현이는 이미 사춘기를 넘기고, 꿈 많고 속이 꽉 찬 ‘산골 소년소녀’가 되었다.

‘감격의 크리스마스’ ‘엄마한테 실망했어’ ‘다슬기국 한 그릇의 행복’ ‘자연과 함께 크는 아이들’ 등의 글에는 마치 재질 단단한 울진의 금강송처럼, 울진의 자연을 닮아 품성이 넉넉한 아이들로 성장해 있음을 알 수 있다. 학원의 숲이 아닌 자연의 숲에서 자란 덕분에 장차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던 앞날이 밝고 행복하리라.

중국 남조시대, 도연명(陶淵明)의 시 ‘귀거래사歸去來辭’에 나오는 ‘자연에 순응하여 자연으로 돌아가니 이를 즐거워한다면 무엇이 또 아쉽겠는가?’라는 구절은 자연과 벗하여 사는 소탈함을 읊은 것으로 유명하다.

어찌 도연명과 니어링 부부만 자연주의자이겠는가? 박찬득, 배동분! 부부도 그와 같음에, ‘조화로운 삶’을 살고자 애쓰는 산골에서 부르는 행복한 노래, 현대판 ‘귀거래사’는 나에게는 또 다른 자연주의자가 주는 충고 같기도 하다. 새삼 하늘마음 농장 들머리에 켜놓은 외등이 그들의 행복한 삶의 이정표 이런가! 이 가을에 더욱 빛나고 아름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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