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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순열의 살아온 이야기 ④
울진군은 실지(失地)를 회복해야…
2010년 11월 23일 (화) 08:42:37 [조회수 : 3101] 편집부 webmaster@uljinnews.com


 

   
 
 
 

195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 울진은 적막강산이었다. 그 시절 군대영장을 받기 전에 기차를 구경하거나 타본 사람은 별반 흔치 않다.

흔치않은 사람 중에 나도 하나 끼었으니 행운아 중의 행운아가 아니겠는가?

가정형편상 중학교 유학은 좌절되었지만, 고등학교 때는 가사불고(家事不顧)하기로 작심했던 것이 적중했던 덕분이다.

당연히 경기고등학교로 가고 싶었지만, 한발 물러서서 보성고등학교로 진학하였다. 그 과정은 이러했다.

중학교 진학 때는 지금의 대학수능시험과 같은 국가고시가 있어 내가 얻은 점수면, 서울의 경기중학교에 합격하고도 10점 이상 남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고등학교 진학 때는 국가고시제도가 없어졌다. 시골 우등생이지만 서울 가면 어느 수준일까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나는 마침 서울에서 피난 와 울진중학교를 함께 다닌 서울 토박이 친구가 있어 둘이서 의논했다. 1차는 떨어질 각오로 제일 좋은 학교로 가고 떨어지면 눈높이를 낮추자고 합의 하였다.

그 친구가 겨울방학에 서울 집에 다녀오더니 경기. 서울고 보다도 보성고가 더 날리더라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나는 보성고 원서를 다른 경로를 통해 하나 더 받았다. 나의 유일무이한 서울 연고자였던 사촌매형께서 우편으로 보내준 것이다.

서울친구가 보성을 택한 연유는 객관성이 있었다. 당시에는 연세대학교가 무시험전형으로 신입생을 뽑았는데, 보성이 경기. 서울고를 제치고 “특A”로 평가 받더라는 것이다.

한편 매형께서는 처남의 서울진학 문제를 놓고 육군본부의 많은 친구들과 의논해 보았다 한다. 공립이자 귀족명문학교인 경기. 서울고보다는 수더분한 사립고가 위화감을 덜 느낄 것 같아서 보성고로 결론 내렸다고 한다. 자상한 배려에 감사를 드린다.

이러저러한 연유를 거쳐서 나는 1955년 서울 보성고로 진학하게 된다. 그러나 지금도 마음 한구석에는 경기중학교로의 진학포기가 한없이 마음에 걸린다. 생각하면 할수록 가슴이 아리고 저린다.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그렇게 되었다고 하지만 그것은 핑계이고, 나의 우유부단한 성격적 결함이 더 큰 이유일 것이다.

그때 용단을 내려 3년 앞당겨 상경했더라면 지고지선을 향한 도전은 더욱 왕성했을 것이고, 차선에 안주하는 나약함은 없었을 것이 아닌가! 이때부터 펼쳐지는 고난과 영광의 서울생활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고 울진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

우리 울진은 예나 지금이나 변방지역이다. 강원도의 최남단이요. 경상북도의 동북끝이다. 신라와 고구려를 넘나드는 변방지역이기도 했다. 언제나 한양은 천리길이요. 사방 3백리안에 도시가 없다.

기차도 고속도로도 없는 유일한 오지이다. 아직도 고속도로도 아닌 일반국도인데도 2차선이냐 4차선이냐를 놓고 갑론을박을 하고 있으니 한심하기 그지 없다. 그것도 변두리 길이 아니고 출세의 길이요. 황금의 길이라 할 수 있는 중요 노선을 놓고 허송세월만 하고 있으니 더욱 안타깝다.

누구를 탓하기 이전에 나 자신의 무력함에 고개를 들 수 없다. 이 일을 어찌할꼬? 파고 들수록 문제가 더 심각하다. 개발이 뒤진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왔다갔다 밀리면서 빼앗긴 옛 영지를 다시 찾아야 할 터인데, 문제의식조차 없으니 난감한 일이 아닌가?

서쪽으로 봉화군 소천면 일원, 북쪽으로 삼척군 임원재 이남지역, 그리고 동쪽으로 바다 멀리 울릉도와 독도지역이 우리 울진의 옛 영토이다.

더더욱 안타까운 일은 1960년대 초 울진이 강원도에서 경상북도로 편입된 이후에도 서면 승부역 주변을 1983년 경 봉화군에 넘겨주고, 온정면 구주령 넘어 영심리 지역을 영양군에 넘겨준 일이다.

꼭 타의에 의해서가 아닌 줄로 알고 있다. 관치행정시대에 일어난 행정의 실수로 보이지만 이제는 민치 자치시대가 왔으니, 실지 회복에 최우선 중점을 두어야 하지 않겠는가?

교통이 불편하여 접근하기 힘들다는 행정편의주의적인 근시적 안목에서 넘겨준 땅들이 지금은 생태`자연관광의 보고로 부상하고 있다. 만일 승부역 일대가 현재의 울진영지에 속한다면 승부역이야말로 유일무이한 울진의 기차역으로서 명소로 지정되었을 것이다.

소광리와 버금가는 금강송 군락지가 있는 승부는 울진군 서면 전곡리가 아니였던가! 겨울철 눈꽃기차 여행의 최고 적지이다. 태백이 눈꽃축제도 하지만 고산 잡목지역이라면, 승부역 일대는 금강송지역이라 또 다른 운치가 있다.

울진의 생태`자연`문화관광 계획을 세울 때는 소광리 금강송군락지의 “세계자연유산”으로의 지정문제와 연계하고, 십이령 옛길 복원사업과도 연결시켜야 하며, 현재는 봉화 땅이지만 승부와 연계된 그림을 그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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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 진짱구 2010-12-22 08:05:38

    그렇군요
    선생님의 글을통해 옛울진의 잃어버린 터전들...
    다시찾을길이 있을지...
    멋진 설계 감동입니다신고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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