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고창신 (法古創新)
범상 칼럼 / 초가삼간의 행복... 71회
시골도 예전과 다르겠지만, 수도권도시들을 가면 정체성에 혼란이 올 만큼, 각양각색의 외국인들을 만난다. 특정 골목에는 완전히 외국인들로 자리 잡혔다. 우리나라에서 외국인들이 가장 많다는 경기도 안산 원곡동의 경우, 이미 10여 년 전에도 외국인을 고용하지 않는 가게는 영업이 어렵다고 했으니, 지금은 오죽하랴.
그들은 누가 말하지 않아도 한국내 외국인이라는 동질성으로 자연스럽게 뭉쳤고, 일자리를 하나라도 더 만들어내겠다는 생존방식에 합의 없는 동의를 이루었다는 것이다. 이때까지 겪어보지 못했던 다문화사회가 만들어낸 현상이다. 이 같은 동질감은 외국에서는 출신국가 또는 대륙별로 유럽출신 아시아출신 등 아주 작은 공통점 하나로도 서로 뭉치고, 국내에서는 전국각지에서 고향이 같다는 이유로 향우회를 만들고, 지역을 연고로 하는 프로야구 팬들이 생겨나며, 같은 동네에 살면서도 목적에 따른 친목단체들을 양산한다.
외계인이 쳐들어오면 지구인 전체가 하나 되어 방어를 한다는 말처럼 이 같은 동질성은 가족, 마을, 도시, 국가 등 필요기준에 따라 언제든지 변화된다. 한국인들의 족보는 중국, 베트남, 일본 등에 본관을 두고 있는 성씨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정서적으로는 ‘단일민족’이라는 문화 안에서 국가와 민족은 같다는 동질성을 가진다.
이에 반해 다민족 국가의 국민들은 국가와 민족은 확연히 다르다는 인식을 가진다. 기준이야 어떻든 간에 정서적 동질성은 사회통합이라는 순기능과 함께 선거나 집단생활에서는 극심한 학연, 지연, 혈연 등의 역기능으로 나타난다.
문화의 동질성이 만들어내는 양면성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인간사회라면 어느 곳을 막론하고 나타나는 당연한 현상이다. 그래서 사회적 문제를 이야기 할 때 ‘한국사람’ 또는 ‘우리나라 사람은’ 안 돼 와 같은 견해는 매우 편협한 자학적 생각이다. 만약 우리나라 사람만 그렇다면 각국에서 일어나는 온갖 사회적 문제는 어떻게 설명할 것이며, 국경 넘어 다른 문화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 생길 테니 말이다.
저출생을 겪고 있는 우리사회는 급격한 속도로 다문화사회로 이전되고 있다. 그래서 하루속히 다문화의 특수성을 인정하고 그 특수성들이 하나로 통합하는 보편성, 즉 동질성을 만들어가야 한다. 왜냐하면 문화의 배타성은 사회통합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는 그동안 우리문화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여 옛것을 바르게 익혀 새로움을 만들어 가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기회를 거의 상실해버렸다는 것이다.
가장 큰 원인은 서구열강이 주도한 제국주의와 일제강점의 배후에는 영국에서 일어나 산업혁명이라는 현대문명의 시작이 있었으며, 우리는 그 출발이 일본과 미국에 의해서 강제되었고 매우 늦었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소위 말하는 서구유학파들이 대한민국의 주류를 형성하면서, 우리문화의 기준마저 서구에 두는 현상이 고착화 되어버린 것이다. 여기에 또 다른 이유는 미국의 청바지와 할리우드 영화가 세계를 주름잡았듯이 국력이 문화를 주도하는 시대적 배경이 한몫을 보탰다. 이러한 문제는 서구열강으로부터 식민을 당했던 나라들이 겪는 아픔이다.
하지만 SNS라 불리는 소통방식은 개인은 물론 국가와 국력이라는 장벽을 허물었고, 개인마다 하나씩 가지고 있는 똑똑한 전화기 스마트폰은 한류열풍에 기여하고 있다. 이러한 문화교류방식의 소통에서 우리문화는 경쟁우위를 점령했고 세계인들은 한글, 한식, 드라마, K-팝 등에 열광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과거 길들여진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영어를 사용해야만 세계화에 뒤쳐지지 않는다는 엉뚱한 생각에 사로잡혀 문화의 바탕인 말과 글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여기에 필자는 엉뚱한 제안을 해본다. 우리 울진군이 우리문화의 바탕인 말과 글을 지키고 발전시킨다는 의미에서 관공서 서류에서부터 거리의 간판 각종 용어 등 전반에 걸쳐 우리글과 말을 사용하는 군(郡)으로 거듭 나봄이 어떨까 말이다. 지리적으로 세계적인 도시 역시 지구촌의 한 동네에 불과하다. 다만 그 지방 사람들의 생각이 세계적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우리 울진군이 지금부터 AI시대에 가장 잘 어울린다는 우리글과 말을 가꾼다면 머지않은 장래에 다문화의 동질성을 제공하는 세계적 도시가 될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