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 사람을 가졌는가!

배동분의 인생노을 1편

2025-12-24     울진신문

누구든 삶을 직조해갈 때, 무수히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어떤 관계는 떠올리기만 해도 정나미가 떨어지고 멀미가 나는 경우가 있다. 그 정도면 애교다. 내 삶을 뿌리째 뽐아 버리는 고통을 주어 불구대천의 원수와 같은 관계도 쌨다.

그런가 하면 어떤 관계는 생각만 해도 정수리가 뻐근해지고 가슴이 따뜻해진다.

그래서일까.

“인생길에서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는 말을 우리는 귀에 피가 나도록 들었다. 젊은 혈기 때는 “좋은 얘기지”라고 퉁쳤지만 60이 훌쩍 넘고 나니 이 말이 얼마나 중차대한 얘긴지 뼈 속 깊이 스며든다.

후자와 같은 관계로 치자면 반 고흐와 동생 테오를 빼놓을 수 없다. 그림에 까막눈이든 아니든 고흐는 세계가 인정하고 사랑하는 화가로 우뚝 선 사람이다. 지금이야 “영혼의 작가”, “태양의 화가”, “불운의 천재”라 불리며 세계인들이 환장하는 화가지만 당시는 네덜란드의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뒤늦은 나이게 그림을 시작한 고독하고, 가난하고, 누구에게도 인정 받지 못한 지지리도 불행했던 화가였다.

지금이야 최근 경매에서 고흐의 그림이 1,500억원 정도 된다고 들었지만 그가 살아 생전에는 달랑 한 점 정도의 그림만 겨우 팔렸다. 그 정도니 그의 재능을 알아보는 사람도 없어 평생 지독한 가난에 시달린다.

그런 그를 이토록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화가로 변신시키는 데 공헌한 사람은 동생 테오였다. 테오 단 한 사람만이 고흐의 능력을 인정해 주고 바닥을 치는 자존감을 일으켜 세워주었다. 테오 자신도 넉넉지 않은 살림에 월급의 대부분을 형 고흐의 생활비와 물감값, 캔버스값으로 보내주는 것은 물론 죽처럼 풀어진 용기를 일으켜 세워준 사람도 테오였다.

고흐가 테오에게 쓴 668통의 편지에 이와 같은 감동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고흐의 그림과 함께 세계인의 놀라움을 주고 있다. 편지에는 테오에 대한 고마움, 미안함, 채무감, 죄책감이 아프게 새겨져 있다.

고흐는 “언젠가 내 그림이 팔릴 날이 오리라는 건 확실하지만 그때까지 너에게 기대서 아무런 수입도 없이 돈을 쓰기만 하겠지. 가끔씩 그런 생각을 하면 우울해진다.”
“나를 먹여 살리느라 너는 늘 가난하게 지냈지. 네가 보내준 돈을 꼭 갚겠다. 안되면 내 영혼을 주겠다.” 고 적었다.

그런 고흐에게 테오는 이런 편지를 전한다.

“형은 내게 빚진 돈 얘기를 하면서 내게 갚고 싶다고 말하는데 그런 얘기는 듣고 싶지 않아. 내가 형에게 원하는 것은 형이 아무런 근심 없이 지내는 거야.”
”우리 희망을 갖기로 해. 형의 불행은 분명 끝날 거야.“

모두가 고흐를 자신의 귀를 자른 정신병자고 미치광이라며 무시하고 욕할 때, 테오만큼은 고흐가 죽을 때까지 희망과 용기를 주고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자신의 아들 이름을 형의 이름을 따서 지을만큼 말이다.

그러나 고흐는 “이 모든 것이 끝났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기고 37세의 젊은 나이에 권총으로 스스로의 삶을 거두어 들인다.

고흐가 죽은 지 6개월 만에 형의 죽음에 대한 슬픔으로 건강이 악화되어 테오도 33세의 젊은 나이게 숨을 거둔다. 테오가 없었다면 천재 화가 고흐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뭉클한 관계로 치자면 젊은 나이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세계적인 작가 알베르 카뮈와 시인 르네 샤르와의 관계 또한 유명하다.

카뮈는 르네 샤르에게 “당신을 알기 전에는 시 없이도 잘 지냈습니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길 정도로 르네 샤르의 시 세계에 매료되고 위안을 받았지만 그들의 관계는 작품세계에만 국한 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인생 전반에 대한 모든 것을 지원해주는 그런 관계였다. 7살 차이가 나는 관계였지만 카뮈가 교통사고로 사망할 때까지 13년 동안 184통의 편지를 남길 만큼 삶 전체에 서로 영향을 끼치고 인생을 함께 헤쳐나가며 서로 위안을 주는 관계였다.

하다못해 카뮈가 르네 샤르에게 집을 알아봐 달라고 부탁하면 르네 샤르는 카뮈가 어떤 취향의 집을 좋아하는지 꿰뚫고 있었으므로 즉시 다 알아봐주고 해결해 줄 정도였으니 말이다. 서로의 가족들도 다 챙기고 힘든 일이 생기면 서로 상의하고 위로하는 버팀목과 같은 존재가 되어 주었음은 편지에도 절절하게 새겨져 있다.

누구나 삶은 흔들다리를 건너는 것만큼 불안정하고, 위태롭고, 두렵다.

어딘가에 고통이 매복하고 있다가 갑자기 나타나 내 삶을 뒤흔들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불안정한 삶, 치열하고 경쟁적인 삶을 살아갈 때 곁에 이런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등이 따뜻하고 삶이 빛날까를 생각해 본다.

한석헌 선생님은 <그 사람을 가졌는가>라는 시에서

“만리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 맡기며/ 맘 놓고 갈만한 사람/ 그 사람을 가졌는가

온 세상이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말이야’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라고 묻는다.

한 해 끝이다.

내 옆에 그런 사람이 있었으면 하는 바램을 갖기 전에 난 누군가의 그런 따뜻한 인생의 동반자가 되어 주고 있는지 자신에게 묻고 또 묻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