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고마운 사람들

월송정에 올라 .... 34회 이종규 평해연세의원장

2026-01-12     울진신문

 

이종규 평해연세의원 원장

해마다 연말이면 반성의 시간을 갖는다. 한 해 동안의 좋고 나쁜 일들을 반추하면서 새해의 마음가짐을 다짐 하는 성찰의 시간이다. 올해엔 특이했던 일들이 기억 속에 많이 남아 있다.

유별나게 고마웠던 일들이 많아서 주변의 모든 분에게 더 겸손하지 못하고 더 배려하지 못해서 부끄럽기만 하다. 가까이는 식구들에게 좀 더 아량을 베풀지 못했던 일들이 못내 미안하기만 하다. 식구들이야말로 정말 고마운 사람들인데도 평소에는 오히려 당연하다는 감정이 앞선다.

그러니 쓸데없는 고집이 비일비재하기 마련이다. 이미 일흔다섯 해를 그렇게 살아왔다. 식구들이야말로 진정으로 고마운 사람들이다. 진료실 직원들을 비롯한 많은 환자분의 곱고 자상한 마음씨에 고개가 수그러진다. 그분들의 소박하고 진솔한 태도에 정말로 감사한다.

그렇게도 많은 오진을 하고 실수했는데도 한결같이 따듯한 웃음으로 일관해 주셨다. 그분들의 정감 있는 웃음과 다정다감한 마음씨가 없었다면 몇 년을 버티지 못하고 다른 지방으로 이전했을 게 뻔하다.

퇴근길에 불편한 걸음을 무릅쓰고, 500원짜리 동전 한 개를 손에 쥐여 주시며 껌이라도 사 먹으라고 하시던 할머니. 이미 고인이 되셨지만, 아드님께 꼭 병원 외상값을 갚으라고 마지막 말씀을 남기신 할머니. 뇌리에서 사라진 진료비 미수금을 일 년이 지나서 갚으시면서 못내 미안해하시던 어느 아주머니도 정말 고맙지 않은가?

인구는 줄어들고 노령화되고 있는 시골 지역의 작은 교회에서, 오로지 식구들만으로 구성된 작은 교회의 목회 활동이 또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진료실 주변의 몇몇 주간 보호센터에서 입소자분들과 잠깐의 여흥시간을 갖는 날은 소박하고 훈훈한 웃음과 그윽한 분위기가 사라지지 않는다.

여전히 흥을 돋우고 분위기에 취하려는 그분들의 정성에 또 감격하고 고마울 수밖에 없다. 휴가 삼아 해외 의료봉사를 가면, 이미 낯익은 알굴과 다시 마주하게 된다. 슈퍼마켓의 낯익은 주인 아낙네가 손을 흔들며, “Hey Dr. Lee! Welcome!”이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지 모습이 또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동행한 모두가 진심으로 몸을 아끼지 않고 최선을 다해 환자를 돌보고, 정성껏 준비해서 한식 뷔페를 장만했다. 모두 한복으로 갈아입고 두 나라의 문화를 교류하는 데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정말로 고맙다.

대학생들과 그 힘든 백두산을 등정하면서도 아무도 불평하지 않고, 서로 협력하면서 중국 공안의 눈을 피해 애국가를 열창했던 그들이 정말로 자랑스럽고 고맙다. 그때의 일들이 생각난다며 시골의 작은 진료실을 찾아주던 그들은 이미 어엿한 사회의 구성원이 되었다. 부탄에서의 험한 산행을 함께 한 봉사대원들도 고맙기만 하다.

한 해의 진료를 마감하려는 찰나에 어느 할머니가 묵직한 보따리를 들고 들어오셨다. 익히 잘 알고 지내는 할머니다. “원장! 내가 지난 1년 동안 모은 동전인데 원장이 부디 좋은 일에 쓰시게!” 도무지 말문이 막혀서 어리둥절한 사이에 할머니는 자리를 박차고 나가셨다.

우리 직원들은 모두 할 말을 잃었다. 뜻밖의 행동에 물벼락을 맞은 느낌이다. 묵직한 돼지 저금통의 웃는 모습이 종일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정말로 참 고마운 사람들이다. 이분들과 더불어 보낸 지난 한 해야말로 진정한 행복이다. 2025.12.31. zl3jk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