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대천의 고독한 귀공자, '흰비오리'
올 겨울 수컷 한 마리만 찾아 와 눈시리도록 새하얀 깃털, 애달퍼 내년에는 짝과 함께 와 주기를
차가운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계절, 울진남대천은 먼 길을 날아온 겨울 철새들의 쉼터가 되어준다. 흐르는 물결 위로 청둥오리 떼가 분주하게 먹이 활동을 하는 평화로운 풍경 속에서, 유독 눈길을 사로잡는 녀석 하나가 있다.
마치 하얀 도포를 차려입은 선비처럼, 혹은 가면무도회에 나선 귀족처럼 고고한 자태를 뽐내는 새. 바로 겨울의 진객(珍客), ‘흰비오리’다.
눈 주위의 검은 반점 때문에 일명 ‘판다 오리’라고도 불리는 흰비오리 수컷은 그 모습이 무척이나 앙증맞으면서도 기품이 넘친다. 보통의 오리들이 넙적한 부리를 가진 것과 달리, 톱니 모양의 날렵한 부리를 가진 이 녀석은 물속을 자유자재로 누비는 잠수의 명수이기도 하다.
지난해 이맘때만 해도 남대천에는 흰비오리 두 쌍이 찾아와 다정하게 물살을 갈랐었다. 암컷과 수컷이 짝을 지어 다니던 그 정겨운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올해는 웬일인지 수컷 한 마리만이 덩그러니 찾아왔다.
짝을 잃은 것일까, 아니면 긴 이동 중에 잠시 길을 엇갈린 것일까. 녀석은 낯선 청둥오리 무리에 섞여 먹이 활동을 하고, 깃을 다듬으며 휴식을 취한다. 군중 속의 고독처럼, 왁자지껄한 청둥오리들 틈에서 홀로 빛나는 그 새하얀 깃털이 더욱 시리도록 아름답고 또 애처롭다.
비록 동족의 짝은 곁에 없지만, 남대천의 넉넉한 품과 텃새들의 텃세 없는 어울림이 녀석의 긴 겨울밤을 외롭지 않게 해주길 바란다.
해마다 잊지 않고 우리 곁을 찾아주는 이 작은 생명들이 있기에 울진의 겨울은 삭막하지 않다. 부디 이 고독한 귀공자가 남대천에서 배불리 먹고 편안히 쉬다가, 다가올 봄에는 건강한 날개짓으로 다시 북녘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그리고 내년에는 꼭 사랑하는 짝과 함께 다시 찾아와 주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드림돌봄 황윤길 대표이사 글과 사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