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누에 그리고 단서 이야기

임명룡 서울지사장 (임명룡 칼럼 )

2026-02-06     울진신문

올해 세밑 추위는 유난히 매섭다. 서울의 기온은 벌써 닷새째 영하 10도를 밑돌고 있다. 그럼에도 병오년 새해를 맞이하는 느낌은 평소와 조금은 다른 것 같다. 말띠해는 왠지 좋은 일들이 많을 것 같은 기대감 때문이다. 또한 []’은 오랜 세월 인류와 함께 해온 동물이다. 그런 까닭에 말과 관련된 전설이나 설화가 매우 많다. 오늘 소개할 이야기도 그 가운데 하나로 누에와 말에 얽힌 전설이다.

한편으로 말은 자존심이 강한 동물이다. 주역(周易) 곤괘(坤卦)에 굳센 자존감의 상징으로 암말의 지조(牝馬之貞)’라는 표현이 있다. 또 우리 속담에 말도 사촌까지는 상피(相避)한다.”는 것이 있는데, 말은 자존심이 강하고 예민하여 사촌까지는 교미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말도 그러한데 하물며 사람이 친족을 모르고 난잡해선 안 된다는 교훈이 들어있다. 자존감이 강한 말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한다.

옛날, 중국의 어떤 사람이 말을 타고 전쟁을 치르던 중 말에서 떨어져 적군에게 포로로 사로잡히고 말았다. 타던 말만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집에는 그 사람의 아내와 예쁜 딸이 하나 있었는데 살결이 백옥 같고 특히 눈이 예뻤다고 한다.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아내는 동네방네를 뛰어다니며 큰 소리로 호소 했다.

누가 저희 남편을 좀 구해 줄 수 없나요? 저희 남편을 찾아오는 이에게는 저희 딸을 시집보내겠습니다.”

그러자 마구간에 누워있던 말이 벌떡 일어나더니 밖으로 뛰쳐나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주인을 찾아내어 등에 태워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 뒤부터는 말이 아무것도 먹지 않고 트집을 부리고 일어나지 않았다. 남편이 화가 나서 왜 그런지 아내에게 물으니, 부인은 자신이 남편을 찾기 위해 딸을 시집보내기로 맹세한 사실을 말했다. 아내의 말을 듣고 주인은 화가 났다.

가축 주제에 감히 주인의 처녀를 욕심내다니 용서할 수 없다!”

주인은 활로 말을 쏘아 죽여 버리고 말았다. 그러고는 말의 가죽을 벗겨 빨랫줄에 펼쳐 널어놓았다. 며칠이 지나 우연히 주인의 딸이 그 옆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갑자기 말가죽이 빨랫줄에서 흘러내리더니, 처녀를 둘둘 말아서 마당 끝에 선 뽕나무 위로 기어 올라가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한참을 꿈틀대더니 움직이지 않아 사람들은 처녀가 죽은 줄로 알고 있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다시 꿈틀대더니 누에로 변해있었다고 한다. 요즘 여중생들에게 발목까지 내려오는 롱패딩이 유행인데, 모양새가 마치 누에 같아서 저 이야기를 떠올리며 웃게 된다.

고전에서 앞서 이야기는 사건의 단서(端緖)’를 설명할 때 인용되었다.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을 때 먼저 고치를 삶아야 한다. 누에고치를 뜨거운 물에 담그면 고치가 불면서 둘둘 말린 실 말이 덩어리가 된다. 실말이에서 비단실의 실마리를 찾아내는 작업을 한자로 색서(索緖)라고 하는데, 찾을 색() 실마리 서()로 이때 실마리는 실의 꼭지다. 실타래에서 꼭지를 잘 찾아서 잡아당기면 타래 뭉침이 술술 잘 풀어진다. 하지만 자칫 실수로 뒷부분을 잡아당기면 순식간에 타래가 엉켜서 영영 실마리는 못 찾는다. 겨우 실마리를 찾더라도 이미 꼬여버린 실타래는 원래처럼 술술 풀리지 않는다. 결국 얽힌 부분을 통째로 잘라내야 한다.

앞서 소개한 이야기도 단서 찾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처녀를 누에로 변하게 만든 잘못은 누구에게 있느냐고 묻는다. 말을 죽인 주인 탓 같기에도 하고, 동물 주제에 처녀를 욕심낸 말의 잘못인 것도 같다. 애초에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한 아내에게 책임이 있을 수도 있다. 지금 한국 우파는 수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무엇부터 잘못되었는지 얽히고설킨 사연을 보자니 단서 찾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