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부고속도로와 벌새효과
임명룡 칼럼
1968년 9월 11일, 경부고속도로 대구·부산 구간 착공식이 경남 양산군 현장에서 진행되었다.
전체 4구간 중 3차 착공이었지만, 여전히 고속도로 건설에 대한 야당의 반대는 심각했고, 그에 따른 반대 여론도 만만찮은 상태였다.
이날 기념 연설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고속도로와 같은 혁신적인 인프라가 상상을 초월하는 연쇄적인 파급효과를 불러올 것이라 주장하며, ‘옛날 일본의 어느 스님’이 쓴 <방장기>라는 책에 실린 내용을 소개했다.
“바람이 많이 불면 쌀 뒤주를 만드는 사람이 수지가 맞는답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 바람은 흙먼지를 일으켜 사람의 눈을 상하게 하니 맹인의 수가 늘어 납니다. 맹인들은 생계를 위해 샤미센을 연주해야 하므로 샤미센 수요가 증가하게 되고, 또 샤미센은 고양이 가죽으로 만들기 때문에 고양이 도살이 늘어납니다. 이제 고양이 숫자가 줄어드니, 쥐의 수가 증가하게 되고 늘어난 쥐가 곡식에 축을 낼 것이니, 쥐를 막기 위해 뒤주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게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쌀 뒤주 장사가 돈을 벌게 된다 이 말입니다.”
박 대통령이 예상한 대로 경부고속도로는 다양한 분야에서 상상 초월의 경제적 효과를 안겨주었다. 사람들은 박 대통령의 그 연설을 ‘나비효과’에 비유한다. 언뜻 보면, 바람과 쌀 뒤주의 비유는 카오스이론에서 탄생한 ‘나비효과’의 예로 보일 수도 있다.
베이징에서 나비가 날갯짓하면 미국 동부 해안에 허리케인이 불어닥친다는 것이 나비효과다. 하지만 나비효과는 임의적이고 불안정한 속성 때문에 실질적인 인과관계를 찾아낼 수 없다.
결과를 놓고 보면 경부고속도로의 경우는 실질적 인과관계가 뚜렷하다는 점에서 나비효과 보다는 ‘벌새효과’에 가깝다. 백악기 어느 시기 꽃들은 색과 향이 진화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벌 나비 같은 곤충들은 꽃가루를 추출하려고 복잡한 기관을 진화시켰고, 골격이 곤충과 전혀 다른 벌새 같은 조류도 꿀을 빠는 동안 공중에서 정지비행 할 수 있는 기술을 진화시켰다.
향기라는 하나의 혁신이 다양한 생태계의 공진화(共進化)를 불러온 것이다. 경부고속도로도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교통 시간 단축을 위해 시도된 고속도로가 건설 기술을 발전시켰고, ‘My Car 시대’를 불러와 자동차 산업을 발달시켰다. 철강과 화학산업으로 이어져 중화학공업의 발달을 일으켰다. 나아가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첨단기술의 출발점 또한 고속도로라는 혁신에서 시작했다. 박 대통령의 그 연설은 나비효과 또는 벌새효과 같은 개념이 아직 알려지기 전임에도 적절한 비유였음이 증명되었다.
한편으로, 바람과 쌀 뒤주 이야기는 <방장기>에 나오지 않는다. 일본 고전문학의 백미로 손꼽히는 <방장기>는 가모노 초메이(鴨長明)가 1212년에 쓴 작품이다. 샤미센은 그보다 훨씬 후대인 15~16세기경 류큐에서 전래되어 발전한 악기이므로 시대적으로 맞지 않는다. <방장기>는 가난의 기록이다.
자연재해와 가난이 정치적 혼란과 겹쳤을 때, 어떤 파멸적인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보여주는 실제적인 기록으로 지금도 일본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다. 1181년부터 이듬해까지 일본에서는 대기근이 발생한다. 지옥 같은 상황이 <방장기>에 기록되어 있다.
“교토 시내는 허기에 지쳐 갑자기 쓰러져 버리는 사람이 수없이 많았다. 흙담 옆이나 길가에서 굶어 죽는 사람의 수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그 시체를 치울 방법 또한 없었기 때문에, 그 부패하는 냄새가 교토 시내에 가득하였다. 교토 시내가 이런 지경이었으니 변두리 들판에는 온통 시체가 뒹굴고 있어 수레가 지나갈 틈도 없을 정도였다.”,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사람은 상대보다 그 애정이 깊은 쪽이 먼저 죽었다. 그 까닭은 상대에게 먹이느라 자신은 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모와 자식이 함께 살고 있는 경우 틀림없이 부모가 먼저 죽었다. 갓난아이는 엄마가 죽은 줄도 모른 채, 죽은 어미 젓을 빨며 잠들어 있는 일도 있었다.”
어쩌면 당시 박 대통령의 머릿속에는 <방장기>의 가난이 깊이 새겨져 있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