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문명을 거부하고 호롱불 문명을 찬양하는 반핵 또라이들이 어떤 종류의 인간들인지 아래의 글을 <말(빨갱이들의 언론)>에 실은 반문명가 유영초에게서 살펴보라. 불과 전기를 이용한 인간의 위대성은 모두 무시되고, 전기와 원자력을 마치 악의 근원으로 매도하는 반문명 운동에 찌든 반핵 또라이들의 황폐한 자기파괴적 정신구조를 아래 반핵 또라이의 글에서 느껴보시오. 반핵-반문명 또라이들은 자신들이 실컷 잘 사용하는 전기와 원자력을 거부하는 미친 놈들입니다. 돈을 미친 듯이 좋아하는 빨갱이들이 부자를 매도하는 정신질환을 앓는 것과 같은 원리이지요. 반핵-반문명 또라이들은 사람과 사람을 분열시킵니다. 울진을 분열과 파괴로 몰아가는 자들도 바로 반핵-반문명 또라이들입니다. 환경이나 반핵의 이름으로 과학를 이용한 농업을 거부하고 전기를 거부하고 호롱불을 찾아가는 수구 또라이들이 바로 반핵-친환경 또라이들이지요. 세상에 전깃불을 파괴로 보고 호롱불을 찾아가는 미친 놈들이 바로 울진을 분열로 몰아가는 반핵 분열주의자들입니다. 울진에서 현실성없는 반핵하는 또라이들을 보면 알 듯이, 반핵은 문명을 거부하고 사회공동체를 파괴합니다. 반골들의 책인 <말>지에 전기와 원자력을 인류 파괴의 상징으로 몰아간 정신분열적 글을 쓴 유영초처럼, 반핵 또라이들은 인간과 사회를 분열시키는 원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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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초의 문명비판 / 원자력과 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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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메테우스, 그는 회양목 나뭇가지로 하늘에서 불을 훔쳐다 인간들에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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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들은 이 불로 밤을 밝혀 어둠을 걷어내고 추위를 몰아냈다. 그는 또 인간들에게 집을 짓고 농사를 지으며 가축을 기르고, 글을 쓰고 셈을 하며 기후를 알고 항해를 하는 법을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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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메테우스는 모든 것을 '미리 아는 자'였다. 그러나 인간들에게는 앞날을 전혀 보지 못하도록 한 대신 하나의 선물을 주었을 뿐이다. 희망! 그래서 희망은 ?맹목의 희망?(blind hope)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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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들은 이 눈먼 희망으로 문명을 일구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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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부팅하는 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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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의 문명을 부팅하는 에너지는 내 근육이 아니다. 콘크리트 벽체의 콘센트 구멍에서 기어 나오는 220볼트의 전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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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을 깨우는 자는 1.5볼트 알람시계다. 아침을 여는 뉴스도 전기를 통하지 않고서는 접수할 길이 없다. 전기밥솥으로 밥을 짓고, 전기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 전자레인지와 전기코드가 연결된 가스레인지에서 데우고 끓여서 몸을 충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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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전되지 않은 휴대폰은 ‘앙꼬 없는 찐빵’에도 비교할 수 없는 쓸모없는 물건이다. 방전된 배터리에 전기도 끊긴 컴퓨터는 몽당연필 한 자루만도 못하다. 그 흔한 스팸 메일 하나도, 아무리 허접스런 정보도 접할 수 없는 것이다. 컴퓨터가 부팅되지 않는다면 나는 즐겨 찾는 곳이 사라진 불쌍한 존재가 된다. 물론 원고며 논문이며 사진이며 노래들을 담은 하드 디스크는 그저 단순한 금속과 비금속 물질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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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전기가 없이는 내 일상의 삶조차 부팅하기 어렵게 되어 버린 것이다. 끔찍한 일이다. 측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정말 앞으로는 전기 없이 36.5도의 체온조차 유지하기 어려운 존재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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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영국 현대미술의 대표적인 젊은 작가라는 마크 퀸의 피로 만든 두상(頭像), 「Self, 자화상」은 오늘의 나와 닮았다. 작품은, 인간 몸속에 들어 있는 전체 피의 양과 거의 동일한 양이라는, 약 4리터 정도의 작가 자신의 피와 스테인레스로 이루어진 두상, 그리고 이 두상을 집어넣은 투명 유리박스와 냉동장비로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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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상은 전기를 통한 냉동 장비에 의해서만 그 형태를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전기 코드를 빼버리면 짓물러 썩어 내리는 것이다. 우리 일상에서도 전기코드를 빼버리면 냉장고 속의 음식만 썩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길들여진 관성의 단절과 정보부재에 대한 공포로 말미암아 육체와 영혼의 많은 부분이 함께 썩어 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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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더듬이는 어디로 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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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9·11테러’를 겪었던 미국의 뉴욕과 캐나다의 토론토 등 북미의 북동부 지역에서 사상최악의 정전사태가 발생한 적이 있다. 뉴욕은 지하철이 멈춰 수천 명이 암흑 속에 갇히고, 전화와 휴대전화마저 불통되면서 도시 기능은 완전히 마비되었다. 이 정전사태로 모두 5천만 명 이상의 시민들이 공포 속에서 '암흑의 대낮'을 보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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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수도 오타와의 경우 밤늦게까지 전기 공급이 복구되지 않으면서 군중들이 시내 중심부의 상점 유리창을 부수고 난입, 상품을 약탈하는 행위가 잇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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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수십 시간 동안 전기코드가 뽑히자 우리 문명은 이렇게 썩어 내렸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중앙집권적 전기시스템이 지배하는 사회의 불안정성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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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한 말로 안전 불감증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이 불감증을 자각할 수 있는 감각기관이 상실되었다는 것이 더 무서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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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우리 생명의 더듬이는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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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전깃불을 처음 본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일이다. 그때 전기가 전봇대를 타고 두꺼비집(전기 제어기)을 지나 마침내 ?전기다마? 안에서 빛을 발할 때 3촉(3와트), 5촉(5와트)짜리 전구의 불빛은 광명천지요 대낮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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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전기가 들어오기 전에도 칙칙한 호롱불에 책 읽고 글 쓰는 데 불편함은 없었다. 타들어가는 기름이 아까웠을 뿐. 몽당연필로 질 나쁜 공책에 글을 써도 불편함이 없었다. 그저 모자라는 표현이 아쉬웠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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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뒤 차츰차츰 전기는 내 일상과 동거하면서 꼬박꼬박 자취비용의 일부를 털어갔다. 이젠 벽에 꽂힌 전기 콘센트를 중심으로 관물이 정돈되고 내 사생활들이 도열하게 되었다. 전기밥솥, 전기다리미, 전기면도기, 청소기, 세탁기, 오디오, 비디오, 티브이, 디브이디, 컴퓨터 이 모든 생활필수품들이 전기 없이는 빈 깡통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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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기용품들은 그저 단순한 가구들이 아니라 내 근육과 뇌로 해야 할 많은 일들을 가져갔다. 물론 이것이 삶의 질의 향상이고 발전이고 행복인 줄 알았다. 소파에 근육을 풀어놓고 뇌를 꺼내 아무 주파수에나 맞추어 놓고 있어도 모든 것이 리모콘으로 이루어지는 자동화가 행복의 잣대인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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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의 우상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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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보통 근육과 뇌를 쓰지 않고 뒹구는 상태를 게으르다고 말한다. 이 게으름이야말로 전기문명의 늪으로부터 빠져 나올 수 없게 하는 마약과 같은 것이다. 물론 요즘처럼 빠르게 굴러가는 세상에 ?게으를 권리?를 말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단지 이 시스템의 속도에 대한 저항의 권리를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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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본질적으로는 게으름이야말로 만악의 근원일지도 모른다. 어떻게 보면 게으름이 역사발전의 동력이 되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게을렀기 때문에 좀더 근육이 편하도록 끝없이 도구를 고안하고 만들어냈다. 게을렀기 때문에 서로 분업을 하고 협동했으며, 분업을 하다 보니 생산력이 늘어나고, 생산물이 남으니 남들이 생산한 것을 빼앗고, 좀더 편히 빼앗기 위해 조직과 집단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에 걸맞은 법과 사상과 윤리와 도덕을 우리는 끝없이 고안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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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역사가 흘러옴에 따라서 이 게으름의 시스템과 철학은 좀더 세련되게 다듬어져 왔다. 게으름은 노예를 부렸고, 농노를 부렸으며, 노동자와 농민을 부려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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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인풋(input)은 적고 아웃풋(output)은 많게 할 것인가'의 원리, 즉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더 쉽게 말하자면 ‘게으름의 법칙’이 지배하는 사회이다. 온 사회가 조금 일하고 많이 먹는 좀더 게으른 사람 집단에 편입하기 위해, 어렵게 말하자면 사회의 고부가가치 파워엘리트 집단에 들어가기 위해 아등바등 사교육, 공교육, 평생교육에 목을 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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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의 우상시대이다. 사람과 사람이 경쟁적이고 억압적 관계이며 사람과 자연이 대립적이고 폭력적 관계를 이루는 세상에서는 게으름을 추앙하는 우상숭배가 만연하게 된다. 이 우상숭배의 시스템에도 반드시 전기가 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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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이 없는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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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없으면 세상이 망하고, 원자력이 없으면 하늘이 무너진다는 신앙이 유포되고 있다. 물론 그 믿음은 진실에 가깝다. 실제로 올해 미국, 캐나다, 이탈리아 등 소위 선진국들에서는 잇따른 정전사태로 큰 사회적 소동이 일어났다. 그러나 그러한 신앙의 유포와 협박의 이면엔 게으르고 싶은 자를 위한 시스템을 유지하려는 발상이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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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발전시설에 의한 중앙집중적 전기공급 시스템이야말로 우리 스스로를 전기의 포로가 되게 하는 가장 큰 족쇄이다. 마치 전기가 통하지 않으면 썩어 내릴 수밖에 없는 마크 퀸의 두상처럼, 모든 사회가 하나의 전기 코드로 제어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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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가 통하지 않으면 인생이 부팅되지 않는 문명으로 가고 있다는 것은 우리의 근본적인 아픔이다. 또한 대형 원전과 기타 발전에 의존하는 전력수급 시스템으로는 언제라도 모든 사회가 부팅되지 않을 수 있는 취약성과 불안정성을 안고 있다는 것에서 나는 참을 수 없는 배신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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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대형 발전시설의 중앙집중적인 시스템을 분산적 시스템으로 바꾸고, 이 시스템으로 공급되는 전기를 자연과 인간에게 폭압적이지 않은 태양이나 풍력 그리고 바이오 에너지로 생산할 생각은 멀리 제쳐두었다. 그리고 오로지 어떻게 하면 지금의 원자력발전 시스템을 유지할 것인가에 골몰한다. 이는 불행히도, 답이 없는 문제를 출제하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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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작은 도시를 분열과 대립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일단락된 위도 원전수거물시설 부지 선정을 둘러싼 부안사태도 기본적으로는 원전정책을 포기하지 못하는 데서 시작된다. 우리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핵 관련 사업자들은 폐기물들을 처리하는 방법에 쭉 골몰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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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에 얼음을 녹여 저장할까, 해저 심연에 매장할까, 아니면 달나라에 보내 묻어버릴까. 핵폐기물을 멀리 태양궤도로 쏘아 보낸다는 연구까지 있었고 남극에 매장하는 방법은 특허까지 따놓았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나온 지 벌써 10년도 넘었다. 이 궁리 저 궁리를 다해도 답은 나오질 않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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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핵폐기물은 돈 없고 힘없는 나라로, 사람 없고 외진 지역을 찾아 나서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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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원전 대신 다른 대안 전기시스템을 선택한다면 지금처럼 안면도, 굴업도, 부안처럼 세 번씩이나 민란과 계엄사태로 몰고 가는 정책을 반복하는 정책당국의 학습능력 장애현상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 다음에 천천히 생각해도 늦지 않다는 게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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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메테우스의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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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들은 하늘의 천왕성(Uranus)에서 우라늄(Uranium)을 훔치고 지옥의 마왕(Pluto)으로부터 플루토늄(Plutonium)을 훔쳤다. 핵융합의 원리로 별이 빛나듯 핵반응은 천상의 불이다. 애초에 핵분열과 파괴의 원리로 밝히는 우라늄과 플루토늄의 불은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과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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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의 세기가 시작된 이래 이 하늘의 불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 수많은 고통과 재앙을 가져왔다. 핵은 사람과 사람을 분열시키고 사람과 자연을 분열시키며 평화롭고 지속가능하고 공정한 삶을 파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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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훔쳐다 인간에게 준 프로메테우스는 다가올 일을 미리 아는 자였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내일을 알 수 있는 혜안이 없다. 불을 훔친 벌로 코카서스 산맥의 바위 위에 묶여진 채 독수리에게 쪼아 먹히는 프로메테우스의 간은 끝없이 재생된다. 그러나 인간들은 자기 한 몸 이식하기에 충분한 간도 없다. 도대체 무슨 배짱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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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초 yooseeroo@hanmail.net ? 숲해설가협회 창립이사, 『더럽게 살자』『환경과 친해지는 50가지 이야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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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here@digitalmal.com
>2004년 01월 14일
>www.difitalmmal.com
>월간 <말> 1월호
작성일:2005-08-01 13: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