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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 한국기술로 제작된 ‘한국표준형’ 원자로에서 각종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방사성 냉각재가 흐르는 관이 잘려나가기도 하고, 원자로 용기 내부의 물과 밖에서 유입되는 물 사이의 온도차 충격을 완화해주는 완충판이 떨어져서 원자로 속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울진에서는 증기발생기 속의 습기 분리장치가 떨어지기도 했고, 한 달 전에는 영광에서 냉각재가 누출되어 방사성 물질이 든 물 3000t 가량이 나흘 동안 바다로 흘러들어 갔다. 물론 발전소 직원들이 의도적으로 오염된 물을 바다로 버린 것은 아니다. 나흘 동안 그런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다. 철저하게 안전을 기한다는 곳에서 그 긴 시간 동안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원자로에서 방사성 물질이 빠져나와 발전소를 오염시킨다는 경보가 울렸는데도 직원들은 경보를 믿지 않았다. 경보기가 고장난 것으로 판단하고 기기를 교체하는 소동을 벌였던 것이다. 그 사이에 방사성 물질은 계속 빠져나갔고, 발전소와 바다를 오염시켰다. 이번 영광원전의 사고는 원자력 전문가들의 안전 ‘신앙’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맹신에 가까운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기술적으로 완벽하게 안전을 기할 수 있다는 그들의 주장이 허구였음이 드러났고, 기술이 완벽하다 해도 사람이 따라주지 않으면 모든 노력이 헛수고로 끝날 수 있음이 드러난 것이다. 이번 사고는 1979년 미국에서 일어난 스리마일섬 원전사고와 유사한 점이 많다. 스리마일섬 사고가 약간의 기술적 결함에 사람의 실수가 겹쳐져서 일어난 것이라는 점, 경보가 울렸는데도 무시되었다는 점, 시간이 한참 흐른 다음에야 사고지점이 발견되었다는 점 등이 비슷하다. 한 가지 커다란 차이라면 이번 사고가 대형사고로 번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말 다행이라고 말해야겠지만, 그것이 요행이었다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는다. 영광 주민들도 불안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한국표준형’ 원전에서 심각한 사고가 계속되는 것은 설계 결함을 암시하는 신호일지 모른다. 만일 설계가 잘못되었다면 잦은 사고에 이어 언젠가 대형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주민들은 바로 이 점 때문에 불안해하고 있는데, 원자력 전문가들은 설계 결함은 결코 없다고 힘주어 말한다. 이유는 설계에 결함이 있다면 모든 ‘한국표준형’ 원전에서 똑같은 사고가 발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설명이다. 앞으로 수십년 가동되는 동안 얼마든지 비슷한 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 것이고, 설계 결함의 결과가 항상 동일한 사고로 나타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원전에서는 증기발생기 관이 잘려나가지만, 다른 원전에서는 관이 파열될 수 있는 것이다. 원자력 전문가들도 이런 사정을 안다면 전전긍긍할 법한데 그런 낌새는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그들 중 어느 누구도 계속되는 ‘한국표준형’ 원전의 사고에 대해서 우려의 발언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서울대의 핵공학 교수는 수십명의 동료교수를 부추겨서 기술이 충분하니 핵폐기물을 관악산으로 가져오자는 제안까지 했다. 그는 기술 만능주의에 대한 ‘신앙’만 깊은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전파하는 능력도 탁월한 것 같다. 그러나 영광원전 사고로부터 기술도 완벽할 수 없을 뿐더러, 설령 기술이 완벽하다 해도 인간이란 요소가 항상 약한 고리로 남는다는 교훈을 얻는 능력은 없는 것 같다. 독일의 물리학자 카를 프리드리히 폰 바이츠제커는 체르노빌 사고가 일어난 뒤 원자력 찬성에서 반대로 돌아섰다. 체르노빌 사고 수습을 지휘했던 우크라이나의 핵물리학자는 수습 임무를 마치고 자기가 너무 무지하거나 오만했다고 고백했다. 두 사람 모두 도달한 결론은 원자력발전 기술은 인간이 다루기에는 너무 부담스럽고 위험한 기술이라는 것이었다. 한국의 원자력 전문가들도 이들처럼 ‘회심’을 할 수는 없을까 지금 ‘회심’하면 바이츠제커처럼 운좋게 사고의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핵물리학자처럼 사고가 일어나고 나서야 ‘회심’한다면, 이를 위한 대가가 너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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