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상 칼럼 / 초가삼간의 행복... 72회
산다는 것은 나와 너희들 간에 서로 중첩되고 영속되는 소통을 말하며, 생로병사란 소통에 문제가 생기고 끊어질 때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므로 소통방식의 변화에 따라 삶의 방식도 바뀌게 된다.
소위 말하는 컴퓨터는 인류의 생활방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으며, 최근 들어 다시 한 번 혁신이 일어남으로써 그 변화를 예측할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과거 컴퓨터는 인간이 입력한 자료를 검색하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인간의 사유체계를 닮은 AI라는 시스템은 모든 정보를 스스로 학습하여 새로운 결과를 도출해 낸다.
전문가들은 컴퓨터에 자료를 입력하여 개와 고양이를 구별케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한다. 왜냐하면 수많은 종류, 수많은 색깔, 매일 태어나는 잡종들 등 미세한 차이까지 일일이 입력해야 하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인간의 두뇌와 비슷한 방식으로 정보를 처리하는 딥러닝 기술은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관련 정보들을 수집 비교하여 스스로 판단을 내린다.
AI 주도의 다양하고 변화무쌍한 소통방식은 개인들의 삶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생존스트레스를 강하게 일으키며, 사회적으로는 기술을 지배하는 몇몇 소수가 정보와 자본까지 독점한다는 문제를 일으킨다. 예를 들면 스마트폰에서 각종 어플을 사용하려면 정보수집의 동의를 거쳐야 한다. 이 과정에서 개인정보들은 기업의 자산으로 쌓인다. 뿐만 아니라 별생각 없이 일상으로 올리는 SNS의 정보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인터넷망을 운영하는 기업의 컴퓨터에 차곡차곡 저장되고, 기업은 필요에 따라 개인들의 정보를 분석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창출할 수 있다. 현재 컴퓨터 검색어에 따라 개인 맞춤형 광고가 뜨고 있듯이 말이다.
환갑을 지나는 필자는 고등학교 때 아버지께 쟁기질을 배웠다. 아버지 세대는 농사짓는 법만 익혀도 평생을 살아가는데 별다른 불편이 없었다. 이 같은 삶의 방식은 큰 변화 없이 수천 년 지속되었다. 과거 농경사회에서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산과, 어른들로부터 배우는 지혜만으로도 세상을 살아가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인류는 아주 오랫동안 할머니는 할머니로부터 들은 옛날이야기를 손자들에게 전했고, 할아버지는 할아버지로부터 배운 집짓는 법을 후손들에게 가르쳤다. 다시 말하면 소통방식과 삶의 방식이 매우 단순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른들을 받들어 봉양하고, 삶의 지혜를 겸손히 배우는 ‘양로걸언’의 공경과 효(孝)는 사회를 지탱하는 근본으로서 사람의 도리가 되었던 것이다. 이때의 늙음[老]은 육체적 쇠함 보다는 삶의 지혜가 풍부하다는 의미이다. 그림문자인 한문의 효(孝), 로(老), 고(考) 등이 비슷한 모양을 이루고 있는 것도 이와 같은 연유이다.
이에 비해 현재의 AI사회는 어떠한가? 어른들이 손자들을 붙들고 몇 번을 배워야 스마트폰 어플들을 겨우 사용할 수 있고, 세상 공부에 통달한 할아버지라 할지라도 인터넷검색을 당해낼 재간이 없다. 요즘 유행하는 가상화폐의 입출금 등을 대신해 주고 돈을 받는 전문가들이 생겼다. 글로벌이라는 이름처럼 세계 곳곳의 거래소, 보안시스템, 환전 등의 절차들은 어른들에게는 난공불락의 요새가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세상을 포기할 수 없으니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따라갈 수밖에 없는 웃지도 울지도 못할 상황이다.
젊은이들은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을 배워야 하고, 너무나 다양한 각기 다른 생존방식은 서로 간 소통을 단절시키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전통으로 이어져 오던 양로걸언의 효제(孝悌)는 설자리를 잃어버렸다. 이처럼 현대사회는 시시각각 변하는 소통방식, 즉 하루라도 새로운 것을 배우지 않으면 소외당할 뿐만 아니라, 다양하고 복잡한 생존방식에 떠밀려 표류하게 된다고 본다.
세상이 어떻게 변하더라도 인간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따라서 오늘을 살아가는 어른들은 현대사회가 외면하고 있는 인문학 즉, 언(言)이라는 성현의 가르침을 어(語)라고 하는 개인의 행위로 체현함으로써 젊은이들의 스승으로의 자리를 스스로 확보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