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명룡 칼럼 / 본사 서울지사장
언제부터인가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는 일이 잦아졌다. 딱히 현실이 힘들거나 대단한 걱정거리가 있는 것도 아닌데 한숨이 자꾸 삐져나온다. 이미 환갑이 지났기에 나이 탓이려니 하고 넘기지만, 아내는 남 보기에 흉하다며 내가 한숨을 쉴 때마다 핀잔을 준다. 하지만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오는 것을 무슨 수로 막는단 말인가. 게다가 나는 내가 쉬는 한숨이 무슨 까닭인지도 모르잖은가.
1801년 신유박해 때 일가의 몰락을 겪고 경상도 김해 바닷가로 유배되어 24년이나 억류되었던 이학규(李學逵)라는 선비가 있었다. 그가 김해에서 쓴 문집에 이런 내용이 있다.
“길에서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사람이 짐을 벗어놓을 때 ‘후유!’ 하고, 가파른 경사길을 오르는 사람이 평지를 만나면 ‘후유!’ 하고 한숨을 내쉰다. 쌓였던 고생이 끝나고 시원하게 큰 숨을 내쉬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목구멍이 터지며 숨소리가 솟구치는 것이다. 요새(今之) 시골 풍속(鄕俗)에 이른바 ‘한숨 쉰다 [舒嘯]’ 고 하는 것이 모두 이렇다.”
보다시피 대대로 한양의 선비가문 출신인 이학규는 ‘한숨 쉰다’ 라는 말을 몰랐던 것 같다. 19세기 경상도 끝으로 유배를 가서야 그것이 ‘고생 뒤에 자기도 모르게 터지는 큰 숨소리’ 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 의미도 지금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개념과 조금 다르다. 이학규가 말한 한숨은 육체적 숨 가쁨에서 풀어지는 큰 숨에 가깝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한숨’의 사전적 의미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 의미는 큰일이나 걱정을 앞에 두고 길게 몰아서 내쉬는 숨이다. 두 번째는 그와 반대로 큰일이나 걱정이 해결되어 안도할 때 내쉬는 큰 숨도 한숨이라 한다. 같은 말이 이렇게 상반되는 의미를 가지다 보니 적당한 구별이 필요했고, 그래서 파생된 것이 ‘한숨 쉬다’와 ‘한숨 놓다’이다. 즉 걱정이 앞에 있을 때는 한숨을 쉬고, 뒤에 있을 때는 한숨을 놓는다.
앞서 소개한 이학규의 글은 <舒嘯記>라는 기문(記文)의 일부다. 김해에 사는 서생(徐生)이라는 아전이 늘그막에 새 집을 짓고, 집의 이름을 ‘舒嘯’라 하여 이학규에게 기문을 부탁한 것이다. ‘한숨을 쉬는 집’이라니 이름이 황당해서 그 까닭을 물었더니 서생은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젊어서부터 가난한 데다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소이다. 게다가 여러 자매에 조카들까지 있어 아침저녁으로 필요한 물건이며, 겨울이나 여름에 대비할 것들은 모두 내 손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되지 않았소. 그런 까닭에 늙은 내가 아직도 아전 옷을 입고, 부귀한 집을 드나들며 날마다 비단과 곡물의 출입과, 수많은 장부에 쩔쩔매고 있소. 허나 이 어찌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이겠소?” 서생은 잠시 쉬었다가 말을 이었다.
“내가 종일 일에 쫓기다 이 집에 이르러 문 앞에 다다르면 마치 구절양장(九折羊腸) 속을 헤매다가 평지를 만난 듯 시원스럽고, 방 안에 누워 있으면 또 몸이 훌쩍 가벼워져 천근만근 되는 무거운 짐을 벗어놓은 기분이 들지요. 그때 저도 모르게 입에서 ‘후유!’ 하는 소리가 터지 듯이 나옵니다. 숲길을 산보 하는 저녁이나 오동나무에 기대앉은 아침에도 시원스런 한숨 소리가 ‘후유!’ 하고 터져나와, 마치 내 자신이 고목에 앉은 소리개가 된 듯하고, 키 큰 버드나무에 매달린 매미가 된 듯도 합니다. 그러니 이 집은 ‘한숨을 내쉬는 집’이라 아니 할 수 없지요.”
읽어볼수록 한숨에 대한 기막힌 글이다. 아마도 서생의 집은 한숨을 내쉬는 집 보다는 ‘한숨을 놓는 집’이 더 어울릴 것 같다. 어쩌면 내게 잦아진 한숨도 쉬는 게 아니라 놓는 것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