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호길의 독자기고
교회 원로 장로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지금, 내 서재 창밖의 나무들은 잎이 없다.
게다가 도로변에 우뚝 서 있는 플라타너스 나무는 희디흰 그 앙상한 몸으로 서 있다. 그런가 하면 한겨울에도 잎이 지지 않는 나무가 있지만...
봄이면 움이 터서 여름이면 치열하게 푸르렀다가, 가을이 오면 그 잎들을 와스스 떨어뜨리고 앙상하게 겨울을 나는 나무들.
나도 이제 세월이 가는 것을 몸으로 느끼는 나이가 되었다.
무엇보다도 떨어지는 시력이 그것을 느끼게 한다.
돋보기 안경의 도수를 높이면서, 이제는 세상의 큰 것만 보라는 뜻이로구나 생각한다.
작은 글씨를 읽지 않고도 행간의 의미를 헤아릴 수 있는 나이, 나도 그 나이가 되어있지 않은가.
그리고 이제는 나무를 심는 것이 두려운 나이가 저만큼 오고 있음을 안다.
나무를 심는다는 것은 시간을 심는 일이다.
노인이 묘목을 심는다면 언제 그 꽃과 열매를 보겠는가.
그런데도 내일 세상의 끝이 온다 해도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사람이 있었다니, 그의 닿을 길 없는 성찰이 놀라울 뿐이다.
더욱이 “생명을 생각하면 끝없이 마음이 선해지는 것을 느낀다.
행복, 성공, 사랑, 삶에서 최고의 가치를 갖는 단어들도 모두 생명이라는 단어 앞에서는 한낱 군더더기에 불과하다.”
영문학자 故 장영희 교수가 투병 중에 쓴 글의 한 구절이다.
“살아있음의 축복을 생각하면 한없이 착해지면서 이 세상 모든 사람, 모든 것을 포용하고 사랑하고 싶은 마음에 가슴 벅차다. 그러고 보니 내 병은 더욱 더 선한 사람으로 태어나라는 경고인지도 모른다.”
그렇구나, 살아있음보다 더한 축복이 어디 있으랴.
그렇다면 “살아있음”을 가지고 내가 희구해 온 지고의 선은 무엇이었던가!
지난날의 어리석음을 딛고 일어서려는 부단한 변신에도 평안은 있었으며, 다시는 만날 길 없이 헤어져 버린 것들에 대한 그리움 속에도 있었다.
한 해가 가고, 이 땅의 모든 것은 언젠가는 다 사라진다는 생명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시간이다.
그리고 이 겨울의 뒤에는 또 다가오는 봄이 있다는 것을...
낙엽을 밟으며 떨어져 가는 것, 사라져 가는 것에서 몇 가지의 진실을 읽는다.
삶이 아름답고 가슴 벅찼던 만큼, 그것을 마감하는 것도 그렇게 아름답고 가슴 벅차야 한다.
성경에 “다 이루었다.” 라는 의미의 기쁨을 알겠는가? 미완(未完)의 모든 것들을 마감하고, 부족하나마 이루어 놓은 것들 하나씩 가다듬고 보듬었으면 한다.
교회 원로장로 박호길
